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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잠자는 레미콘들이 절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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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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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인정’등 요구하는 전국건설운수노조 노동자들이 137일째 상경 노숙투쟁하는 기막힌 사연

사진/ 파업 137일째.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당산철교 아래 레미콘 노동자 농성터.(강창광 기자)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쪽은 우리가 보름만 굶으면 작업장으로 복귀할 줄 알았고, 우리는 보름만 파업하면 대화하자고 나올 걸로 알았는데…. 양쪽 다 만만찮은 상대를 만난 겁니다.”

총파업 137일째. 지난 8월2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철교 밑에서 만난 박정득(41·전국건설운송노조 지부장)씨는 외롭고 긴 싸움에 지친 구석이 얼핏 스쳤지만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검게 그을린 그의 구릿빛 얼굴이 따가운 햇살에 반짝, 빛났다.

하루 13만원씩 세를 주며 쓰는 농성장


전국건설운송노조는 지난해 9월 레미콘 차량 운전기사들이 건설한 노동조합으로, 지난 4월부터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상경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계절이 두번 바뀌고 있지만 이들의 노숙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다만 대다수 비정규직 노조가 그렇듯 현재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이 이들의 희망이다. 농성터인 당산철교 아래 얼기설기 엮은 20여개 천막마다 나붙은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플래카드만이 이곳이 노숙‘투쟁’장소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 농성장이요? 하루 13만원씩 세를 주고 쓰는 겁니다. 몇달간 파업하면서 먹고살기도 힘든 판인데 자릿세까지 내야 하다니….” 혀를 끌끌 차던 장문기(49) 건설운송노조 위원장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한줄기 시원한 강바람이 농성터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농성장소로 이곳을 택한 건 무더위를 피해서가 아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지난 5월부터 여의도공원 옆에 레미콘 차량들을 세워놓고 기나긴 노숙투쟁을 벌였다. ‘이 가뭄에 웬 파업이냐’는 억지논리가 판칠 때는 레미콘 차량을 앞세운 채 경기도 파주로 달려가 논에 물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다음날인 6월19일 농성현장은 이미 진압된 뒤였다. 그래서 ‘쫓겨’ 옮겨온 곳이 이 한강 둔치다.

“뭐라고? 거참, 한판 붙게 될 모양이구만.” 갑자기 박정득 지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또다른 농성터인 광화문에서 경찰과 승강이가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레미콘 시위는 당산철교 밑, 광화문, 국회의사당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레미콘 노동자의 시위방식은 좀 독특한 데가 있다. 여기에는 ‘튀어보자’는 심산보다는 차라리 서글픈 현실이 놓여 있다. 사람들이 레미콘 파업에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눈길을 끌려다보니 시위가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노비문서, 도급계약서 철폐!’를 세운 채 뗏목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뗏목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반라로 쌀포대를 뒤집어쓰고 여의도를 행진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도는 순회투쟁에 나섰고 4월에는 온몸에 흰붕대를 감고 해골 마스크를 쓴 채 미라 분장으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시위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박 지부장의 말은 이런 점에서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자 누군가가 주먹밥을 가져왔다. 농성중인 레미콘 노동자가 스스로 직접 지은 밥이었다. 김치 한 보시기에 주먹밥으로 얼른 점심을 때운 이들은 남은 주먹밥을 차에 실었다. 광화문과 국회의사당쪽 농성장에 보낼 밥이었다.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노조 가입만을 이유로 마구 해고하고 장거리 배차 같은 불이익을 줬습니다.” 장문기 노조위원장은 “그래서 ‘파업 아닌 파업’이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조합 인정 △도급계약서 철폐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처벌 등이다.

