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기차가 밟고 간 절규

372
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철야-철야-비번 근무에 쓰러져간 철도노동자들… 민영화 위한 무리한 인력감축이 살인 불렀다

사진/ 올 등러서 철도산재사망사고는 벌써 12건에 이른다. 지난 7월 2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순직조합원 위령제.(철도노조 제공)
“철로에 놓인 침목 하나하나가 한국 노동자들의 주검이다.” 한국철도 100년사에서 일제시대에 유행처럼 나돌던 말이다. 이는 철도를 깔면서 한국 노동자들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그리고 동시에 철도현장이 늘 사고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다소 섬뜩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철도는 이제 21세기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꿈꾼다. 바야흐로 ‘철도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직접 선로에 내려가보면 철도‘현장’은 전혀 딴판이다. 르네상스는커녕 일제시대에 나돌던 유행어가 무색할 정도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달동안 단 하루 쉬었다”


지난 1월 홍영환(27)씨, 보선작업중 열차에 치여 사망. 3월 천용식(49)씨, 근무중 과로사. 4월 유황식(36)씨, 근무중 과로사. 같은 달 김상철(37)씨, 야간선로작업중 열차에 부딪혀 사망. 5월 이용수(44)·이춘익(51)·서성만(43)씨, 야간작업중 열차에 치여 사망. 6월 여상도(42)·김삼수(45)씨, 야간선로작업중 열차에 치여 사망. 7월 김대영(53)씨, 근무중 과로사…. 이들을 비롯해 올 들어 열차에 부딪히거나 과로사로 쓰러져 숨진 철도노동자는 12명에 이른다. 철도 민영화를 앞둔 무리한 인력감축 탓에 인력이 모자라다보니 밥먹듯 밤샘근무를 해야 하고 이것이 철도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29일 선로보수 도중 열차에 치여 숨진 부산보선사무소 선로반 김삼수 보선장의 1주일간 근무일지를 보자. 6월22일 금요일, 김씨는 하루 종일 근무한 뒤 저녁 6시에 퇴근했지만 집에 갈 수 없었다. 곧바로 이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고속철도건설 야간작업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토요일, 새벽까지 일한 뒤에도 잠 한숨 못 잔 채 9시부터 정상근무한 김씨는 일요일인 24일에도 아침부터 하루 종일 선로 위에 서 있어야 했다. 일요일 비상대기조였던 김씨의 근무는 이날도 밤을 넘겨 다음날 새벽 6시 동틀 무렵에야 끝났다. 밤샘근무는 사흘 뒤에도 이어졌다. 27일, 아침 9시에 정시출근해 저녁에 퇴근했으나 역시 집에 가지 못하고 이날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장대레일작업에 투입되어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물론 철야작업한 다음날이라 해도 쉴 수 없었다. 1주일 중 정상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한 날은 화요일 단 하루에 불과했다.

“열차 기관사가 철길 옆에서 작업하고 있던 그를 보았다고 합니다. 철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안심한 것이죠. 그런데 그가 느닷없이 허깨비처럼 쑥, 철길로 들어와버린 거예요. 열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사고가 나고 말았죠.” 부산보선사무소 선로반 김정환(43)씨는 김삼수씨가 숨진 당시를 돌이키며 연일 밤샘근무로 피로가 겹친 상태에서 주의력이 떨어져 변을 당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철로 침목이 철도노동자의 주검”이라는 말이 일제시대에 유행했듯 요즘 철도현장에는 ‘철철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철야-철야-비번을 일컫는 이 말은 24시간 맞교대도 아니고 이틀을 꼬박 밤샘한 뒤에 하루를 쉬는 철도노동자의 팍팍한 노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임금 때문에 일부러 철야를 하는 게 아니다. 철철비는 과다한 인력감축으로 일할 사람이 모자란 탓에 어쩔 수 없이 근무해야 하는 ‘강요된’ 노동이다.

