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잉여' 강성석씨. 10년전 반전집회 현장에서 '히피 퍼포먼스' 펼치던 아나키스트 신학도는 그사이 각지의 투쟁현장을 유랑하며 먹고 놀고 싸우는 '날라리 전문시위꾼'이 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ince@hani.co.kr
재회는 우연하게 이뤄졌다. 지난 5월 환경재단이 제주 해군기지 시공업체인 삼성물산의 후원을 받아 서울환경영화제를 연 것이 논란이 일었고, <한겨레21>이 이 문제를 취재했다. 리슨투더시티라는 예술 프로젝트 그룹이 영화제 행사장 앞에서 1인시위를 펼쳤는데, 사진기자가 찍어온 현장 사진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강성석이었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그를 만났다. 강성석은 그대로였다. 집회·농성 현장을 유랑하며 놀고 노래하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라이엇구로’(@riotguro)라는 트위터 계정으로 사회적 발언을 쏟아내는 데도 열심이었다. 허풍기도 여전해 “이 동네선 나도 제법 유명인사”라며 으스댔지만, 확인해본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8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먹고 노는 동안 석사 학위 받기도 라라컬트가 해체된 뒤 강성석은 ‘투쟁과 밥’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각지의 점거 농성을 지원하는 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큰 집회가 열리면 모금함을 돌려 돈을 모으고 현장에 들어가 밥 짓고 노는 게 일이었다. 뚜렷한 소속도 없는 이들이 도움을 자청하고 나서자 현장에서도 처음엔 의심스런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변변한 족보도 없는 놈들이 밥해주겠다며 들어오니, 대부분 ‘이 날나리들 뭐야?’ 하는 분위기였다. 경건해야할 농성장에서 슬리퍼 신고 돌아다닌다고 핀잔도 많이 먹었다.” 2004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 경기도 고양시 풍동 철거현장을 드나들며 먹고 놀고 공연했다. 풍동에서는 망루 안에 PC방을 만들어 ‘온라인 투쟁’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강성석은 자랑했다. 철거용역과 대치하는 와중에 빈 건물 벽에 불법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빔프로젝트로 쏴가며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거창한 이상이나 신념 때문에 들어간 게 아니다. 이라크전 반대 집회가 잦아들고 마땅히 놀 데가 없으니까 새로운 놀이터를 찾아 들어간 거지.” 그의 농성 이력은 미군기지터 조성을 위해 강제 철거에 들어간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빈집 점거 현장으로 이어졌다.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대추리에 들러 먹고 자고 노래하고, 빈 땅에서 푸성귀를 가꿨다. 인상적인 것은 그사이 강성석이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2008년 감신대 대학원에서 기독교 아나키즘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강성석의 말로는 국내에서 이 분야 연구로는 자신의 것이 최초라고 했다. 신학도와 무관한 삶을 살던 그가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우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6년이나 다닌 대학을 졸업하게 되자, 목사인 아버지는 생활비 지원을 끊으려고 했다. 계속 돈을 타내려면 대학원 가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기왕 신학대 물 먹은 거, 그럴듯한 논문이라도 한 편 써보자는 욕심도 있었다.” 대학원을 마치자 결국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유학을 준비한다는 거짓 핑계로 돈을 타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자리를 구했다. 카드회사 콜센터의 야간상담 업무였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였다. 벌이는 괜찮았지만 스트레스가 심했다. “술 먹고 카드 결제가 안 된다며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어대는데, 8개월이 지나니 더 하다간 미쳐버릴 거 같았다.” 2011년 초부터 ‘래디컬 잉여’의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철거반대 투쟁이 한창인 서울 명동 마리 농성현장에 들어갔다. 반은 장난 삼아 ‘명동해방전선’이란 모임을 만들어 농성장에서 아나키즘 세미나를 열었다. 그해 여름 희망버스 행사를 앞두고는 2인조 밴드를 급조했다. ‘바리케이트 톨게이트’라는 이 밴드에서 강성석은 카주(kazoo)를 분다. 보컬도 연주도 특출난 게 없어서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부르는 곳이 꽤 된다고 했다. 밴드 자작곡이 대여섯쯤 되는데 제목이 이런 식이다. ‘내가 너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게 있다’ ‘미식가가 되자’ ‘내가 널 설마 좋아하나봐’. 그는 이 래퍼토리를 갖고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농성장, 명동 잡년행진, 5·1 총파업 등에서 공연했다. “삥 뜯으며 재밌고 치열하게 살겠다” “30대 중반인데, 불안하진 않나?” 강성석에게 물었다. 답변이 단호했다. “어차피 뭘 해도 기성세대에게 허락된 삶을 우린 못 누린다. 그래서 그 사람들 것 ‘삥’ 뜯으면서 재밌고 치열하게 살기로 했다. 잉여, 백수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난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까.”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