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와 김대중 주필
등록 : 2001-08-14 00:00 수정 :
가느냐 마느냐, 살면서 더러 부닥치는 문제입니다. 마음속이 아니라 말을 하고 나면 더 곤란할 때가 있고, 특히 공인의 진퇴(또는 진퇴양난)는 바로 사회적 바로미터, 혈압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광복절과 종전의 날로 8·15를 맞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심정은 대척점만큼이나 거리가 멉니다.
식민지배로 숱한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고 수탈당하고 그 역사의 질곡과 아픔이 아직도 이어져 청산과제로 떠오르고…. 이런 판에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던 군국주의를 본받아 뭉치고 힘내자, 소리높이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그러한 일본호를 상징하고 있고요.
고이즈미는 자기돈 3만엔으로 신사에 꽃을 보내고 저울질을 하다가 결국 13일로 앞당겨 갔습니다. 8·15에 참배했건 그날을 피해서 했건 참배를 했다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는 야스쿠니에 가서 전몰자를 애도하고 다시는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스쿠니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습니다. 참배는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행위일 뿐 아니라 A급 전범과 그들이 주도했던 전쟁을 인정하는 격이 됩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아시아인이 2천만명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주변국가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역대 지도자들은 과거에 대한 참회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자제했다고 합니다.
고이즈미는 일본의 우경화 물결 속에 참배를 약속했고,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한 가고시마가 부친의 고향이어서 특별한 상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일견 비장해보이지만, 그의 소신은 자가당착적 자기논리일 뿐입니다.
국내에서는 거꾸로 가도 될 법한 곳을 가지 않겠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탈세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소환에 “권력은 세금의 약점으로 무수한 사람을 공권력의 위장 아래 좌지우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글을 쓰는 기자직군은 죄없이 그런 식으로 이끌려갈 수 없다”고 합니다. ‘기자직군’이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필화의 문제라면 직업적 양심을 걸고 싸울 수도 있지만 돈문제에 기자직군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지금 세상에 검찰이 강압을 하고 날조수사를 할 것도 아니라면 소환에 응해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대신 신문에 남아 할말은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간명한 이치에 애를 먹이는 두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을 보면서 유쾌하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대성의 가치- 곧 자유 평등 박애- 가운데 어떤 것이 심하게 결여되지 않았나 하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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