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귀족의 표상, JP
등록 : 2001-09-04 00:00 수정 :
프랑스쪽 초청으로 프랑스 우주항공업체를 며칠 둘러봤습니다.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기종 선정을 앞두고 미라주 후속으로 개발한 ‘라팔’을 선전하려는 의도였겠지만, 프랑스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라팔 프로젝트에는 항공기 제작회사인 다소, 전자장비업체인 탈레스, 국영 엔진제작회사인 스네크마 등 3개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다소에서 제작한 전투기만 2500대, 제트기는 1200대가 넘고, 스네크마에서 만든 아리안 위성 로켓엔진이 1천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항공기 제작현장과 역사를 보면서 프랑스가 단순히 예술과 낭만의 나라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사회시스템에서 크게 앞선 나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면에서 미국 일변도인 우리에게 유럽과 프랑스가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우며 탐구하고 개발할 여지가 큰 자원으로 생각됩니다. 차세대전투기사업은 전략적인 고려도 있어야 하겠지만, 결단코 기종의 성능과 기술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바탕으로 자주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파리에서 만난 홍세화 선생은 한국 기준으로 보면 프랑스는 ‘빨갱이 나라’라고 사회제도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주5일근무는 물론이고 노동자들은 1년에 5주간의 휴가- 오랜 투쟁 끝에 쟁취한- 를 향유합니다.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주는 학용품 보조금(1인당 1600프랑, 약 30만원)을 지금처럼 똑같이 주자, 아니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가는 기술고등학교에는 좀더 주자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것이 프랑스의 좌우대립입니다.
파리 시내 라데팡스지역에서 한국의 여느 살림집과 다르지 않은 아파트에 사는 그는 한겨레신문사에서 곧 출간할 새 책을 마무리하느라 바빴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본 한국사회를 ‘사회귀족’이란 개념으로 해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귀족은 뻔뻔하고 책임의식은 없고, 모든 것을 누리면서 힘의 논리로 관철하려 합니다. 사회 전체가 귀족화해서 사회귀족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귀족화 풍토가 워낙 굳건해서, 예컨대 서울대를 나온 이들은 비서울대를 소외시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가치의 전도로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본래의 업인데 돈에 눈이 멀고 이것이 당연시된다고 고발합니다.
어쩌면 지나친 비판이 아닌가 싶지만 그의 날카로운 분석에 반박할 거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JP는 그나마 거리를 완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평양축전은 동티가 있었지만 안 한 것보다는 한 것이 큰 의미가 있으며, 축전에 참가한 7대 종단 대표들은 동티가 있다 해도 그것은 통일부 장관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호소했습니다. 뚜렷한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색깔론에 편승해 통일부 장관 해임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대의도 명분도 없고 시류에 따라 어떻게든 상황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회귀족의 표상을 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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