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여름휴가, 12년을 한결같이
등록 : 2000-08-23 00:00 수정 :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러 가지만 가서 제가 그들한테 배우는 게 더 많아요. 밝게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힘이 생겨요.”
12년째 짧은 여름휴가를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으로 보내는 공무원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청 8급공무원인 한춘용(33.사진 맨왼쪽)씨.
그가 소록도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공직에 갓 들어선 지난 89년 여름휴가 때부터다. 제주도 내 자원봉사 모임인 ‘성 다미안’이 한센병 환자를 도울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나섰다. 그뒤로 한씨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름휴가 때마다 소록도를 찾고 있다.
올해는 8월3일부터 6일까지 3박4일 동안 소록도를 다녀왔다. 그곳에 머물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얼굴도 씻겨줬다. 몇해 전부터는 서귀포시청 동료들까지 동참시켰다. 한씨와 함께 소록도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한센병자 집의 전기시설도 봐주고 도배까지 해줄 수 있게 됐다.
사실은 한씨 자신도 장애인이다. 중학교 시절 과학실험 도중 사고로 왼손을 다쳐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래도 한센병자들의 고달픈 나날에 비하면 자신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단다.
“막상 자원해놓고도 처음에는 한센병자들을 만난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속으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소록도로 들어가는 배가 태풍을 만나 못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그였지만 그에게 한센병자들은 어느새 12년 오랜 벗이다. 그는 소록도 사람들을 환우(患友)라고 불렀다. “제가 찾아가 제주말로 ‘살앙계십데강?’(살아계십니까?) 하면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들이 먼저 저를 반깁니다.” 대부분 눈을 잃은 소록도 환자들이 대신 발달한 청각으로 한씨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소록도를 찾았던 지난 89년 3천여명에 달했던 소록도 한센병자는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900여명 정도만 남았다. 한센병이 이제 ‘옛날 병’이 된 지 오랜데다 젊은 환자들은 병이 나아서 하나둘씩 뭍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지냈던 환우가 갑자기 세상을 뜬 걸 알았을 때는 허망하기도 했지만 소록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오면 사사로운 고민이나 갈등이 봄눈 녹듯 사라지죠.”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