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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만장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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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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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은 때 만장일치(滿場一致)라고 한다. 만장일치가 되면 싸울 일도 없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리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판박이로 찍어 만든 물건이 아닌 이상 어찌 각인각색 사람들이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생김새는 물론이고 생각이나 사상, 가치관은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장일치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의 x세대, n세대들이야 톡톡 튀는 것을 좋아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가령 중국집에서 다른 사람이 모두 자장면을 시켰는데, 혼자서 간자장을 시키면 별난 놈, 혼자 튀는 놈, 사회성 없는 놈으로 취급되고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가장 큰 위험, 비토

시야를 넓혀 나라의 정치를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론분열이요,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국론통일이다. 물론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양한 국론없이 하나의 정치적 입장만 존재하는 나라라면 그 분위기는 상상만 해도 숨막힐 것이다. 회사나 대학의 인사에서도 만장일치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간다면 만장일치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 들겠지만 깊이있게 따져본다면 만장일치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위험천만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만장일치의 가장 큰 위험은 거부권(비토)에 있다. 다른 사람 모두가 결의해도 한 사람만 반대하면 결정이 되지 않으니 거부권은 토론과 결정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장치다. 유럽의회정치사를 살펴보면 만장일치제도가 때로는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근대사회 태동기, 프랑스의 신분제의회인 삼부회는 만장일치제도를 채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의회의 의결기능은 물론이고 심의기관으로서의 의회기능이 마비되었고, 결국 국왕의 절대권력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달랐다. 의회의 전통이 가장 오래된 영국은 중세부터 의회에서 만장일치제가 아니라 법원의 판결에 이용되었던 다수결제도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 근대적인 의회가 성립된 이후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도 다수결원칙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로 채택한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1차대전 참화의 자성 위에서 탄생한 최초의 집단안보기구 국제연맹은 만장일치제를 취했기에 의결기능을 상실했고 그래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 그뒤 국제연맹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만들어진 국제연합에서 다수결제도가 채용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만, 국제평화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의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고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 5개국의 만장일치제를 취하고 있다.

이렇듯 만장일치제와 거부권은 근대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기에 신중에 신중을 요하는 극단적인 처방인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학총장, 그룹총수, 위원장, 회장, 소장 할 것 없이 이들은 대부분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직권’이라는 이름으로 의견수렴 없이 또는 의결과 반대되는 처분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권력자들이 오만하고 부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했던 액튼 경의 경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한 사람의 거부로 결정이 되지 않는 제도나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거부권 행사로 무시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제1원칙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소수가 다수의 의견에 승복하는 것으로부터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그렇다고 소수가 무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완벽한 원리라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상대어는 전체주의

하지만 많은 결점에도 민주주의, 특히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우수한 제도이다. 반면 다수결의 원칙이 무시되는 만장일치제는 사실은 전체주의에 가깝다. 만장일치제가 자연스러운 전체주의국가에서 ‘지도자=당=인민’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100%에 가까운 득표율로 국가지도자가 당선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지, 아니면 51%를 득표한 후보가 49%를 득표한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당선되는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소중한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상대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만장일치와 거부권에 집착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다.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독재도 끔찍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소수의 전횡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에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이 넓으면 넓을수록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반면 사상과 의견의 통일이 강요되는 편협한 사회가 이를 곳은 전체주의와 독재밖에 없다. 그래도 거부권, 만장일치, 국론통일, 일사불란을 거리낌없이 주장할 것인가?

*****370호 논단 ‘우리안의 복거일’ 중에서 “중복, 말복의 무더위에 복씨가 주장한 영어공용화론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기만 하다”라고 쓴 부분이우리나라 희귀성씨인 복씨에 대해 모욕감을 주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필자 최연구

최연구/ 국제관계학 박사·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대우강사 http://www.postech.ac.kr/~choi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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