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윤, 사이트 운영자가 아닌 회선제공업체에 시정권고…동성애·사회단체 홈페이지 줄줄이 폐쇄
지난 8월10일 정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가 입주해 있는 강남 사거리의 동아타워빌딩 앞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보통신 검열반대 ‘번개’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지개 깃발을 앞세운 ‘동성애자차별반대 공동행동’ 소속 동성애자들이 먼저 와 기다렸다. 뒤이어 진보네트워크센터,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이성애자들의 모임인 ‘이반의 친구들’이 합류하자, 어느새 번개 참석 인원은 60명을 훌쩍 넘어섰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소개는 뒷전이었다. 번개 참석자들은 모이자마자 검은 X자가 새겨진 흰 마스크를 쓰고 구호부터 외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정보차단, 윤리위를 차단하라!” “정통윤의 무덤에 국화꽃을 던져라!”
집회 형식으로 치러진 이날 모임을 굳이 ‘번개’라고 붙인 이유는 7월 말, 대표적인 동성애자 사이트 ‘이반시티닷컴’(www.ivancity.com)이 폐쇄당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남성동성애자들이 자기 소개글을 올리고, 채팅을 하고, 번개를 ‘때려’ 사람을 만나던 사이트였다.
일부 삭제 권고가 사이트 폐쇄로 이어져
남성동성애자 최대 사이트, 이반시티닷컴은 지난 7월30일 폐쇄당했다. 폐쇄과정은 정통윤의 ‘해당정보 삭제요구’에서 시작되었다. 7월 중순, 이반시티닷컴을 심의한 정통윤은 일부 내용에 대해 음란판정을 내리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해당정보 삭제’를 요구했다. 정통윤의 ‘해당정보 삭제요구’는 이반시티닷컴의 회선제공업체인 한국인터넷데이터시스템(KIDC)으로 내려졌다. KIDC로부터 시정조치를 전해 들은 서버호스팅업체는 사이트 운영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폐쇄했다. 문제는 시정조치가 해당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삭제권이 전혀 없는 회선제공업체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해당정보’ 삭제는 홈페이지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이트 운영자나 사이트 운영을 대행하는 웹호스팅업체만이 할 수 있다. 정통윤의 시정권고를 받은 회선제공업체나 서버호스팅업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해당정보가 게시돼 있는 서버 전체의 이용을 중지하거나 △회선을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하거나 △해당 서버의 IP주소를 차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결국 이반시티닷컴 폐쇄 사례에서 보듯, 회선제공업체에 내려진 정통윤의 ‘일부 삭제 권고’가 ‘사이트 전체 폐쇄’로 이어지기 십상인 것이다. 홍익대학교 방석호 교수는 이미 지난해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정부가 사업자에게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적 검열을 부추길 염려가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방 교수가 우려한 ‘검열의 민간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정통윤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일부삭제 또는 사이트 폐쇄요구를 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시정요구는 주로 웹호스팅업체들에 전달되었고, 회선제공업체나 서버호스팅업체에 시정요구를 하는 것은 새로운 경향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삭제권이 없는 정보통신사업자들에게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사이트 폐쇄를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통윤이 민간기업 스스로의 검열을 부추기는 새로운 검열행위”라고 비판했다. 한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쪽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시정조치를 한 것일 뿐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사업자들이 강제력이 없는 윤리위의 시정조치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시정요구 불응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시정요구를 받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요구에 불응하면, 윤리위는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불온통신의 취급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하도록 ‘건의’할 수 있다. 윤리위의 권고를 받은 정보통신부 장관은 같은 법 53조3항에 따라,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불온통신의 취급을 거부, 정지, 제한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있다. 이 경우에도 전기통신사업자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결국 이반시티닷컴의 예에서 보듯, 윤리위의 권고가 회선제공업체 등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명령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시장을 통해 강화된 통제
회선제공업체나 서버제공업체를 통한 정보통신윤리위의 새로운 ‘통제’방식은 비슷한 시기에 사회단체 홈페이지에도 적용되었다. 정통윤은 지난 7월19일 진보넷 등 8개 사회단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구국의 소리’ 게시물을 불온통신으로 심의·결정했다. 같은 달 31일 ‘해당정보 삭제’ 요구는 온세통신, KIDC, 아이아시아웍스코리아 등 8개 사회단체에 회선을 제공하거나 서버를 제공하는 업체에 전달되었다. 이반시티닷컴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 사업자들 역시 ‘해당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없는 업체들이다. 이들이 해당정보를 삭제하려면 진보넷 등 사회단체 홈페이지에 무단침입하는 수밖에 없다.
