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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윤동욱] 양심을 몽땅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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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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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전문기자’ 신윤동욱 기자는 얼마나 양심에 투철할 수 있나, 그 1주간의 훈련

양심이 지식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양심의 자유를 이해하려면 지식이 필요했다. 서울의 한 서점에서 '양심의 자유' 관련 서적을 찾고 있는 모습.
양심의 세계에 뛰어들려면 양심선언부터 할밖에.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의 가사노동에 빌붙어사는 놈이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부모성 같이 쓰기를 한다. 집안에서는 유사 가부장, 집 밖에서는 사이비 페미니스트. 이게 나의 두 얼굴이다. 게다가 난 비양심적 소시민이다. 급하면 무단횡단은 기본에, 지하철에 앉기만 하면 질끈 눈부터 감아버린다. 행여 할머니라도 앞에 올세라. 마지막으로, 나는 ‘양심’을 팔아 기자 생활을 연명하는 놈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밑천 떨어질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아이템의 화수분이다. 그리고…. 커밍아웃할 것이 너무 많다. 혹시라도 나를 페미니스트로 오해했을지 모를 <한겨레21> 독자 앞에, 특히 내 기사를 믿어준 여호와의 증인들 앞에, 나는 회개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우려먹은 지 어언 반년…

남들이 알고도 안 썼는지, 알아도 못 썼는지 모를 기사를 단지 처음으로 썼다는 ‘기득권’을 맘껏 남용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우려먹은 지도 어언 반년. 깊은 고민없이 내뱉은 내 기사에 양심상업주의 혹은 인권상업주의 딱지를 붙여도 별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과분한 칭찬이 뒤따랐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까지 격려 이메일이 날아들었고, 회사는 상까지 안겨줘가며 나의 얄팍함을 채찍질했다. 마이너리티의 대변자? 우쭐함에 도취되려는 순간, 내 마음 밑바닥에 고여 있던 자의식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에이, 양심도 없는….’


그래도 짐짓 외면하며 지냈다. 기자니까. 일로 하는 거니까. 그럴수록 ‘양심문제’가 끈질기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침내 8월 어느날, 나는 내 고민을 가장해 다시 한번 양심을 세일즈했다. “김창석 선배, 양심문제 한번 다뤄보죠.”

뜻밖에 반응이 좋았다. 금요일 기획회의에서 8월 셋쨋주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 후보로 선정된 것이다. 공은 사회팀으로 넘어갔다. 8월14일 오후, 사회팀이 둘러앉았다. 안영춘 사회팀장, 김창석 기자, 김소희 기자의 질문 공세에 내가 전전긍긍하며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는 형국이었다.

“근데 도대체 양심의 개념이 뭐냐?”

“어… 저도 헷갈리긴 하는데…. 어제 책을 찾아보니까, 양심(concience)은 라틴어 ‘con-scientia’에서 유래한 말이래요. ‘우리 자신에 대한 앎’이란 뜻이라던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량한 마음 하고는 조금 다른 거네.”

“그럼, 양심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하고 어떻게 다른 건가?”

“역사적으로 보면 양심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서 출발한 거래요. 교권이 지배하던 중세사회가 종교혁명을 거치면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거죠. 그게 근대로 넘어오면서 사상의 자유로 확대된 거고요. 그러니까 양심의 자유 안에 사상의 자유가 포함되는 것…. 맞나?”

꼬리에 꼬리를 문 ‘양심논쟁’

양심논쟁에 휘말린 <한겨레21> 사회팀. 안영춘 팀장, 김소희 기자, 휴가중인 김창석 기자의 대타로 나선 손원제 기자(시계방향)
주말 동안 찾아본 책 두어권과 동국대학교 법학과 한상범 교수에게서 귀동냥한 말로 근근이 방어를 하기는 했으나, 답변은 언제나 말줄임표로 끝났다. 이런 나에게 사회팀원들은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코앞에 닥친 ‘표지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사회팀의 말잔치는 계속됐다. 김창석 선배는 TV에서 방영된 <이경규의 양심냉장고>를 예로 들며 우리 사회에서 ‘양심’을 논의하는 수준이 기껏 ‘기초질서 지키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곤 스스로 만족해했다. 요즘 들어 점점 열혈 페미니스트가 돼가는 김소희 언니는 “굳이 룸살롱 안 가겠다는 남자의 손모가지를 끌고 가는 또다른 남자들의 행동도 양심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분개했다. ‘안구라’로 소문난 사회팀장은 “하마스의 폭탄테러도 민족적 양심에 따른 행위 아니냐?”는 도저한 질문으로 우리를 어리둥절케 했다. 한번 시작된 양심논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말과 말 사이에서 사회팀원 모두가 서서히 지쳐갔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할 시간. 역시 팀장이었다. “이 정도면 표지로 해도 되겠네!”

