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신자유주의+사민주의, 혹은 중도개혁주의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는 사회주의적인가. 사회주의의 미래는 있는가. <한겨레21>은 이러한 문제를 두고 두 전문가의 대담을 마련했다.
현 정부의 핵심브레인으로 꼽히는 황태연 교수(동국대 정치학)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의 현실적합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 현 정권의 성격을 중도적 질서자유주의노선으로 규정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인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는 국가사회주의 실패에 대비되는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들을 강조하면서, 현 정부에 대해선 신자유주의적 기조 위에 사민주의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말했다. 토론은 지난 8월14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주의가 포괄하고 있는 개념
사회: 사회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의 주류사회는 절대악이라 하고, 반면 일부세력은 고귀한 가치로 믿고 있는데.
황태연(이하 황): 한나라당의 비판은 아마도 서구의 낡은 사민주의 노선을 지금의 정부가 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고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페로니즘이라는 말을 쓴 것을 봐도 전위당 노선을 걸은 북한·소련·동구 등 국가사회주의보다 서구적 사민주의 경향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김호기(이하 김): 사회주의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의 사회주의는 경제체제를 의미하며, 사적소유의 폐지와 시장의 폐지를 특징으로 한다.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사회체제로, 사회주의 경제체제 더하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치체제를 뜻한다.
또 달리 보면 사회주의는 동구의 국가사회주의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사회민주주의도 사회주의에 포괄된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와의 대립 개념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아니지만,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개혁프로그램이라고 보면 사회주의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황: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사회주의의 개념도 달라진다. 서구 사민당은 스스로를 사회주의로 생각하는 세력과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t) 세력간의 동맹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서독 총리 슈미트는 “나는 사회민주주의자이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공언했다.
서구사민주의도 50년대 중반까지는 사회적 공동소유를 추구했다. 다만 국가소유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그뒤 독일 사민당부터 공동소유 테제를 삭제했다.
시장에 대해서 서구사회주의자들은 복지와 노동자의 이익과 발언권을 위해 제한돼야 하고, 따라서 경쟁도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중도보수주의자 에르하르트 2대 총리 등의 질서자유주의 노선을 좌우파 정당이 다 채용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관심이 시장을 제한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완전경쟁이 가능한 시장을 만드는가로 고민이 바뀌었기 때문에 소유나 시장에 대한 과거 사민주의 정책은 적어도 당권파와 주류에선 완전히 소멸했다고 할 수 있다.
김: 독일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슬로건을 바꿨다. 이 강령의 핵심은 사유재산과 자유시장경제 인정, 경영참여의 도입이었다. 50년대 서유럽에서는 육체노동자계급보다 신중간계급의 비중이 커졌으며, 이 강령은 이들의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정치성향을 반영하고자 했다. 한편 국가사회주의는 획일적인 경제정책 추진에 따른 권력독점과 참여배제라는 내재적 한계에 부닥쳐 실패했다.
황: 국가사회주의는 전위당 노선이며 수령당 형태이다. 이는 플라톤의 철인공산국가를 실제로 관철시킨 것이다. 그 배경은 극빈노동자 대중이었다. 사민당도 자신들의 개선 노력으로 신중산층이 늘어나고 상층의 숙련노동자들은 중간층이 되면서 벤츠나 아우디를 타는 상황에 직면해서 당혹하게 됐다. 극빈대중을 구원한다는 사명감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대중 자체가 바뀐 것이다.
또 시장에 대해서도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를 풍요와 다양성이 유지되는 경제로 만들려면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남은 것은 시장경쟁하에서 비인간적 요소를 줄이고, 어떻게 하면 좀더 균등한 권리를 확보하는가에 대한 지향뿐이다.
더구나 과거 주장했던 많은 내용들은 이미 현실 제도나 법으로 정착했다. 과거 사유재산제가 신성불가침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다만 공공소유권을 포함해 모든 소유권을 보장하고 사용권을 공공복리에 맞춰 제한한다고 돼 있다.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 관념이 깨진 것이다.
