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글자가 울고 있나니!
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인장(印章)은 원래 진짜와 가짜의 구별 등 신용과 비밀을 표현하려는 목적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점차 실용 차원을 넘어 예술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각(篆刻)이다. 전각은 가장 초기의 글꼴인 전서체(篆書體)로 인장을 새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서예가 붓으로 쓴 글자라면 전각은 칼로 쓴 철필이다.
그러나 인장이 단순히 문자의 형태만 새김질하지 않고 거기에 문자미(美)를 깃들이는 것이긴 하지만, 과도하게 멋을 부리다보니 글자도 아니고 획도 아닌 ‘엉뚱한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초정(艸丁)
권창륜(58·한국전각학회 회장)씨가 요즘 ‘한글 우리 글자체 되찾기 운동’에 나선 건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도장에 쓰인 한글이든 한자든 아무렇게나 획을 구부려쓰다보니 훈민정음 창제원리와 전혀 동떨어진, 도대체 어떤 글자인자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글자체의 원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인장을 새기다보니 미로 찾기처럼 돼버린 겁니다.” 물론 권씨도 인장에 조형성을 가미하는 데 반대하는 건 아니다. 조형미를 살리는 건 좋지만, 누가 봐도 “아, 김아무개의 이름이군” 하고 알아볼 수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글꼴을 무시한 채 마구 휘어쓰고 있다는 게 그의 한탄이다.
훈민정음체, 용비어천가체, 월인천강지곡의 한문체 등 우리 글꼴은 모두 문자의 원리가 있다. 관직이든 이름이든 간판이든 이런 서체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쓰자는 게 ‘우리 글자체 되찾기 운동’이다. 그는 “훈민정음이 혀, 이, 목구멍 모양 등 다섯 가지 소리 원리와 천지인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인데 인장업자들이 아무렇게나 구부려쓰는 통에 엉뚱한 모양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멋을 내거나 위조를 막으려고 도장을 일부러 어렵게 만든다고 하지만 같은 ‘한 일’(一)자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선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가짜인지 아닌지는 어렵잖게 판별할 수 있다.
이번 운동은 전각학회가 지난해 국가의 인장인 국새를 한글의 독창성을 살려 새로 제작한 데서 비롯했다. “국새에 이어 대통령직인, 국무총리직인, 각 정부부처직인부터 바꿔나갈 겁니다. 관인이든 대표자인이든 사인(私印)이든 한글의 기본원리를 파괴하고 일본 인장의 글자체를 모방한 게 너무 많아요.” 전각학회는 회원들이 제작, 출품한 인장 작품을 묶은 <올바른 관·사인>이란 책자를 펴내 8월 말께 각 행정기관에 나눠주고, 재료값만 대면 한글 원리에 맞는 글자체로 관인을 새로 새겨줄 예정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