변호사가 된 지 만 15년이다. 그리고 3급 장애인이 된 지 만 1년이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려 했는데, 이제는 노력하지 않아도 사회적 약자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우라질레이션. ‘체험’과 ‘일상’의 차이는 상당하다. 다시 비장애인이 된다면 ‘장애는 불편한 것에 불과하다’는 속 편한 얘기로 위로하지 않으련다. 장애인과 인권. 나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고,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의 변호사 활동 기억은 접어두고,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나와 주위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하련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표만 얻으면
법률적으로 장애인은 누구인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다(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1항). ‘오랫동안’이므로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이 모두 장애인은 아니다. 그건 환자다.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내가 장애인이다’라고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벌칙 조항이 없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분명 장애인인데도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등록 신청을 하면 국가는 심사를 한 뒤 ‘너는 장애인이 맞다’라고 장애인복지카드를 내준다. 장애인복지카드를 받으면 이런저런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밖에 혼자 나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아닌 한 지하철 무임 탑승 혜택은 그림의 떡이고, 보통은 통신요금 30% 할인 혜택을 제일 좋아한다.
국가는 장애인을 15가지로 분류해 관리한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것도 있고 생소한 것도 있다. 팔다리에 장애가 있거나(지체), 외상성 뇌손상이나 뇌졸중 등으로 신체적 장애를 겪거나(뇌병변),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돼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지적), 자폐증이 있거나(자폐성), 정신분열병이 있거나(정신), 안면 부위의 변형·기형이 있거나(안면), 배변·배뇨 기능에 장애가 있거나(장루·요루), 간질병을 앓거나(간질), 신장, 심장, 호흡기, 시각, 청각, 언어, 간 장애인이 그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0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51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4.9%, 20명 중 1명꼴이다. 꽤 많다.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득표수가 1577만여 표이니까, 등록 장애인과 그 가족의 표만 얻으면 대선에 나가도 꿀리지 않는다.
국가는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 1급부터 6급으로 나눈다. 내신은 1급이 좋지만, 장애는 1급 상태가 제일 나쁘다. 장애인이 된 뒤 제일 눈에 뛴 것은 중증장애인과 유소아장애인이다. 하나는 너무 심해서, 하나는 너무 어려서 마음이 아프다.
강릉시만큼의 1급, 강화군만큼의 1급 뇌병변
‘중증장애인’이란, ‘장애인 중에서 장애 정도가 심해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을 말한다(장애인복지법 제6조). 주로 1·2급 장애인이 해당되는데, 뇌병변·시각·정신·상지 장애인은 3급도 중증장애인으로 본다. 가장 중증인 1급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2010년 말 기준으로 1급 중증장애인은 21만 여 명이다. 강원도 강릉시 인구가 대략 21만 명이니 강릉시 인구 정도가 1급 장애인인 셈이다. 1급 장애인은 뇌병변장애(6만6천여 명), 지적장애(4만7천여 명), 지체장애(3만9천여 명), 시각장애(3만3천여 명) 순이다. 나이대로는 20대가 1만9천여 명, 30대가 2만1천여 명, 40대가 2만8천여 명, 50대가 3만3천여 명으로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할 청장년층도 상당히 많다. 가장 많다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면 어느 정도 상태일까. 한마디로 혼자 휠체어에서 화장실 양변기로 옮겨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들에겐 난이도가 높다. 일단 1∼2초 정도 선 뒤, 제자리에서 무려 180도를 돈 다음 위치를 잘 맞춰 엉덩이를 변기에 기대야 한다. 기마 자세까지 취해야 하는 대변 뒤처리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뇌병변 1급 장애인이 인천 강화군 인구수만큼 전국에 있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1급 장애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 당연히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나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첫 고민은 아주 단순하다. 어디서 살 것이냐다. 집에 있는다? 화장실도 혼자 못 가니 집에 혼자 놔두기 불안하다. 가족은 돈을 벌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자기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일단은 집에서 살게 된다. 집에 혼자 있다보면 사고가 발생한다. 지난해에도 줄초상을 치렀다. 지난해 9월 근육병을 앓고 있던 1급 장애인 허정석(33)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집에 오는 사이, 산소호흡기가 빠져 사망했다. 10월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자 13살 누나가 11살 뇌성마비 1급 동생을 구하려다 연기에 질식해 남매 모두 숨을 거둔 일이 발생했다. 또 같은 달 서울에 사는 장애인 인권활동가이자 자신도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주영(33)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3시간 뒤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질식사했다. 12월에는 충북 청원군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 50대 조아무개씨가 어머니가 외출해서 귀가하지 않은 사이 혼자 있는 집에서 불이 났지만 누운 그대로 화마에 휩싸여 숨졌다. 이들은 모두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에 혼자 있다가 변을 당했다. 만일 누군가 곁에서 약간만 도와주었다면, 인공호흡기만 다시 끼워줬다면, 휠체어로 옮겨만 줬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주거시설 내 폭행·성추행 사건도 정부는 집에 있는 중증장애인을 위해 2011년부터 집에 방문하는 활동보조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 수가 적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도 제한되고, 혜택을 받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조금이라도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을 받고 있는 1급 장애인 수는 전국에 5만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장애인들은 외부 도움없이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알아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시설에 모여 사는 것은 어떤가? 