그러나 골수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중인 이동선(청량리열차 여객전무)씨의 근무일지를 보면, 그래도 하루 쉬는 철철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 2월 이씨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78시간으로, 한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3월에는 주 63시간 30일 근무, 4월에는 주 64시간 27일 근무, 5월엔 주 70시간 30일 근무, 6월에는 주 65시간 29일 근무. 그리고 7월 그는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철도노조 이정순 대변인은 “5월 초부터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면서도 이씨는 ‘내가 빠지면 다른 동료들이 대신 고생할 게 뻔한데 어떻게 쉬느냐’며 일터를 떠나지 못했다”면서 “무리한 인원감축 때문에 철도노동자는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 노동자의 주당 평균노동시간 45.8시간과 견주면 이씨는 1주일에 1.5배가량이나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야간작업 보선원, 죽음에 몸을 맡겨

도대체 철도노동자 인력감축은 얼마나 이뤄진 것일까. 철도청은 지난 96년부터 내년까지 철도청 정원 3만5천여명 중 7700여명을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현장 철도노동자는 정원 2만9천여명 가운데 올해까지 무려 5055명이 감축됐다. 특히 선로보수를 맡는 보선원은 지난 95년 3560명에서 현재 2458명으로 30%나 감축됐다. 철도청은 내년 말까지 2300여명을 더 줄여 인력감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내년까지의 추가감축 대상에는 여객열차 기관사 500여명도 포함되어 있다.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함께 타 열차 양쪽에서 승객의 안전을 살피던 것을 기관사 혼자 타는 ‘1인 승무’로 바꿔 인력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철도청이 지난 8월8일부터 분당선(수서∼오리)에서 시험운행하고 있는 1인 승무 전동차의 반대쪽 문이 열리는 사고가 2차례나 일어난 데서 보이듯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인력감축에 대해 철도청 기획본부쪽은 “철도청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 중 61.3%나 인건비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여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인력감축은 철도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잘못된 민영화 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력감축의 바탕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철도 민영화라는 ‘줄여야 할 필요’가 앞섰고, 철도 민영화의 사전단계로 만성적 적자해소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인력감축을 그 해결방안으로 삼다보니 죽어나는 건 현장노동자들뿐이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권혜자 연구원은 “철도 경영적자의 원인이 과잉인력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철도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통해 그나마 적자가 축소되어 온 것”이라며 “더 줄일 수 없는 형편인데도 철도청이 민영화를 위해 인력을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철도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볼 때 프랑스는 59.8, 독일 44.7, 중국 70.2에 불과한 만큼 인력감축으로 경영적자를 해결하겠다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인력감축에 따른 장시간 노동의 고통은, 늘 야간작업이 기다리고 있는 보선원에게 집중되고 있다. 레일 간격을 조절하거나 깨진 침목을 새로 바꾸고 열차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갈을 까는 등의 선로보수작업은 열차운행이 뜸한 한밤중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도노조 이정순 대변인은 “10∼15명으로 구성되던 선로반이 지금은 과다한 인력감축으로 인해 5∼7명으로 크게 줄었다”며 “이 때문에 여름휴가는커녕 대부분 밤 10시부터 새벽 4∼5시까지 야간작업을 하고 다음날에도 또 일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틀간 이번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는 부산보선사무소 보선원 김정환씨는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 판에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동료가 며칠 동안 교대해주는 사람도 없이 밤새도록 일해야 한다”며 “그래서 다들 휴가쓰는 걸 엄두도 못 내는데 이틀이나마 휴가를 갔다온 나로서는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씁쓸해했다.

영국도 사고나자 인력 늘여

무리한 인력감축 탓에 반드시 두도록 되어 있는 열차감시인 즉,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못한 것도 사고의 원인이다. 밤샘작업에 시달린 탓에 몸이, 달리는 열차의 굉음을 듣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다음날 또다시 선로에 서야하는 보선원에게 열차감시인은 유일한 등불일 수밖에 없다. 철도노조는 “보선원이 시속 140km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피해 안전하게 작업하려면 열차감시인이 배치돼야 하는데 인력부족으로 이들이 빠지다보니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철도노동자가 잇따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인력감축이 잇단 사고를 부른 건 이미 민영화된 영국철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영국철도는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체 철도사업부문 고용의 25%에 해당하는 4만5천여명을 감축했다. 그러나 그뒤 88년 12월 35명의 사망자를 낸 열차사고에 이어 89년 3월 두건의 열차사고가 또 터지자 영국철도는 되레 인력을 늘려야 했다. 민주노총 오건호 정책부장은 “영국에서 인력감축이 역전된 건 열차사고의 주요원인으로 인원부족에 따른 철도노동자의 초과노동이 지적되고 이에 따라 무리한 인력감축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기 때문”이라며 “한국철도는 과잉인력이 문제이기는커녕 수송량 대비 인력이 세계적으로 톱 클라스에 들 정도로 적은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으면서 일하는 건 노동자의 기본 권리다. 그러나 박노해가 <노동의 새벽>에서 그랬듯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와도 다음날 또다시 일터에 서야 하는 철도노동자들에게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물론 한창 떠들썩한 주5일근무도 그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