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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리없는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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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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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생긴 일로 서울이 시끄럽습니다.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쪽 대표단 일부의 돌출행동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까지 열렸습니다.

남북관계가 민감한 시기여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체제가 다르고 정서도 다른 남북한이 만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시행착오라는 유장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방북단 소식을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방북단을 둘러싼 논란보다도 기실 이산가족문제입니다. 이맘때쯤 평양과 서울을 오가야 할 주인공은 정작 빠졌구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해 8·15에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뜨겁게 지켜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상봉도 더 자주 이뤄지고, 면회소도 설치되고, 서신교류도 되는 봄날이 올 것으로 다들 예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이산가족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북에서 나서 남에서 사는 이산 1세대가 120여만명이나 되지만 60살 이상이 70만명에 이를 정도로 고령화되어 그들의 목소리는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리없는 절규는 귓전을 아프게 때립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최근 중국에서 팩스를 한장 받고 며칠밤낮 얼굴을 적셨다고 합니다. 팩스는 사진을 복사해서 보낸 것으로, 사람의 윤곽만 흑백으로 희미하게 알아볼 수 있는, 어머니와 어릴 때 찍은 옛 사진입니다.


칠순이 가까운 이 분은 남북이 갈린 뒤로 어머니 얼굴이 한동안 떠올랐다가 영영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려지지 않는 어머니 얼굴. 그런데 두번의 복사과정을 거친 희미한 사진을 보는 순간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비록 살아계시지도 않고 만나지도 못했지만, 사진 한장으로 몇십년 만에 어머니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사진은 ‘나 홀로 대북사업’을 치밀하게 몇년째 벌여 중국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는 또다른 이산가족의 도움으로 중국까지 건너온 것입니다. 얼마 뒤 빛바랜 사진 원본을 손에 넣고 또다시 감정에 북받쳤지만, 이러한 미로찾기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어머니를 되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산가족 누구에게나 이러한 절절한 사연과 염원이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평화구축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생이별의 고통, 지구상 어느 곳에도 없는 비정상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남이나 북이나 시민 또는 인민을 위한 정부라면 이념, 전략에 앞서 무릎을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어떤 이유도 어떤 변명도 필요없습니다. 일각이라도 늦추는 것은 그만큼 죄를 더 짓는 일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문제에 희소식이 있기를 빌어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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