그들은 어떻게 ‘특수 노동자’가 됐는가

사진/ 레미콘 노동자 시위는 독특한 데가 있다. 지난 5월 한강 뗏목시위 장면.
노동조합 인정이 왜 논란거리일까. 이는 사실 논란이라기보다 ‘노조 인정 절대불가’라는 사업주들의 고집에서 비롯된다. 전국 레미콘 사업장은 700여곳으로, 레미콘 운전노동자는 2만4천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비정규직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자신들도 노동조합 결성에 나섰고 지난해 9월 영등포구청으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조합원은 2300여명으로, 70개 사업장에 분회도 구성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인천지방노동위원회 그리고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도 “레미콘 운전기사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노조활동을 인정했다. 레미콘 노동자가 비록 ‘지입차주’로서 독립된 사업자처럼 도급형식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실제 계약관계, 업무내용을 보면 종속상태에서 회사로부터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단체인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레미콘연합회)와 사업주들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채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단체교섭도 거부하고 있다. 레미콘연합회 강세희 사업부장은 “레미콘 운전기사는 레미콘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지입차주’로서 독립된 개인사업자이지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며 “몇 군데에서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내려질 때까지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법리적 논쟁이 종지부를 찍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레미콘 노동자들이 사업주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한 게 무려 200여건에 이른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행정관청이 일단 노조 신고증을 내준 만큼 사업주가 교섭을 거부하는 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속을 벌이고 있다”며 “그러나 노동자성 인정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도 사용자들의 완강한 교섭거부를 한몫 거들고 있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노동조합 인정, 즉 노동자성 판단은 이들이 지입차주가 된 과정 및 ‘노비문서’가 돼버린 도급계약서 내용과 맞물려 있다. 이들은 원래 건설회사에 속한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러나 사업주들은 지난 87년 이후 회사가 보유한 레미콘 차량을 이들에게 강제불하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제불하 조처는 레미콘업계에 노조결성 움직임이 일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대응책이었다. 이렇게 레미콘 운전기사들은 하루아침에 ‘지입차주’라는 허울좋은 이름의 특수고용 노동자로 전락했다. 건설운송노조 오희택(38) 사무차장은 “당시에 차량을 받지 않으면 대신 회사를 떠나라는 협박이 동원됐다”며 “이에 따라 차량 유지비나 기름값, 보험료가 회사 대신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졌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조합원 400명, 파업중 일방적 해고

사진/ 지난 4월 '노동자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고 있는 레미콘 노동자들.(강창광 기자)
사업주들이 강제불하에 나선 데는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속내도 숨어 있었다. 한사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레미콘연합회쪽은 “노조를 인정하면 운송단가(레미콘을 운반한 데 따른 보수) 인상뿐만 아니라 퇴직금까지 줘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사업주들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당근’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당시, 차량을 불하받으면 물량을 몰아주겠다거나 월급제보다 ‘탕제’(한탕, 두탕 등 운송횟수에 따라 보수를 주는 것)가 낫다고 회유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끼였을 뿐 뒤에는 ‘채찍’이 숨어 있었다. 이는 불평등 도급계약서가 그대로 보여준다. 사업장별로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도급계약서를 보면 ‘회사의 배차지시에 불응해서는 안 되며’, ‘차량관리 및 운반작업에 발생되는 일체의 비용을 운전기사가 부담하고’, ‘회사의 제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말로만 사업자’일 뿐인 셈이다. 게다가 회사는 도급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작성한 뒤 무조건 도장을 찍도록 강요하고 있다. 건설운송노조 박정득 지부장은 “사용자들은 우리를 일을 부릴 때는 노동자로, 비용이 들 때는 개인 사업주로 몰아가는 이중잣대를 쓰고 있다”며 “도급계약서는 노비문서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비문서가 도급계약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차량 지입조건에도 차값을 마음대로 갚지 못하게 옥죄면서 노동자를 쥐락펴락하는 조항이 곳곳에 들어 있다. 3천만∼4천여만원짜리 중고 레미콘 차량을 불하할 때 한꺼번에 갚지 못하게 하는 대신 일한 보수에서 루베(레미콘의 부피단위)당 500∼700원 정도씩 떼내 차값으로 공제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일하면서, 일한 만큼 갚아라”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달았지만 사실은 회사에 묶어두고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한 세련된 통제였다. “코를 꿰어놓은 겁니다. 싫으면 차를 내놓고 회사를 떠나라는 식이죠. 계약 당시 수천만원짜리 약속어음 공증을 강요했는데, 언제든 이것을 들이대고 손해배상 운운하며 협박하기 일쑤입니다.” 장문기 노조위원장이 어느새 식어버린 주먹밥을 먹다 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곧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5∼6년된 중고차를 불하받아 4∼5년에 걸쳐 모두 갚고 내 차가 될 때쯤이면 수명을 다해 새로 차를 사야 할 때가 돼버립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내돌려져’ 왔습니다.”