웃는 낯으로 헤어졌지만 다음날 아침 만난 사회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거… 기사로 풀어내기 쉽지 않겠는데….” 호시탐탐 눈치를 살피던 내가 거들었다. “한총련 학생들, 채식인들,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사례로 나올 것 같은데, 꼭 마이너리티 모음집 같아요.” 오고 가는 말과 눈빛 속에 모종의 합의가 싹텄다. 그리고 팀장에게 다가가 ‘통고’했다. “안 선배, 이번주 표지이야기 딴 거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안영춘 팀장은 마음이 약해서인지, 자신이 고백하기로 한 ‘안양심씨의 비양심적 하루’를 쓰는 게 두려워서인지, “알았어”라고 짧게 답했다. ‘구원의 여인’ 김소희 언니가 예의 그 카리스마로 민망해하는 나를 도왔다. “그래, 표지는 어렵겠네. 동욱씨가 고민을 많이 했으니까 그걸 녹여서 기자가 뛰어든 세상으로 써요. 양심을 찾아서!” 거부할 수 없었다. 예의 그 소심함으로 “그러지 뭐”라고 쉬운 답변을 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양심’을 버린 죄로, 그주 표지이야기의 구원투수로 나선 이종범 선수를 쫓아 대전으로, 광주로 떠밀려 다녀야했다.

마감을 하고 정신을 차리니 새로운 한주가 내 앞에 있었다. 요리조리 피해온 양심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주.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 양심을 체험해서 기자가 뛰어든 세상으로 쓰지?’ 더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일말의 양심도 없는 파렴치한이 될 지경이니 도리가 없다.

8월21일 수요일. 한주 동안 지켜야할 나름의 양심 수칙을 정했다. 지하철에서 무조건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기, 남들이 보지 않아도 무단횡단하지 않기, 일찍 퇴근해서 가사일 거들기. 가끔 고기를 먹으며 죄책감을 느꼈던 터라 잠시 일주일 동안 채식만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키지 못할 원칙이란 생각에 제외. 나열해 놓고 보니 <…양심냉장고> 따라하기에 불과한 저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나인걸. 대신 양심 훈련과 양심 학습을 병행하기로 했다.

8월22일 목요일 정오, 동국대학교 법학과 조국 교수를 찾았다.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두꺼운 육법전서 속에서 썩고, 사회교과서에서는 공문구로 읽히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였다.

60억 인류에겐 60억개의 양심

한주 동안 모신 양심의 스승들. 조국 교수는 양심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양심은 선한 마음입니까?”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에서 말하는 양심은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와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가치판단의 개념이 아니예요. 옳고 그름을 떠나, 한 인간의 내면을 뜻하는 거지요. 신념, 지조, 사상, 세계관, 인생관을 포괄하는 게 양심입니다.”

“그렇다면 양심은 사람이면 모두 다 갖고 있고, 다 다른 거군요?”

“네 그렇다고 봐야죠.”

“흔히들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군대 가는 사람은 양심도 없단 얘기냐?’고 묻는데요.”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있는 사람들이 하는 병역거부란 뜻이 아닙니다. 특정한 양심으로부터 나오는 병역거부라는 풀이가 정확하지요.”

유레카! 60억 인류에게는 60억개의 양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양심과 비양심을 나누는 근엄한 도덕주의자”라는 비난에도, “군대 안 가는 게 양심이면, 군대 가는 것은 비양심이냐?”던 예비역 병장들의 힐난에도 좀더 또렷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대 안 간다고 양심 없다는 것 아닙니다. 양심에 거리끼지 않으면 안 갈 수도 있는 거죠!”

