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장애인에게 이동의 권리를 달라!

372
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봤어요.”

서울 성산동에 사는 양영희(35)씨에게 8월10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다늦은 나이에 겁없이 버스에 오르는 용기(?)를 ‘과감히’ 실천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막 걸음을 뗀 어린아이도 아닌데 그 나이에 무슨 용기까지 들먹이냐고 하겠지만, 양씨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서른다섯살이 된 올해까지 그의 이름 앞에 어김없이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양씨이기에 버스 출입구의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남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리프트가 설치된 지하철을 이용해 직장에 다니던 그가 용기를 내 버스타기에 나선 이유는, 450만 장애인이 겪고 있는 ‘이동권의 부재’을 더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장애인의 막막한 현실이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른 탓일까.

그는 이날 오후 3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가 서울역에서 연 집회에 참가했다가 시위를 벌이기 위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광화문까지 가는 버스를 탄 것이다. 비장애인 4명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버스에 오른 양씨는 연신 흘러내리는 땀도 아랑곳없이 차창 밖의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던지듯이 말을 뱉었다.

“장애인의 시간은 시간이 아니에요. 움직인다는 게 우리에겐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당신들은 모를 겁니다.”

지난 1월22일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타던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장애인들과 시민단체의 투쟁은 지금껏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움직임’이 고통스러운 이들의, 울림없는 메아리는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 것인가.


사진·글 임종진/ 자유기고가 stepano0301@hanmail.net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