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직장 앞에서 남혜미씨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지금의 자원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겨레21 정용일
바람 불어 춥고 모질던 세월을 견디게 해준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간이침대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시며 저를 보살핀 엄마를 보니까 제가 너무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꿈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가장 큰 효도는 자식이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추슬렀어요.” 그녀가 병상을 털고 일어나는 데는 그즈음 읽은 한비야씨의 <그건, 사랑이었네>도 큰 힘이 되었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 구절을 읽고 바닥에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더불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독학으로 5개 국어를 연마하다 사실 그녀가 외무고시를 본 건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외교관이 되어 국제구호 활동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나라가 국제적 위상에 비해 해외 원조나 구호 활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잖아요. 외교관이 되면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고 싶었어요.”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많은 경우, 가난한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한 나라의 외교관이기보다 국제기구나 한비야와 같은 활동가들이니까. 다시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그녀는 그렇게 자원활동에 나섰다. 진로나 취업 등으로 불안해할 시간에 더 많은 입양인들을 만났다. 내 작은 수고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러다 보니 영어 실력이 녹슬 기회도 없었다. 하긴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남다른 언어감을 자랑하는 남혜미씨에게 영어는 그저 외국어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다. 그녀는 민망한 수준이라고 겸연쩍어했지만, 주변에서 그녀의 영어와 중국어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귀띔해줬다. 어학연수 한 번 안 가고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실력이란다. 일본어는 독학했고, 최근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와 화려한 ‘스펙’ 덕분일까. 2010년에는 자연스럽게 취업의 문도 열렸다.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몸살 나듯 바빴지만, 자원활동을 접을 순 없었다.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짬이 나면 번역과 통역 일을 거들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연애할 시간은 있을까? “남자친구는 없는데요. 같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신애라 같은 그녀가 차인표 같은 남자를 찾고 있다. 둘만의 사랑이 아닌 세포분열하는 사랑을 나눌 ‘자봉(자원봉사자) 커플’의 출현을 기대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