8월3일 아침, 결국 전농, 통일연대 등의 홈페이지가 폐쇄되었다. 이들 단체의 웹호스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net’이 회선제공업체인 데이콤, 서버제공업체인 웹데이터뱅크로부터 사이트 접속을 차단당한 것이다. 이 조치는 ‘사람들.net’이 운영하고 있는 90여개 홈페이지들이 한꺼번에 폐쇄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 “정통윤의 ‘시정조치’가 강제사항은 아니”라는 ‘사람들.net’의 설득을 받아들인 웹데이터뱅크가 차단조치를 풀어 같은 날 오전 10시쯤 90여개 홈페이지 운영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회선제공업체인 온세통신에 내려진 윤리위의 시정조치는 더욱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윤리위는 이미 지난해 같은 ‘구국의 소리’ 게시물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로 직접 시정조치를 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넷 장여경 실장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윤리위의 삭제요구를 거부해왔다”며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자, 회선제공업체를 통해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정보통신윤리위에서 시작되고, 시장을 통해 강화된 통제는 홈페이지 운영자들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실제, 최근 들어 일부 동성애자 사이트가 강제폐쇄를 두려워해 스스로 문을 닫기도 했고, 일부 사이트는 집중적인 삭제 대상이 되는 ‘대화방’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성애자 홍현(23)씨는 “지난해 가입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동성애자 카페 25개 중 15개가 이미 폐쇄되었다”며 “최근의 강제폐쇄사태를 보며 카페 운영자들이 스스로 불안을 느껴 폐쇄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한다. 레즈비언 사이트 ‘탱크걸’ 운영자 하정수(40)씨도 “이반시티가 폐쇄되기 전만 해도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했다”면서 “막상 폐쇄되는 걸 보니 위기감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권고, 정보통신사업자의 과잉조치, 뒤따르는 네티즌들의 심리적 위축효과로 이어지는 ‘민간화된 검열’이 인터넷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8월10일 정보통신윤리위 앞에서 열린 '동성애자차별반대 공동행동'의 집회. 잇따른 동성애사이트 페쇄에 항의하는 이날 집회에는 60여명이 참여했다.(이용호 기자)
남성동성애자 최대 사이트, 이반시티닷컴은 지난 7월30일 폐쇄당했다. 폐쇄과정은 정통윤의 ‘해당정보 삭제요구’에서 시작되었다. 7월 중순, 이반시티닷컴을 심의한 정통윤은 일부 내용에 대해 음란판정을 내리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해당정보 삭제’를 요구했다. 정통윤의 ‘해당정보 삭제요구’는 이반시티닷컴의 회선제공업체인 한국인터넷데이터시스템(KIDC)으로 내려졌다. KIDC로부터 시정조치를 전해 들은 서버호스팅업체는 사이트 운영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폐쇄했다. 문제는 시정조치가 해당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삭제권이 전혀 없는 회선제공업체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해당정보’ 삭제는 홈페이지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이트 운영자나 사이트 운영을 대행하는 웹호스팅업체만이 할 수 있다. 정통윤의 시정권고를 받은 회선제공업체나 서버호스팅업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해당정보가 게시돼 있는 서버 전체의 이용을 중지하거나 △회선을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하거나 △해당 서버의 IP주소를 차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결국 이반시티닷컴 폐쇄 사례에서 보듯, 회선제공업체에 내려진 정통윤의 ‘일부 삭제 권고’가 ‘사이트 전체 폐쇄’로 이어지기 십상인 것이다. 홍익대학교 방석호 교수는 이미 지난해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정부가 사업자에게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적 검열을 부추길 염려가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방 교수가 우려한 ‘검열의 민간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정통윤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일부삭제 또는 사이트 폐쇄요구를 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시정요구는 주로 웹호스팅업체들에 전달되었고, 회선제공업체나 서버호스팅업체에 시정요구를 하는 것은 새로운 경향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삭제권이 없는 정보통신사업자들에게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사이트 폐쇄를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통윤이 민간기업 스스로의 검열을 부추기는 새로운 검열행위”라고 비판했다. 한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쪽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시정조치를 한 것일 뿐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사업자들이 강제력이 없는 윤리위의 시정조치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시정요구 불응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시정요구를 받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요구에 불응하면, 윤리위는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불온통신의 취급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하도록 ‘건의’할 수 있다. 윤리위의 권고를 받은 정보통신부 장관은 같은 법 53조3항에 따라,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불온통신의 취급을 거부, 정지, 제한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있다. 이 경우에도 전기통신사업자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결국 이반시티닷컴의 예에서 보듯, 윤리위의 권고가 회선제공업체 등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명령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시장을 통해 강화된 통제

사진/ 검열에 항의하는 뜻으로 가위를 그려넣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