조국 교수의 명강의는 한 시간여 이어졌다. 그는 양심의 자유를 구성하는 요소로 침묵의 자유, 사상추지 금지의 원칙, 기존질서에 반하는 사상을 실천할 자유 등을 꼽았다. ‘침묵의 자유’는 말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말하지 않을 자유”다. 이 원칙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미국 군대 내에서 성적 소수자들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떠올랐다. “(성정체성을) 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

‘사상추지’는 어떤 행위를 강요해 놓고, 그 행위 여부를 통해 사상을 추정하는 것을 말한다. 전향서나 준법서약서가 대표적인 사상추지 행위다. 마지막으로 기존질서에 반하는 사상을 실천할 자유는 때때로 제약될 수 있다. 하지만 제약은 엄격해야 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그 제약의 원칙이다. 하마스의 민족적 양심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폭탄테러가 용인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불러오는 탓이다. 그렇다면 한총련은? 강정구 교수의 서명은?

아, 왜 이리 내키지 않는가

배움은 날로 늘어났으나, 양심은 날마다 나를 배반했다.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 마음은 내 머리를 배반하고,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이번 역은 그냥 지나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번잡한 지하철에서 시험은 피해갈 수 없는 법. 번번이 아이를 업은 주부가, 할아버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자리를 비키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아… 왜 이리 내키지 않는가. 어쩌다 이리 치졸한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끓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체험중이야, 훈련중이야’라는 주문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목요일쯤 되자 잔꾀가 떠올랐다. 양심의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맞아, 좌석버스는 자리를 양보할 일이 거의 없지. 한번 갈아 타는 불편쯤이야!’ 내 잔꾀는 그렇게 내 양심을 배반했고, 좌석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양심 따위는 잊어버리려는 듯 눈을 꼭 감았다. 가사노동?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겨우 하루를 지켰을 뿐이다. 번번이 야근을 핑계로, 약속을 핑계로 늦게 귀가함으로써 회피해버렸다. 내 양심은 그토록 허약한 것이었다.

허약한 내 양심을 한탄하면서, 준법서약서를 거부한 그 사람들이, 고난을 자초하며 양심선언을 했던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8월24일 금요일, 현정덕씨와 이문옥씨를 만났다. 이문옥씨는 90년 당시 감사원의 비리를 폭로해 구속까지 당한 ‘양심선언자’다. 현재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문옥씨는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선택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아직도 양심선언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회장으로 있는 ‘양심선언자회’ 회원 중 한명은 최근에도 양심선언 전력이 문제가 돼 국회의원 보좌관 자리를 얻는 일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나마 최근 부정부패방지법에 내부고발자 보호 조항이 들어간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현정덕씨는 사노맹 중앙위원으로 구속돼, 준법서약서를 끝내 거부하고 8년3개월 만기형을 살다나온 사람이다. “양심…”얘기를 꺼내자 현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겸연쩍어하며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출소한 지 4년째지만 준법서약서 거부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에게 드리워져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는 요즘에도 현씨는 “아직도 사회주의자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여태껏 현씨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적이 없는 탓이다. 양심의 자유의 기초인 침묵의 자유를 아직 이 사회는 그에게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정덕씨와 이문옥씨를 만나다

이문옥씨는 양심을 실천한 사람의 당당함을 보여주었다.
현씨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우리 사회가 ‘민감한 양심들’을 끊임없이 심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법서약서 한장 쓰는 것이 뭐가 어렵냐?”,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왜 못 가겠다는 거냐?”, “먹을 것 가지고 왜 그렇게 유난떠냐?”.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직한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 속에는 “나는, 우리는 하는데 당신은 왜 못하는 거냐?”라는 은근한 질책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법이 양심을 단죄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양심은 둔감해져버렸고, 남의 양심을 훼손하는 행위에 무감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양심에 대해서 성찰할 여유가 부족하고, 양심을 훈련할 기회가 없었던 사회에서 일주일간의 양심 체험은 턱없이 부족한 훈련일 게다. 어쩌면 양심문제는 평생에 걸쳐 되묻고, 반성하고, 실천해야할 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나 같은 양심불량자도 양심적 병역거부 기사와 성적 소수자 문제를 자주 쓰다 보니 가끔씩 추궁당한다. “군대는 갔다 왔냐?”, “애인의 성별은 뭐냐?”. 노코멘트다. 침묵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어서.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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