구사민주의와 신사민주의
김: 지난 20세기 사회민주주의 역사에서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작지 않은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장의 문제가 관건이다.
시장의 경쟁메커니즘엔 내적 역동성과 경쟁에 내재한 기회균등이 있다. 시장은 형식적 합리성을 내장하고 있고,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요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은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간에 균등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대한 약점을 갖는다. 폴라니가 ‘악마의 맷돌’이라고 부른 시장의 역효과이다.
이런 시장의 자기파괴적인 경향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이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집약됐고, 이는 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구사민주의자들은 국가의 완전고용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조종하고자 했다. 하지만 70년대 초반 전후로 사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노동생산성의 하락, 국민국가간 경쟁 격화, 그리고 과도한 복지지출에 의한 재정위기 등이 ‘국가의 실패’를 낳았다.
신사민주의는 이러한 구사민주의의 반성에서 나타난다. 90년대 이후 두드러진 경향은 정보화와 세계화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완전고용과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가 회의적이 됐다. 영국 블레어 정부의 적극적 복지정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정보사회에서 완전고용은 사실상 꿈이며, 따라서 기존의 완전고용과 복지제도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직업훈련, 교육개혁 등으로 새로운 고용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봤다. 신사민주의란 시장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사민주의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사회적 평등을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새롭게 모색하려는 것이다.
황: 구사민주의는 시장이 불평등을 생산한다고 봤다. 지금은 시장다운 시장을 만들면 기회균등을 증진시킨다고 본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장 내부에서 경쟁을 파괴하는 경향, 즉 독점을 제어하는 것이다.
시장에선 품질과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독점자본은 축적된 부를 이용해 낡은 기술로 만든 저질 제품을 싸게 팔아 신기술로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죽일 수 있다. 이러한 반경쟁적 경향을 방지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반독점법이나 공정거래법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국가개입만 막고 나머지는 내버려두는 반면, 질서자유주의는 독점자본의 반시장적 행위도 규제한다.
동시에 1등과 2등, 99등의 격차를 실제 이상으로 벌리는 시장의 가혹한 처사를 보완하는 역할도 국가의 몫이다. 우리 헌법상의 ‘경제의 민주화’ 정신에 비춰보면, 신자유주의를 쓰는 것은 이미 위헌이다.
김: 신사민주의는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 정부와 시장관계에서 볼 때 신혼합경제를 강조함에도, 시장에 대해 정부가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서 신자유주의나 구사민주의와 차별적이지 못하다. 적극적 복지정책이나 일자리나누기 등의 정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별 효과를 못보고 있다. 여전히 실업률이 높다.
또한 초국적 금융자본문제도 만만치 않다.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뾰족한 대안이 부족한 것 같다. 초국적 NGO들만으로는 어렵고, ‘초국적 케인스주의’라 할 수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황: 오늘날의 실업은 신기술의 투입 속에서 구기술을 가진 이들의 재교육의 어려움으로 인해 생겨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다. 대량생산, 대량노동 투입 경제와 소수의 엘리트적 신기술 인력을 요구하는 신경제 사이에 인구편차가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김 교수가 초국적 케인스주의라고 했는데, 케인스주의는 경기의 흐름에 개입하는 정책인 반면, 초국적 금융자본의 단기유동으로 인한 시장교란을 막기 위해선 질서자유주의적 개입이 필요하다. 김 교수 지적에선 두 개념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이에 대한 질서자유주의의 처방은 IMF와 WTO 개혁이다.
극우에겐 사회주의, 극좌에겐 신자유주의
김: 케인스주의는 강력한 중앙은행을 통해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규모가 큰 국가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경제규모가 작은 제3세계는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 이를 전 지구적 수준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신사민주의 프로그램이 불투명하다고 한 것은 정보화와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말한다. <현재의 부, 미래의 곤궁> 저자인 프랑스의 앙드레 고르는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사회적 총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고르에 따르면 전세계 30% 정도의 노동력은 과잉상태다.
