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은 아프다. 지난 5월 간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심을 보지 못하고 2008년 간암으로 별세했다. 그의 어머니도 2010년 간암으로 별세했다. 지난 7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씨. 유리창에 비친 나뭇잎이 겹쳐 흔들린다.
한겨레 강재훈
대법원은 이번 재심 개시 결정문의 상당 부분을 전대협 노트 등 새로운 증거물에 바탕한 필적 감정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데 할애했다. 무죄를 강하게 추정한 서울고법이 재심 개시 사유로 삼았던 주요 근거를 송두리째 부정한 셈이다. 대법원은 진실화해위·서울고법과 달리 △전대협 노트 등이 뒤늦게 발견되고 보관된 경위를 둘러싼 관계자의 진술 내용에 여러 의문점이 남아 있으며 △진실화해위가 한 필적 감정은 김기설의 필적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진행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대신 대법원은 “국과수 소속 문서감정인들이 허위 증언을 한 사실이 증명됐다”며, 증언 부분만을 문제 삼아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사건 발생 21년, 유죄 확정 20년 만에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강기훈씨 재심의 핵심 쟁점 역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의 진실 여부를 가리는 데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1991년부터 20년 넘게 강씨를 변호해온 이석태 변호사는 “재심 개시 결정은 반갑지만 타협적인 부분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진실화해위의 필적 감정보다 1991년 수사 당시 위증을 해가면서 이뤄진 필적 감정이 우월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인정할 수 없다”며 “필적 감정에 대한 예단 역시 2007년 진실화해위 때보다 1991년이 더 심했을 것”이라고 했다. 강기훈씨는 대법원 재심 개시 결정 뒤 “그동안 검찰이 주장한 것처럼 자신들이 정말 그 당시 잘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지금도 정말로 확신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필요에 따라 고집하는 것인지 몰라도, 이제는 (검찰이)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며 “재심 재판(의 결과)보다 내게는 검찰의 사과와 반성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진실 여부는 재심에서 가려지더라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자체는 검찰과 사법부를 수렁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1960~80년대 횡행한 고문조작 사건들은 주로 중앙정보부나 경찰이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 수사 자체가 부실했던 탓에 남아 있는 수사 기록이나 증거도 별로 없다. 오래되다 보니 수사나 재판을 맡았던 이들도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다. 반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에 터졌다. 검찰과 사법부로서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를 핑계로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사를 덮어버릴 수 없는 시기다. 수사·공판 기록도 대부분 남아 있다. 수사를 했던 주임검사부터 유죄를 확정했던 대법관들까지 대부분 생존해 있다. 검찰과 사법부는 사실상 한배를 탄 셈이다. 재심에서 강기훈씨의 자살방조 혐의가 무죄로 나온다면 수사·기소를 맡았던 검찰과 1·2심, 대법원까지 줄곧 유죄를 선고했던 사법부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 몫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여기에 그 이름들을 다시 적어둔다. 서울지검 강력부장 강신욱, 주임검사 신상규, 검사 안종택. 강기훈 구속 기소, 징역 7년 구형. 1991년 12월 서울형사지법 징역 3년 선고. 재판장 노원욱, 판사 정일성·이영대. 1992년 3월 서울고법 항소 기각. 재판장 임대화, 판사 윤석종·부구욱. 1992년 7월 대법원 유죄 확정. 대법관 김상원·박우동·윤영철·박만호. (부장검사 강신욱은 2000년 검찰 몫으로 대법관이 됐다. 주임검사 신상규는 2009년 고검장까지 올랐다. 대법관 윤영철은 2000년 헌법재판소장이 됐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