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 내 사무실로 한 소녀가 찾아왔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신의 아이를 찾아달라고,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이 홍안의 어린 소녀가 아이 엄마라니, 자신의 아이를 찾아달라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이제 갓 20살이었고, 19살의 어느 날 아이를 낳았다.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아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여, 친권 포기 각서를 쓰고 미혼모 시설에 들어갔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입양을 보냈다고 했다. 아이를 입양 보낸 이후 그녀는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인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남자친구를 설득했고, 남자친구도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미혼모 시설을 찾아가 아이의 소재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시설에서는 이미 친권을 포기했으니 안 된다며 거절했단다. 수도 없이 찾아갔으나 시설 쪽은 완강했다.그녀는 다시 자신을 도와줄 변호사들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나에게 왔다.
비밀 지키려 이사까지 간 양부모
당시 입양특례법상 입양을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인 6개월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양부모 소재만 파악된다면 협의에 의한 파양 등의 방법은 가능했다. 우선 양부모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시급했다. 나는 직접 시설에 전화를 걸어 아이의 소재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입양 취소, 파양 등 법적 절차를 떠나 친부모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찾아다니는데 더 늦기 전에 최소한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양부모는 이런 상황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애원도 해보고 반협박도 해보았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아이는 좋은 가정에 입양돼 잘 자라고 있다며 이미 친권을 포기한 이상 마음을 바꾸었다고 해서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친부모가 양육하겠다며 아이를 간절히 찾는데 더 나은 환경이 있는 거냐, 경제적 여유가 친부모의 사랑보다 더 필요한 거냐며 항의했으나 시설은 묵묵부답이었다. 양부모는 좋은 직업을 가졌고 아이에게 유복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려가서 친자로 출생신고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먼 곳으로 이사까지 갔다.
시설에서는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 유복한 환경의 양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이라고, 아이 엄마도 모든 것을 잊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나 역시 마음이 흔들렸다. 여의치 않은 환경에 있는, 이제 갓 20살인 부부. 시설 쪽의 말이 맞는 건 아닐까. 차가운 머리는 자꾸만 그녀를 설득해보라고 한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아이를 낳은 친엄마고 자신만큼 아이를 사랑하며 키울 사람은 없다, 이미 한 번 아이를 포기했으니 그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더욱 사랑하며 키울 것이라고 절대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쳤다. 과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아이는 누구를 선택할까.
시설과의 몇 차례 다툼 끝에 결코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양부모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송을 통해 아이를 찾아온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사이 아이는 성큼성큼 자란다. 결국 나는 언론에 알리고 각종 기관에 호소하는 길이 더 빠를 수 있다는 엉터리 조언을 해야만 했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고 한 셈이었다. 일은 그렇게 해결됐다. 양부모는 아이 엄마가 애타게 아이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민 끝에 아이를 그녀에게 보내주었다. 1년 이상 갖은 사랑으로 키운 아이를 돌려보내다니, 그들은 진정 그 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했음이 분명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나에게 변호사로서는 무력감을 안겨주었지만, 이후 변호사 생활에서 입양을 비롯한 아동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요즘 미혼모를 괴롭히는 법으로 지목되는 입양특례법(이하 입양법)이 지난해 8월 개정되기 전의 일이다. 당시 미혼모 대부분이 그랬듯 그녀가 있던 시설도 입양기관 부설 미혼모 시설이었다. 미혼모 시설은 입소 자체가 입양을 약속해야만 가능하다. 사설 입양기관의 존립은 입양할 아이의 존재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으므로 부설 미혼모 시설은 안정적인 입양아동 공급처였던 셈이다. 이런 미혼모 시설에서는 ‘미혼모가 아이를 낳으면 절대 얼굴을 보게 하지 말라’가 철칙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얼굴을 본 엄마는, 젖을 물려본 엄마는 아이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아이를 포기한 엄마들은 많은 경우 아이가 좋은 부모를 만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지 못한다. 그녀처럼 마음이 바뀌어도 법에서 정한 입양 취소 절차를 밟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미혼모 시설의 철칙 “아이 얼굴 보이지 말라”
그녀와 같은 경우가 알려지면서 친모가 아이를 키울지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래서 개정법에서는 아이 출생 뒤 일주일간 숙려 기간을 줘서 출생 즉시 입양을 금지했다. 개인적으로 일주일은 입양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일주일이라도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개정된 입양법과 관련법에 따라 2015년 7월1일부터 입양기관 부설 미혼모 시설은 금지된다. 이와 달리 미혼모와 아이가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래도 입양을 선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충분한 숙려 기회를 주는 미혼모 시설에선 많은 미혼모가 아이와 가정을 이루는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그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녀도 아이도 양부모도 겪지 않았을 고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입양 숙려 기간, 입양허가제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입양법을 두고 말이 많다. 개정 입양법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해야만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아이 출생의 흔적이 남지 않길 원하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유기한다는 것이다(개정 입양법에 의하더라도 아이가 입양되면 친모의 기록에서 아이는 삭제된다). 언론 역시 여기에 맞춰 아기가 유기된 사례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그 원인을 무조건 개정 입양법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입양 보낸 친생모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출생신고 때문에, 기록에 흔적이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유기하겠는가. 친모가 아이를 유기하는 원인은 너무나도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구조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 등 훨씬 더 복잡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출생 기록은 입양아동의 처지에서는 생존 문제(출생신고가 돼야만 비로소 공식적으로 존재가 확인되고,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이자 자신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해외 입양아가 성인이 되면 친모 확인이 가능하지만, 친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실마리이고, 생모의처지에서는 아이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입양아동의 출생 사실을 어떤 기록에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과연 입양을 선택한 엄마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인지 장담할 수 없다. 아주 고마운 해피엔딩 한 달 전 우연히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아이의 양부모와 한동네에 살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아이를 키우며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로서 나는 무력했지만, 그녀의 해피엔딩은 아주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최근 개정 입양법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쉬는 모든 숨이 탄식이던, 흘린 눈물이 모두 피눈물이던 그녀라면 가장 현명한, 모두를 설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개정 입양법과 관련 법에 따라 내년 7월1일부터 입양기관 부설 미혼모 시설이 금지된다. 한 미혼모 시설의 풍경. 한겨레 류우종
그러나 입양 숙려 기간, 입양허가제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입양법을 두고 말이 많다. 개정 입양법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해야만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아이 출생의 흔적이 남지 않길 원하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유기한다는 것이다(개정 입양법에 의하더라도 아이가 입양되면 친모의 기록에서 아이는 삭제된다). 언론 역시 여기에 맞춰 아기가 유기된 사례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그 원인을 무조건 개정 입양법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입양 보낸 친생모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출생신고 때문에, 기록에 흔적이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유기하겠는가. 친모가 아이를 유기하는 원인은 너무나도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구조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 등 훨씬 더 복잡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출생 기록은 입양아동의 처지에서는 생존 문제(출생신고가 돼야만 비로소 공식적으로 존재가 확인되고,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이자 자신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해외 입양아가 성인이 되면 친모 확인이 가능하지만, 친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실마리이고, 생모의처지에서는 아이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입양아동의 출생 사실을 어떤 기록에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과연 입양을 선택한 엄마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인지 장담할 수 없다. 아주 고마운 해피엔딩 한 달 전 우연히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아이의 양부모와 한동네에 살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아이를 키우며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로서 나는 무력했지만, 그녀의 해피엔딩은 아주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최근 개정 입양법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쉬는 모든 숨이 탄식이던, 흘린 눈물이 모두 피눈물이던 그녀라면 가장 현명한, 모두를 설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