교섭 대신 돌아온 건 느닷없는 해고였다. 조합원 400여명이 파업기간중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된 것이다. 1년의 계약기간이 파업기간중 종료됐다는 게 이유다. “우리가 지금 도급계약서를 철폐하고 단체협약을 맺어 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싸우고 있는 판인데 기존 도급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종용하는 게 말이 됩니까? 안 찍으면 덜컥 해고해버리고….”

월수입 700만원? 과연 그럴까

사진/ 지난 6월, 경찰이 레미콘 노동자들의 여의도공원 농성장을 강제진압하고 있다.(이정우 기자)
레미콘 노동자의 평균나이는 43살. 수입 한푼 없는 나날의 고통이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갈 정도로 극심할 때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건설현장 잡일을 찾아 나섰고, 전기, 전화가 끊겼는가 하면 연금보험까지 깨서 쓴 지 이미 오래다. 쪼들리는 생활을 카드대출로 막았지만 그것마저 바닥나자 뒤이어 레미콘 차량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해고된 조합원은 실업급여도 못 받습니다. 그런데도 여기 농성장에 세워놓은 레미콘 차량은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입니다.” 오희택 사무차장이 긴 한숨을 지었다.

“월수입 700만원의 개인사업자”, 레미콘 운전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레미콘연합회가 내세우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레미콘연합회쪽은 “일감이 많은 지역에서는 700만원도 받는다”며 “총도급비 중 30% 가량을 차량 유지비 등 경비로 쓰고 나머지는 가져가는데 한달 200여만원 이상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한달 평균 70차례 운행에 운송단가를 3만원으로 잡으면 도급비가 210만원에 불과하다며 15t 레미콘 차량을 운행하는 데 드는 기름값 등을 빼면 집에 가져가는 건 80만∼100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강제불하받은 차량 값까지 갚고 나면 남는 게 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수당 항목이 아예 없는 탓에 낮에 일하든 밤샘작업을 하든 운송단가는 똑같이 적용된다. “(야간·휴일수당을 더 주지 않아도 되다보니) 사업주들이 토요일 밤을 넘겨 일요일 새벽까지 일을 시키고 월요일에는 또 새벽 서너시까지 나오라고 그럽니다. 그게 어디 쉬는 일요일입니까?”

왜 사업장이 아닌 당산철교 밑에서 노숙투쟁을 벌이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이는 레미콘업체마다 법원에서 노조활동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아낸 뒤 회사 정문에 ‘조합원 출입금지’ 팻말을 굳게 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름도 가고 있지만 파업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레미콘업계는 “파업으로 정상적인 생산이 불가능할 때 지역 인근 업체가 전폭 지원하기로” 담합하거나 수많은 개인 용역차량을 대체근무시키면서 파업을 비웃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과 무관한 삶을 살아오던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오랜 파업을 거쳐 어느새 삶의 한복판을 차지해버렸다. “닭장차만 봐도 이제 저 차는 에어컨이 달린 차인지 아닌지 금방 알아볼 정도입니다.” 말수가 적은 장문기 노조위원장은 더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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