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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거북이 아저씨, 뭍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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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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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온힘을 쏟는 ‘문화관광운동가’ 강남규

사진/ 조선시대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 앞 돌하루방과 함께. 그는 "성읍 민속마을에 가면 나랑 닮은 돌하루방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하종강)
우리집 아이들은 강남규(46)씨를 ‘거북이 아저씨’라고 부른다. 1978년에 ‘일당 1400원’짜리로 ‘위장취업’했던 인천 5공단의 한 회사에서 프레스에 손가락을 네개나 잘린 그의 오른손이 마치 거북이 발처럼 몽땅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1993년이었나. 제주도에 내려가 그가 운영하는 ‘제주돌소리노동상담소’에서 노동교육을 함께 준비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딸이 전화를 했다. “아빠 오늘도 늦는다… 맛있는 거 뭐 사왔는데… 무슨 찌개?… 아, 맛있겠다.… 저녁 맛있게 먹고 일찍 자. 아빠 기다리지 말고.… 알았어. 굶지 않을게.”

애틋한 부녀지간


그의 딸은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시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상담소 바닥에 전기담요를 깔고 구겨지듯 쓰러져 잠을 잤는데, 아침나절에 그의 딸이 전화를 했다.

“우리 아빠 잠 깨셨어요?” “아니, 아직도 코 골면서 잔다.” “히, 우리 아빠 원래 그래요. 늦지 않게 일어나시라고 전화했는데…. 아저씨는 늦잠 안 자지요?” “그럼.” “깨우셔서, 아침 꼭 드시라고 하셔요.” “알았다.” “그럼 됐어요. 끊어요.”

그날 오후, 강남규씨와 함께 다른 강사를 맞으러 공항까지 갔다오는 길에 저녁 행사에 쓸 음식들을 사느라고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웠는데 차에서 내리다 말고 그가 말했다.

“어, 저기 우리 딸년 있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딸도 멀리서 그를 보고는 단숨에 뛰어오더니 팔에 매달려 “아빠 얼굴 3일 만에 본다”면서 깡충깡충 뛰는 것이었다. 택시 안에 앉아서 아버지와 딸의 뜻하지 않은 만남을 바라보다가, 딸의 등을 감싸는 그의 짧은 손가락들이 서러워 목이 메었다.

1978년 9월, 강남규씨는 시국사건으로 수배된 뒤 안면이 있던 소설가 황석영씨의 해남 집에 숨어들었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 이애란(47)씨를 만났다. 계속 쫓겨다니는 생활이어서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결혼한 그의 아내는 예나 이제나 ‘넓고 따뜻한 바다’와 같은 존재다.

가끔 제주에 내려갈 때 들러보면 강남규씨에게는 친지들의 소개로 연락을 하고 찾아오는 ‘육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각종 운동단체 사람들은 물론 그 일가친척이나 친구들이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도맡아 안내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렇게 치르는 무료봉사 손님이 1년에 100팀이 넘었다. 내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면 그는 “나야 매일 겪는 일이지만 그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 하는 여행이야. 제주도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라면서 기꺼이 채비를 해서 나가곤 했다.

“열 가지만 몸으로 느끼고 가라”

