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의 봉합'…경제만의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의 다른 이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가 바야흐로 자유주의의 놀이터가 돼가고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처럼 자유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며, 자유주의 이후를 준비할 때라고 말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련·동구권 국가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자유주의 이념의 종국적 승리가 입증됐다는 주장은 거센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대립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역사적 단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며, 이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끝으로 인류역사는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자유와 민주는 대립개념
세계 곳곳에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자유주의의 끝모를 변신과 확장욕을 웅변해준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영역에서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삼는 현대의 자유주의 조류를 말한다. 나라 안에선 자본의 자유로운 운신을 통제하는 국가의 여러 정책적 규제를, 국제적으론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가로막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고한 지 150여년이 지난 21세기 벽두, 여전히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지도 아래 푸르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발흥해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확장해온 기본적 운영원리이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자유주의는 정치제도 및 경제활동의 기본원리이자, 인류의 지배적 사고방식으로 정착돼왔다. 자유주의의 주인은 봉건사회의 탯줄을 끊고 새롭게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다. 이들은 절대왕정의 봉건적 특권과 맞서 상업과 산업활동의 자유, 신분적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또 봉건적 신분질서로 개인을 속박하는 국가나 공동체에 대항해 개인의 가치를 옹호했다. 자유주의는 개인이야말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일 잘 알고, 가장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인간은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천부적 인권을 담지하고 있으며, 이런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사회를 이룬다는 사회계약설은 이런 인식을 집약해 보여준다. 개인들의 개별적 이해관계 사이의 조화는 국가와 같은 외부기구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는 가정(예정조화설)은 그 철학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개연성이 큰 국가에 대해 생래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 국가의 권력행사는 법의 통제 아래서만 제한적 정당성을 가질 뿐이다.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신성한 것이다. 국가나 집단이 강제로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을 금압해선 안 된다. 개개인이 저마다의 신념과 사상을 자유롭게 내놓고 논의하면 저절로 어느 것이 우월한 사상이며 신념인지가 결정되리라고 본 것이다. 경제적으론 개인의 자유가 사적 소유의 불가침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는다. 시장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주체로 참여하는 마당이며,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국가의 개입은 비록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물리쳐야 할 악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적대감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가운데 가장 모호한 것이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자유와 민주는 불가분의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로 자유와 민주 사이엔 머나먼 다리가 가로놓여 있다. 자유경쟁은 근본적으로 개인 사이의 불평등을 불러오는 반면,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평등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평등한 배분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로 모든 성원은 1인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경제적 차원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한다면, 모든 성원은 동등한 경제적 권리 또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소유와 경쟁의 자유, 그에 따른 불평등한 결과의 수용을 본질로 하는 자유주의와는 팽팽하게 대립한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원리 또한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를 이루는 개인주의와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다수결로 결정된 집단의 방침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복종을 요구한다. 자유주의는 그 처방으로 소수에 대한 관용을 내세우고 있지만, 집단과 개인의 대립은 언제라도 갈등으로 증폭될 수 있다. ‘절차’에 머무는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자유와 민주라는 두 대립개념의 봉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가 민주 앞에 붙듯이 그 봉합의 기준선은 민주 아닌 자유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의 민주주의, 곧 평등의 추구를 의미할 뿐이다.
그 한도는 대개 1인1표와 다수결이라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멎어 있다. 이로써 민주주의는 전면적 평등이라는 본래의 지평으로 뻗어가는 대신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문제로 축소되고 만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자장 안으로 수렴된 민주주의이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시선에서 배제돼 있다.
한국에선 그나마 사정이 더 나빴다.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주장돼왔지만, 실로 그 요체라 할 개인의 자유는 오랫동안 늘 국가의 폭력 앞에서 고개를 숙여왔다. 경제적 자유도 관치의 위세에 억눌린 채였다. 유신과 신군부 치하를 거치며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극심하게 훼손됐다.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반공독재가 걸친 외피에 불과했다.
1987년 6월항쟁을 기점으로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자유의 영역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국가보안법은 온존한 상태이며, 사상의 자유는 제한되고 있다. 마광수 교수에 대한 법의 탄압은 문화적 자유조차 척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적 자유는 진척되고 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는 자유의 절대성 논리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자유주의는 정치·사상·경제 영역에서의 자유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사상의 자유조차 가로막는 극우 기득권세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자유주의의 햇볕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유주의는 정치·사상의 자유에 대해선 눈감은 채 경제적 자유만을 외치는 파탄적 논리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것일 터이다. 자유의 불가분성을 도외시한 경제만의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1948년 정부수립 이래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의 정체로 제시해 왔다.
세계 곳곳에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자유주의의 끝모를 변신과 확장욕을 웅변해준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영역에서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삼는 현대의 자유주의 조류를 말한다. 나라 안에선 자본의 자유로운 운신을 통제하는 국가의 여러 정책적 규제를, 국제적으론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가로막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고한 지 150여년이 지난 21세기 벽두, 여전히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지도 아래 푸르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발흥해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확장해온 기본적 운영원리이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자유주의는 정치제도 및 경제활동의 기본원리이자, 인류의 지배적 사고방식으로 정착돼왔다. 자유주의의 주인은 봉건사회의 탯줄을 끊고 새롭게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다. 이들은 절대왕정의 봉건적 특권과 맞서 상업과 산업활동의 자유, 신분적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또 봉건적 신분질서로 개인을 속박하는 국가나 공동체에 대항해 개인의 가치를 옹호했다. 자유주의는 개인이야말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일 잘 알고, 가장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인간은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천부적 인권을 담지하고 있으며, 이런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사회를 이룬다는 사회계약설은 이런 인식을 집약해 보여준다. 개인들의 개별적 이해관계 사이의 조화는 국가와 같은 외부기구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는 가정(예정조화설)은 그 철학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개연성이 큰 국가에 대해 생래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 국가의 권력행사는 법의 통제 아래서만 제한적 정당성을 가질 뿐이다.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신성한 것이다. 국가나 집단이 강제로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을 금압해선 안 된다. 개개인이 저마다의 신념과 사상을 자유롭게 내놓고 논의하면 저절로 어느 것이 우월한 사상이며 신념인지가 결정되리라고 본 것이다. 경제적으론 개인의 자유가 사적 소유의 불가침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는다. 시장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주체로 참여하는 마당이며,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국가의 개입은 비록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물리쳐야 할 악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적대감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 가운데 가장 모호한 것이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자유와 민주는 불가분의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로 자유와 민주 사이엔 머나먼 다리가 가로놓여 있다. 자유경쟁은 근본적으로 개인 사이의 불평등을 불러오는 반면,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평등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평등한 배분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로 모든 성원은 1인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경제적 차원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한다면, 모든 성원은 동등한 경제적 권리 또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소유와 경쟁의 자유, 그에 따른 불평등한 결과의 수용을 본질로 하는 자유주의와는 팽팽하게 대립한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원리 또한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를 이루는 개인주의와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다수결로 결정된 집단의 방침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복종을 요구한다. 자유주의는 그 처방으로 소수에 대한 관용을 내세우고 있지만, 집단과 개인의 대립은 언제라도 갈등으로 증폭될 수 있다. ‘절차’에 머무는 자유민주주의

사진/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자유주의 이념을 꽃피운 계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