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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주의 트윗- 군인 등 공직자의 대통령 욕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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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5 13:17 수정 : 2012-06-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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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학강사 박정수씨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어 논란이 일었다. 박씨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되었다. 한겨레 자료
실패한 국정이 범인이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욕설을 불러온 실체인 국정 실패를 탓해야

@baboscot 대통령이 국민들 사찰한 건 괜찮고, 국민이 대통령한테 욕 좀 한 건 재판감이냐? 미친 나라!

최근 언론에서 한 육군 대위가 자신의 트윗에 대통령을 비난하는 욕설을 올렸다는 이유로 군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현역 장교가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향해 “가카 이 ××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구 발악을 하는구나”라고 육두문자를 날리며 욕을 했다니 놀랄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말 어느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카 빅엿’이라고 도발을 했고, 올 초에는 어느 경찰 간부가 대통령이 보낸 격려 문자에 “검찰 제국으로 만들어놓고 무슨 염치로 이런 문자를 보내시느냐”며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답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권 말기의 기강 해이, 하극상, 레임덕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욕설의 주체가 판사·경찰·군인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가장 보수적인 곳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이들의 분노를 그냥 넘길 일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으려고 군검찰·법원·경찰청이 발 빠르게 나서서 대통령에게 욕설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기어이 징계를 내리고 기소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트윗 욕설의 스타일과 패턴을 보면, 아마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이른바 ‘쫄지마 정신’에 큰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제는 정치적 발언에서 하나의 스타일이 된 ‘쫄지마 정신’은 공직자들에게 언어와 표현의 금기에 대한 커밍아웃을 감행케 했다.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라는 공론장의 활성화는 역설적으로 정치적 발언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공직자들에게 침묵의 혀 빗장을 풀게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의 언어를 말하고 싶은 욕망을 더 자극시킨다. 왜일까? 그 통쾌함의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나꼼수>와 소셜네트워크는 분명 공직자들의 굳은 혀를 풀어버린, 근육이완제의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공직자들로부터 욕먹는 이유는 <나꼼수>와 소셜네트워크 효과 때문일까?

그건 분명 아니다. 대통령이 공직자들로부터 욕먹는 진짜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로 욕 얻어먹을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국가 기간산업 매각, 서울 내곡동 일대 사저 불법 매입, 비정규직 양산과 경제적 양극화 심화, 부자 감세, 그리고 주변 측근들의 총체적 비리와 구속 사태는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공직자들의 대통령 욕설은 고통받는 서민들의 불만 강도가 얼마나 큰지를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오죽하면 공직자들마저 그랬을까? 그래서 공직자들의 대통령 욕설에서 논쟁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대통령의 실패한 국정 그 자체가 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대응 논리는 오히려 대통령의 실패한 국정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따라서 욕설을 한 자들에 대한 무죄 입증이 아니라 설사 부당하게 처벌받더라도 그 욕설의 혀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싸움의 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어코 처벌하려고 발악하는 군형법

군통수권자가 아니라 국정운영 책임자 비판도 처벌하려는 ‘무식한’ 군형법

@koreabong 대통령도 대통령 몫이 있고 그 몫을 다해야 욕을 안 듣지. 보편적 국민들이 보기에 욕 들을 만하니 욕을 하지. 그걸 단속해. 먼저 잘해봐, 누가 욕을 하는지. 값도 못하면서 지금이 유신시절인지 아남.

누군가 트위터에 대통령을 욕하는 글을 올렸다. 대통령 욕이야 늘 보는 거라 놀랍지도 않다. 문제의 양상은 그가 군간부라는 사실로 사뭇 색달라졌다. 현역 육군인 이아무개 대위는 지난해 12월부터 “가카 이 ××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구 발악을 하는구나” 등의 글을 올렸다. 군검찰은 이 대위를 기소했다. 상관모욕죄였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기 때문이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니 이 대통령이 고소해야 하는 일 아닌가, 라는 의문에 대해 군은 “군형법은 일반형법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친고죄와 상관없이 군검찰에서 수사해 기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한국은 공당의 의원들이 모여 대통령의 성기를 희화화한 연극을 공연하며 자기들끼리 박장대소해도 될 만큼, 표현의 자유에서 전위적 가능성을 자랑한 바 있는 나라였다. 지금은 트위터에서 농담으로 북한을 찬양했다고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당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트위터 아이디를 사용했다고 계정 접속 차단을 당하고, 신문 만평 만화에 대통령을 욕하는 문구를 삽입했다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기소당하는 등 분위기가 꽤나 험악해졌다. 현 정권이 그만큼 권위주의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징후들이다. 대통령 욕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대통령 욕하는 걸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태도는 ‘시민으로서’ 불성실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개별 발화자들을 색출해 법으로 단죄하겠다는 시도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안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특정 조건 아래서 표현의 자유가 유보될 수 있다는 전제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어차피 군은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관계없이, 군형법상의 상관모욕죄로 포지셔닝했다. 그렇다면 이 경우 상관모욕죄 자체는 성립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인 동시에 국정운영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 대위가 비판한 이명박은 그의 글 안에서 정확히 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이 맞는가. 백번 양보했을 때, 만약 이 대위가 군통수권자로서의 이명박을 호출하고 비판했다면 적어도 군검찰의 설명에 최소한의 설득력이 생긴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 대위가 언급한 이명박은 구체화된 군통수권자가 아닌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누군가 정권의 실책을 비판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당대 대통령의 이름에 불과하다. 군검찰의 기소 내용은 이 대위가 적시하는 것이 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인지 규명하지 못하는 이상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응당 구별돼야 한다. 필연적인 디테일을 ‘군형법은 일반형법보다 더 강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건 ‘군형법이 일반형법보다 무식하다’고 자인하는 꼴밖에 낳지 못한다.

“통합진보당 명부에 현역 군인이 식별되면 법적 대응하겠다”는 국방부의 추가 태도를 들여다보면 이 모든 사달의 정체는 금방 드러난다. 결국 공안 정국으로의 퇴행적 욕망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촌극에 불과하다. 국가적 규모의 촌스러움이 개인의 신변을 위협하고 구속할 때, 우리는 이를 후진국이라 부른다.




허지웅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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