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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육순, 내 노래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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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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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상용씨.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방송에서 ‘남인수 가요제’를 연다고, 입상자는 가수로 데뷔시켜준다고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출전할 사람은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줬다. 그 순간, 흘러나온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꽉’ 집어넣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몇번이고 되새겼다. 늦깎이 가수 이상용(62)씨는 아직도 가슴 떨리는 당시의 흥분을 가쁜숨을 몰아쉬듯 점차 고조되는 어조로 돌이켰다. “남인수 가요제는 내게 적절한 기회이자 큰 요행이었습니다.”

환갑을 코앞에 둔 지난 97년, 그렇게 출전한 ‘남인수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그는 그제서야 꿈에도 그리던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이듬해 정년퇴직할 때까지 평생을 우체국 공무원으로 보낸 그는 무작정 노래를 좋아한 소년이었다. 소싯적에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노래 콩쿠르대회가 열릴 때면 빠짐없이 출전해 입상했는가 하면 80년대 초 한국방송 <전국노래자랑>이나 라디오 공개방송 <가로수를 누비며>에 나가 1등을 차지하는 등 노래실력을 인정받았다. 공직 생활중에도 여의도우체국 이상용, 하면 “아, 그 가수” 하고 떠올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가수로 데뷔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가수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로부터 정식 가수증을 받는 게 일념의 꿈이었습니다. 노래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했지만, 그래서 늘 노래를 갈고 닦았죠.” “내 마음 가는 곳에/ 노래가 있고/ 내 발길 가는 곳에/ 꿈이 있었네….” 그가 직접 노래말을 쓴 <노래는 나의 동반자>에는 이런 자신의 노래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수 데뷔 이후 그가 낸 앨범은 두장으로, 1집 타이틀은 <노래는 나의 동반자>이고 최근 나온 2집 타이틀은 <자랑스런 우리 서울>이다. 서울을 주제로 노래한 2집 앨범 500장은 서울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육순을 넘긴 그가 요즘 서는 무대는 주로 노인복지관이다. 노래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서울노인복지센터의 ‘노래교실’ 무료강사이자 의정부 백조예술단, 남인수기념사업회 및 한국종군연예인협의회 회원으로, 서울과 경기지역 노인복지관을 돌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노래를 부를 때면 그 순간만큼은 잡념도 없어지고 흥에 겨워 오롯이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죠. 노래는 기쁨입니다. 듣는 청중한테 내 눈빛을 던져주고 끝나면 박수를 받고….”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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