사진/ 산업재해로 잘려나간 몽땅한 손 때문에 '거북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하종강)
“차라리 여행사를 하나 차리는 게 어떠냐”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강남규씨는 정말로 여행사를 차렸다. 1996년에 민주노총과 함께 ‘새날여행사’를 시작했다가 문을 닫고 지금은 ‘제주문화관광개발원’이라는 다소 색다른 이름의 여행사를 운영중이다. ‘생태문화관광’ 및 ‘제주역사기행’이 중심상품이라는데 홈페이지(www.chejudream.co.kr)에 올라 있는 여행사 광고에는 ‘삶의 의미’‘우리 땅’‘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주체적’‘생산적’‘삶의 질 향상’ 따위의 단어들이 눈에 띈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지만, 흡사 무슨 시민단체나 재야연구소처럼 보이는 그의 사무실에 앉아서 그가 토해내는 ‘갯벌체험’‘숲체험’‘동굴체험’‘먹을거리체험’‘생태기행’‘제주 4·3기행’에 관한 열변을 듣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종의 제주도 자생풍수로 ‘방사탑’이라는 게 있어. 육지 사람들의 솟대 비슷한 거지. 마을의 허한 곳에 세워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해서 방사탑(防邪塔)인데, 원형이 점점 훼손되고 있거든. 몇년 지난 뒤에 가면 이게 원형인지, 변형된 건지 누가 어떻게 알아보겠어. 제주도에서 태어난 나도 아직 모르는 곳이 너무 많아.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몇년 안에 모두 없어져버릴 모습들이라고.” 그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답사를 나가고 어려운 살림에도 1만7천 컷이나 되는 슬라이드와 사진자료를 마련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먹을거리 체험한다고 와서 토종닭이나 토종돼지불고기들을 먹고 가는데, 그거 웃기는 거야. 빙떡이나 보리빵에 꿩엿 발라먹기 그런 걸 해야 해. 1월에도 따뜻한 날에는 물에 들어갈 수 있거든. 아이들이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불 쬐면서 고구마나 감자를 석쇠에 구워먹어봐. 정말 소중한 경험이지.”

“비자숲 관광한다고 그냥 한 바퀴 휙 둘러보고 가잖아. 그렇게 하면 안 돼. 떨어진 비자 열매를 꺾어서 냄새 맡아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기가 나고, 손가락으로 비자나무를 누르면 쑥 들어가요. 비자나무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으면 미끄러지지가 않아요. 우리는 비자숲 체험할 때 항상 맨발로 걸어. 처음에는 아이들이 벌주는 줄 알고 겁을 내지만 나중에는 모두 깔깔거리고 웃어. 머리 아프게 억지로 외우지 말고, 열 가지만 직접 몸으로 느끼고 가라. 그거지.”

생태계 교란하는 생태관광

사진/ 10여년째 그의 끼니를 챙겨주는 딸 윤희와 함께.(하종강)
“요즘 허브식물, 허브식물 하면서 난리도 아닌데, 깻잎·상추·고추 이게 다 훌륭한 허브식물이야. 약초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훌륭한 허브식물이 얼마나 많다고. 그걸 사람들이 몰라요. 외국에서 수입되는 허브식물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거라고.”

제주도에 사는 식물들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부지런히 받아 적기에만도 정신이 없다. “천지연에 자생지가 있는 담팔수, 잣과 밤맛이 난다는 구실잣밤나무, 돈나무라고도 하는 똥랑나무, 콩을 반 쪼갠 듯하다 해서 콩짜개란, 꽃을 찧어서 그 즙을 강에 흘리면 고기들이 떼로 죽어 떠오른다고 해서 떼죽나무, 가마귀쪽나무, 배롱나무(나무백일홍), 비자나무, 그냥 지나가면 아무 냄새도 없지만 잎을 주워서 비벼보면 정신이 버쩍 날 정도로 향긋한 냄새가 나는 상산나무….”

자칭 제주도 몽생이(망아지) 출신인 그가 흥분하자 ‘육지 사람’인 내 앞에서도 제주도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우리 어릴 적에 산에 가면 할머니들이 ‘나물을 다 무지려부민(뜯어버리면) 되느냐, 냉겨나둬야(남겨둬야) 내년에 또 싹이 날 게 아니냐’ 그랬잖아. 요즘 생태관광한다고 와서 나물 싹 다 캐버리고 짓밟고 가는 일이 허다해. 수백년 걸려 만들어진 환경을 단 1, 2년 만에 끝장내버린다니까.”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농촌에서는 농민운동을 하듯이 그는 새로운 분야의 ‘문화관광운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제주 관광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그는 “온힘을 쏟고 싶다”고 했고 지금도 집보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이제 대학생이 된 그의 딸 윤희(21·제주대 사학3)가 매일 아침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아빠 사무실로 온다. 윤희는 아빠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을 10여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74컷짜리 제주 역사·민속·자연에 관한 그의 슬라이드 강연 명성을 익히 들은 터라 “팸플릿이라도 있으면 하나 달라”고 했더니 “우리는 그런 것 안 만든다니까”라면서 한마디로 자른다. 그에게 세상의 때가 묻는 날은 언제일까…. 강남규, 이제 고생 그만하고 제발 돈 좀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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