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강현구씨 ‘인생세탁’의 진실… 가족들 인종차별적 재판 주장
서른둘의 청년은 한국말이 서툴렀다. 2000년 8월27일 오전 10시 안양교도소. 푸른 수의를 걸친 청년은 “미국에 가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해 11월 구속돼 올해 2월 대마초 흡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재미동포 강현구씨. 10월4일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지만, 형기 만료가 다가올수록 그의 두려움은 커져간다. 이미 99년 미국 법정에서 271년형을 선고받았고, 출소와 동시에 미국 교도소로 보내질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국내로 도피해 호적을 새로 만든 까닭
강씨의 사연은 지난 7월 강씨의 아버지(55)가 허위공문서 작성죄 등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강씨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아들의 도피생활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강씨는 미국에서 271년형을 선고받기 직전, 보석으로 나와 한국으로 도피한 터였다. 일간지 사회면 한쪽에 실린 기사들은 “빗나간 부정(父情) 법정구속”, “자식인생 세탁해주려던 재미사업가 법정구속”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기사의 내용도 강씨가 LA 한인타운에서 갱단을 조직해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질렀고, 장기형이 확정될 위기에 놓이자 한국으로 도피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가 강씨의 도피를 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8월24일 <한겨레21>을 찾은 강씨쪽 사람들은 “보도된 바와 다른 점이 많다”며 “271년형을 선고받기까지는 인종차별적인 재판을 받는 등 불운이 겹쳐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강현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LA의 한인타운에서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들어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LA 한인타운의 유흥업소는 번창 일로였다. LA 한인타운의 유흥업소가 호황을 누리자 중국계 갱단들이 한인타운으로 세력확장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 청년들과 중국인 갱단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92년 흑인폭동을 겪으며 부모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본 한인 청년들 사이에 “한인타운은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터였다. 세력이 큰 중국 갱단의 횡포가 이어졌다. 불만을 품은 한인 청년들은 중국 갱단이 운영하는 매춘업소에 소속된 콜걸 4명을 유인해 집단 강간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강간을 저지른 청년 중에는 강씨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 두어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과 어울리던 강씨도 ‘공모죄’로 이 사건에 연루돼 1997년 8월15일 한인 청년 7명과 함께 구속됐다. 강씨쪽은 “직업상 불량배로부터 업소를 지키기 위해 평소 자신의 나이트클럽에 들락거리는 몇몇 한인 청소년들과 친분관계를 맺었을 뿐 조직폭력배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측근들에 따르면, 재판부 구성부터 인종차별적이었다. 판사와 검사는 모두 흑인이었고, 배심원도 흑인과 중남미계가 주축이었다. 동양계는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92년 LA 흑인폭동을 거치며 흑인과 한인들 사이의 감정이 악화된 상황이었다. 강씨쪽은 증거도 확실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강간 범죄현장에서 강씨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고, DNA검사에서 강씨의 정액도 추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씨에게는 강간을 사주한 ‘공모죄’(conspiracy)가 적용됐다. 강씨쪽은 “범행에 직접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모든 사건에 공모죄가 적용돼 유죄평결을 받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이들은 “강씨가 강간을 사주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강씨에게서 버림받은 옛 애인이었다”며 “개인적 감정까지 뒤섞인 재판이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강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99년 2월 배심원판결에서 그는 강간사건을 포함해 7개 사건, 45개 항목으로 유죄평결을 받게 된다. 선고가 다가오자 강현구씨의 아버지는 보석금 220만달러(25억여원)를 낸 뒤 99년 3월 초 아들을 한국으로 도피시켰다. 강씨가 도피한 뒤, 미국 법원은 궐석 재판을 통해 271년형을 선고했다. 함께 구속된 청년들에게는 70년형에서 160년형이 선고됐다. 강씨의 아버지는 “일급 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게도 이렇게 높은 형을 내리지는 않는다”면서 “모든 증거를 다 인정한다 해도 지나치게 높은 형량”이라고 흥분했다. 이어 그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미국 경찰과 법원의 몰이해를 중형의 한 이유로 꼽았다. “문화적 몰이해도 중형선고에 영향”
“제 아들과 함께 구속된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입니다. 걔들은 현구를 ‘형님’이라고 부르죠. 미국 경찰은 우리말 ‘형님’을 영어식 ‘보스’로 잘못 알고 있어요. 그래서 현구를 조직폭력배의 두목으로 본 겁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220만달러를 보석금으로 낸 사실이 알려지자, 강씨 아버지 주변에는 돈을 노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국에서 무역업을 통해 상당한 재력을 쌓은 그의 이야기가 소문이 났던 탓이다. 몇몇은 “아들의 한국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겠다”고 접근했다. 몇번 사기를 당한 끝에, 아버지는 전남의 군청 공무원에게 2천만원을 건네주는 대가로 아들의 호적을 위조할 수 있었다. 결국 강씨는 이모부의 호적에 아들로 올라갔다.
