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의 혜택을 받고 물질적으로 나아졌지만 이맘때면 어쩔 수 없이 불현듯 상실감에 시달립니다. 10시간 넘는 귀성길도 이것으로 일정부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에는 기온이 점차 떨어지면서 차가운 기운이 간뇌의 각성 중추를 자극해 의식이 또렷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는데, 그 탓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미 농촌은 피폐해졌고, 아담한 전원주택을 장만해 나간다고 해도 옛적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너무 변했습니다. 그렇다고 도시에 발을 굳건히 내린 것도 아니지요. 콘크리트 건물과 아파트에서 24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컴퓨터 모니터 또는 기계와 씨름해야 하는 물리적 조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를 대체할 만한 공동체적 가치와 도시의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도시의 유목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배회하게 만드는 근본 요인은 결국 사람문제, 기득권세력의 탐욕 탓이라 여겨집니다. 인간세상, 자본주의 세상에 이것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난 30여년간의 개발독재 과정에서 형성된 그 층은 뿌리가 무척 깊고 완고합니다. 이를 제어·감시하라고 권력을 쥐어준 정치권이 너나없이 내놓고 탐욕과 술수에 앞장설 때 더욱 허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의도에 격랑이 이는 듯하더니 여야 당권파 중심의 신양당체제가 더 굳어진 결과로 봉합됐습니다. 두터운 과거로부터의 정치지형을 깨겠다는 여야 개혁파는 한계를 드러내며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냉엄한 현실정치의 정치현실입니다. 이들에게 기대할 것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습니다. 자리다툼, 권력놀음이 아니고 의미있는 싸움이라면 박터지게 싸우라고. 소수파의 저항은 희망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