이는 전통적인 사민주의 정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고르는 노동시간 단축과 자유시간 증대, 기본소득 보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민주적으로 이 과제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지가 고민의 핵심이다.
황: 어느 시대나 중산층이 대단히 중요하다. 19세기 말 부르주아가 중산층이었고, 이들이 70% 농민과 약간의 근로자를 이끌어 봉건사회를 타파했다. 부르주아 혁명세력은 러다이트운동을 벌이던 하층의 극단세력인 수공업자층과 봉건세력 사이에서 중간노선을 걸었다. 20세기에는 사민주의자들이 공산주의와 극우세력의 양 극단에 맞서 숙련노동자들로 조직된 노조와 자영업자를 이끌고 사회개혁에 나섰다.
한국의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지만, 극우세력이 보면 사회주의적이고, 극좌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이다. 가령, 생산적 복지는 첫째 외환위기 속에서 기득권세력에 이익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공존을 위해 분배를 강화한 것이고, 둘째 시혜적 복지 대신 일하려는 사람을 위한 교육에 중점을 둔 것인데, 지금 정치적 혼전 속에서 그 중도적 의미가 위협받고 있다.
사회: 자연스럽게 김대중 정부에 대한 평가로 넘어갔는데.
김: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면서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했다. 집권 초기 제3의 길의 한국적 변형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론을 모색했지만, 갈수록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강화돼왔다.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유연화, 민영화, 규제개혁, 해외매각 등의 구조조정과 금융정책, 재벌정책 등을 통해 시장의 활력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황: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재벌정책을 신자유주의에 포함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독점자본시대에 자유경쟁시대의 자유방임정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재벌에 대한 무규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 정권은 재벌의 경쟁교란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강화해 규제하고 있다. 민영화도 공산주의에 가까운 과거의 국유화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민영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교도소까지 민영화한 영국 대처와 달리 최소한의 민간적 경쟁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김: 구체적으로 정책을 들어보자. 노사정위원회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의료개혁 등은 분명히 사민주의적이다. 이것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민주의적이라고 했으면 아마 논란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증가 등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그 결과이다.
황: 구조조정은 기존 구산업의 다운사이징과 이에서 떨어져나온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교육과 새 일자리 창출로 이뤄진다. 필요없는 생산시설을 폐기하고 정리해고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이다.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없애려고 하지만, 저항이 너무 심하다. 독일만 해도 수십년 동안 엄청나게 싸워서 조금씩 쟁취한 것이다.
사민주의의 가능성은 있는가
사회: 복지국가와 사민주의의 관계는.
김: 서구의 복지국가는 자본과 노동의 역사적 타협의 결과다. 독일에선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정책으로 시작돼 사민당이 거시조정정책으로 이를 계승했다. 영국에선 노동당의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베버리지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황: 처음엔 사민당의 요구로 시작됐지만, 나중에 집권한 보수당도 표를 의식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서로 경쟁적으로 강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기할 것은 복지국가의 원칙 자체가 서구에선 이미 국가의 법률과 제도, 체제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사회: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또는 사민주의정당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보나. 그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황: 옛 육체노동자에 기반한 사회주의 노선이 지식기반경제로 바뀌는 상황에 얼마나 생존능력이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신경제, 정보사회의 변화를 못 따르는 비디지털 인구들의 기득권 방어에 국한할 때 무엇이 진보이고 퇴보인지의 이념적 테스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추진하는 세력의 능력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치적 기회구조와 시민사회적 지반에선 여전히 취약하다. 법률 개정 등을 통해 진보세력이 들어설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제도개혁에 주력했던 구사민주의 정치에 더해 환경, 여성, 인권, 정보 등 구체적 삶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생활정치를 적극적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정리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김호기.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면서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했따. 집권초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론을 모색했지만, 갈수록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화돼왔다.(박승화 기자)

사진/ 황태연.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지만, 극우세력이 보면 사회주의적이고, 극좌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이다. 지금 정치적 혼전속에서 그 중도적 의미가 위협받고 있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