중증장애인 주거시설을 비롯해 최근에는 단기보호시설, 공동생활가정 등 여러 형태가 시도되고는 있다. 그러나 역시나 시설이 많지 않아서 이용 혜택을 보기 어렵고, 대부분 가족이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지난해에는 인천 계양구에 있는 장애인주거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시설 관리·감독에도 한계가 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서비스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우선 활동보조인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 주거시설 수를 늘리고, 장애 유형에 맞는 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장애인의 입소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 집에 있기도, 시설에 가기도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 살 곳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지난해 10월 화재사고로 의식을 잃은 뒤 45일 만에 숨을 거둔 11살 뇌성마비 장애아동 박지훈군의 49재 추모굿이 지난 1월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렸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중증장애인’이란, ‘장애인 중에서 장애 정도가 심해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을 말한다(장애인복지법 제6조). 주로 1·2급 장애인이 해당되는데, 뇌병변·시각·정신·상지 장애인은 3급도 중증장애인으로 본다. 가장 중증인 1급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2010년 말 기준으로 1급 중증장애인은 21만 여 명이다. 강원도 강릉시 인구가 대략 21만 명이니 강릉시 인구 정도가 1급 장애인인 셈이다. 1급 장애인은 뇌병변장애(6만6천여 명), 지적장애(4만7천여 명), 지체장애(3만9천여 명), 시각장애(3만3천여 명) 순이다. 나이대로는 20대가 1만9천여 명, 30대가 2만1천여 명, 40대가 2만8천여 명, 50대가 3만3천여 명으로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할 청장년층도 상당히 많다. 가장 많다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면 어느 정도 상태일까. 한마디로 혼자 휠체어에서 화장실 양변기로 옮겨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들에겐 난이도가 높다. 일단 1∼2초 정도 선 뒤, 제자리에서 무려 180도를 돈 다음 위치를 잘 맞춰 엉덩이를 변기에 기대야 한다. 기마 자세까지 취해야 하는 대변 뒤처리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뇌병변 1급 장애인이 인천 강화군 인구수만큼 전국에 있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1급 장애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 당연히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나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첫 고민은 아주 단순하다. 어디서 살 것이냐다. 집에 있는다? 화장실도 혼자 못 가니 집에 혼자 놔두기 불안하다. 가족은 돈을 벌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자기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일단은 집에서 살게 된다. 집에 혼자 있다보면 사고가 발생한다. 지난해에도 줄초상을 치렀다. 지난해 9월 근육병을 앓고 있던 1급 장애인 허정석(33)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집에 오는 사이, 산소호흡기가 빠져 사망했다. 10월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자 13살 누나가 11살 뇌성마비 1급 동생을 구하려다 연기에 질식해 남매 모두 숨을 거둔 일이 발생했다. 또 같은 달 서울에 사는 장애인 인권활동가이자 자신도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주영(33)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3시간 뒤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질식사했다. 12월에는 충북 청원군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 50대 조아무개씨가 어머니가 외출해서 귀가하지 않은 사이 혼자 있는 집에서 불이 났지만 누운 그대로 화마에 휩싸여 숨졌다. 이들은 모두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에 혼자 있다가 변을 당했다. 만일 누군가 곁에서 약간만 도와주었다면, 인공호흡기만 다시 끼워줬다면, 휠체어로 옮겨만 줬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주거시설 내 폭행·성추행 사건도 정부는 집에 있는 중증장애인을 위해 2011년부터 집에 방문하는 활동보조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 수가 적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도 제한되고, 혜택을 받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조금이라도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을 받고 있는 1급 장애인 수는 전국에 5만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장애인들은 외부 도움없이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알아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시설에 모여 사는 것은 어떤가? 중증장애인 주거시설을 비롯해 최근에는 단기보호시설, 공동생활가정 등 여러 형태가 시도되고는 있다. 그러나 역시나 시설이 많지 않아서 이용 혜택을 보기 어렵고, 대부분 가족이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지난해에는 인천 계양구에 있는 장애인주거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시설 관리·감독에도 한계가 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서비스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우선 활동보조인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 주거시설 수를 늘리고, 장애 유형에 맞는 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장애인의 입소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 집에 있기도, 시설에 가기도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 살 곳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