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작가
나는 몇 년 전,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다짐은 지켜진 편이다. 난 지난 몇 년 동안 예전 같으면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일만한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는 데도 그냥 그러려니, 외면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권력형 비리가 연일 터지고, 철거민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어떤 철거민들은 불에 타 죽고,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나의 작업실 앞에서 몇날 며칠을 진을 치고 구호인지, 노래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울부짖어도 조용히 헤드폰을 귀에 두르고는 내 세계 안에 있었다. 엄밀히 그것은 나의 일은 아니었다. 자기 투쟁, 자기가 하는 거니까 그저 ‘힘들겠다’ 는 동정의 시선을 보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내 집 현관문 앞까지 왔다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왔다”라는 시처럼 얘기하자면, 난 철거민이 아니었고, 해고된 대기업 노동자도 아니었고, MBC노조원도 아니었기에, 침묵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시처럼 그들은 정말 나의 집 현관문 앞까지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제! 작가가. 작가마저 해고된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지 생각이 다르고, 감히 정의와 진실을 표현하려한단 이유로,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쫓겨난 것이다. 난 물론 <PD수첩>작가도 아니고, 시사교양 작가도 아니고, 해고된 적도 없는 단지 TV 드라마 작가다. 하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무섭다. 난 그간 침묵하면서 마음속으론 ‘내 일이나 잘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작품에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작가로서 보는 세상을, 역사를,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작가의 종말…. 마틴 니묄러의 시를 진작에 읽었고, 알고 있었으면서 왜 이제야 이걸 깨달았단 말인가. “나치는 먼저 공산당을 숙청했다. 난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조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톨릭 교도들을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였으므로 침묵했다./그리고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나를 위해 나설 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 그래도 니묄러보다 우리가 운이 좋은 것은, 아직 남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우리의 대부분은 나처럼 어리석진 않다는 것이다. <PD수첩>을 지켜야한다. 우리 작가들을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작가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지켜야 우리가 특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없다. 솔로몬은 오지 않는다. 우린 서로에게 사랑하는 아이를 돌려줄 솔로몬이어야 한다. 분노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그저 나약한 나처럼 무서워라도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올 세상에 대해. 그리고 느꼈으면 좋겠다. 언제가 내 차례가 될지 모를 그 공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