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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색깔테러’를 법정에 세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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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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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약자인 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경아(26)씨가 지난 8월22일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낸 까닭이다. 이씨는 8월21일 김포공항에서 재향군인회와 베트남참전동우회 등 4개 우익단체 회원 100여명에게 둘러싸여 10여분간 일방적인 욕설과 폭력에 시달린 뒤, 이들 단체 회원들을 폭력혐의로 고소했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자통협)에서 실무간사로 일하는 그는 대학생 여자후배와 함께 평양에서 귀환하는 방북대표단을 환영하러 김포공항 제2청사 앞을 지나다가 폭행당했다. “한반도가 그려진 손깃발을 들고 가는데, 갑자기 여러 명이 둘러싸더니 ‘어린 것들이 왜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느냐’며 깃발을 빼앗고, 각목과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 등을 때리더군요.” 이씨는 “깃발을 되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우악스런 손길에 머리채를 잡힌 채 3m가량 질질 끌려가 또 한바탕 발길질을 당하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구나’ 하는 마음에 무섭고 또 슬퍼서 그만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터지더군요. 그래도 욕설과 폭력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 일을 떠올리면 무섭기만 하다”며 “폭력이 노리는 효과가 이런 두려움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일 때문에라도 결코 폭력에 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 “잊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대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폭력으로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침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독재와 권위주의의 망령을 살아숨쉬게 하는 자양분이 아니겠어요.”

이씨는 “이번 일로 우리 사회에 새겨진 분단의 골이 얼마나 깊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며 “흑백논리와 폭력을 강요하는 그릇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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