99년부터 광주에서 영어선생을 하며 한국생활에 적응해가던 강씨에게 또다른 불행이 닥쳤다. 지난해 11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호적 위조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리 없었다. 강씨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것은 물론, 강씨의 아버지도 허위공문서 작성죄로 지난해 11월 기소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강씨의 구속은 송환요구로 이어졌다. 강씨의 검거를 통보받은 미국 법무부가 99년 체결된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한국 검찰에 강씨의 신병 인도를 요청한 것이다. 조약체결 뒤 첫 번째 범죄인 인도요청이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서울 고검은 7월28일 서울 고법에 강씨에 대한 인도심사를 청구했고, 8월20일에는 서울 고법에서 범죄인도심사재판이 열렸다. 강씨쪽은 “재판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며 “재외동포 보호차원에서라도 송환을 심사숙고해달라”고 읍소했다.
현행 범죄인 인도법은 ‘범죄인이 인도대상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 인도를 요청한 나라에 신병을 넘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대상자의 국적과 송환의 인도적 성격이 참고가 된다. 한편, 강씨는 법무부에 국적회복을 요청한 상태다. 한국에서 태어나 세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강씨의 국적회복 가능성은 있다. 만약 강씨의 국적이 회복된다면, ‘자국민의 경우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는 조약규정에 따라 강제송환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자칫 ‘자국민에 대한 사법 관할권 포기’의 선례가 될 수도 있어 당국도 곤흑스러워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여전히 강씨의 송환 가능성은 높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도대상 범죄자의 국적은 범행 당시가 기준이 된다”며 “범행 당시 미국 국적이었던 강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법원의 인도허가 결정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급작스런 변화가 없는 한, 강씨는 10월 초 출소하자마자 미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아들의 송환을 앞둔 강씨의 아버지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며 호소했다.
인권적 차원에서 송환 심사숙고해야 한다
“돌아가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합니다. 게다가 미국 감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에요. 체격도 작고, 숫자도 적은 동양계는 폭행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송환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그는 또 “이번 재판을 통해 20년의 피땀 끝에 이룬 아메리칸 드림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렸다”고도 덧붙였다. 여전히 소수민족에 냉엄한 미국의 현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적 재판을 받았다는 강씨쪽 얘기는 현재로서는, 인도심사재판에서 좀더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주장’일 뿐이다. 더구나 강씨와 아버지는 대마초 흡연과 주민등록증 위조라는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심사숙고’도 거치지 않고 송환을 결정하는 일은 피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민족감정의 문제라기보다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90년대 들어 미국 주요도시의 한인타운에 유흥업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강현구씨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했다.(강재훈 기자)
이들 주장에 따르면, 강현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LA의 한인타운에서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들어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LA 한인타운의 유흥업소는 번창 일로였다. LA 한인타운의 유흥업소가 호황을 누리자 중국계 갱단들이 한인타운으로 세력확장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 청년들과 중국인 갱단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92년 흑인폭동을 겪으며 부모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본 한인 청년들 사이에 “한인타운은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터였다. 세력이 큰 중국 갱단의 횡포가 이어졌다. 불만을 품은 한인 청년들은 중국 갱단이 운영하는 매춘업소에 소속된 콜걸 4명을 유인해 집단 강간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강간을 저지른 청년 중에는 강씨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 두어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과 어울리던 강씨도 ‘공모죄’로 이 사건에 연루돼 1997년 8월15일 한인 청년 7명과 함께 구속됐다. 강씨쪽은 “직업상 불량배로부터 업소를 지키기 위해 평소 자신의 나이트클럽에 들락거리는 몇몇 한인 청소년들과 친분관계를 맺었을 뿐 조직폭력배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측근들에 따르면, 재판부 구성부터 인종차별적이었다. 판사와 검사는 모두 흑인이었고, 배심원도 흑인과 중남미계가 주축이었다. 동양계는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92년 LA 흑인폭동을 거치며 흑인과 한인들 사이의 감정이 악화된 상황이었다. 강씨쪽은 증거도 확실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강간 범죄현장에서 강씨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고, DNA검사에서 강씨의 정액도 추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씨에게는 강간을 사주한 ‘공모죄’(conspiracy)가 적용됐다. 강씨쪽은 “범행에 직접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모든 사건에 공모죄가 적용돼 유죄평결을 받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이들은 “강씨가 강간을 사주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강씨에게서 버림받은 옛 애인이었다”며 “개인적 감정까지 뒤섞인 재판이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강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99년 2월 배심원판결에서 그는 강간사건을 포함해 7개 사건, 45개 항목으로 유죄평결을 받게 된다. 선고가 다가오자 강현구씨의 아버지는 보석금 220만달러(25억여원)를 낸 뒤 99년 3월 초 아들을 한국으로 도피시켰다. 강씨가 도피한 뒤, 미국 법원은 궐석 재판을 통해 271년형을 선고했다. 함께 구속된 청년들에게는 70년형에서 160년형이 선고됐다. 강씨의 아버지는 “일급 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게도 이렇게 높은 형을 내리지는 않는다”면서 “모든 증거를 다 인정한다 해도 지나치게 높은 형량”이라고 흥분했다. 이어 그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미국 경찰과 법원의 몰이해를 중형의 한 이유로 꼽았다. “문화적 몰이해도 중형선고에 영향”

사진/ LA한인타운의 상가들. 92년 흑인폭동 뒤 한인 청년들 사이에 "한인타운은 우리손으로 지키자"는 분위기가 일었다.(강재훈 기자)

사진/ 법정영화 <타임 투 킬>의 한 장면. 강간 공모범으로 몰린 강현구씨는 인종차별적 재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