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집단 진로 상담 긴요
청와대는 즐기고 야당은 답답해한다는 진단도 나오는 문화방송 파업 장기화 대책
문화방송 파업이 50일을 훌쩍 넘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 쪽의 이용마 기자 해고와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한 소송 ‘난사’, 재산 및 월급 가압류 등이 이어진다. 이진숙과 문철호의 기자회원 제명은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을 비롯한 사내 강경세력에 대한 전면전의 연속이나 다름없다. 반면 19개 지역 문화방송 본부는 최근 대의를 위해 일어섰다. 이견은 나중으로 미루고, 함께 파업에 나선 것이다. 파업 문화제에 수만 시민이 몰리고, <제대로 뉴스데스크> 같은 저널리즘 실천을 통해 대중의 신뢰와 지지도 조금씩 쌓여가는 듯하다.
무엇보다 한국방송과 YTN의 공동 파업이 분위기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부산일보>와 <국민일보> <연합뉴스>의 파업이 이어져, 방송·신문·통신의 미디어 전 분야를 포괄하는 큰 판으로 싸움이 재편되는 양상이다. 시민사회·운동 진영도 상황 전개에 맞춰 연대 기구를 결성하고 나섰다. 언론학자들 또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낙하산 사장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어떤 관전자는 낙하산 사장을 쫓아내는 게 다가 아니며, 이후에 할 일이 더 많다고 꽤 긴 안목의 훈수까지 내놓는다. 과연 사태는 그렇게 멀리 내다볼 정도로 파업하는 자들과 지지하는 이들에게 유리해졌나?
파업은 승리의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가? 문화방송 사내 세력은 당황해하기 시작했고, 정권 쪽이 부담을 느낀다는 정보가 나오고 있나? 그래서 사태는 해결 기미가 보이나? 냉정히 말해, 정세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총선과 MB 레임덕이라는 조건이 파업의 앞날과 목표의 쟁취에 그다지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다. 대중의 관심도 아직 폭발하지 않았으며, 300여 개 단체가 이름을 올린 ‘공동행동’이 대단한 힘을 실을 것 같지 않다. 90여 연구자들의 성명 또한 학계 면피의 일회적 효과를 넘어 별다른 감동을 주기 힘들어 보인다. 힘겨운 교착상태다. 현 정권은 물론 이후 정권의 운명이 걸렸기에, 이른 시간 내 승리로의 종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여당이 은근히 파업을 즐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대 파업에 대한 야당의 산법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큰일이 속속 터지는데, 공세 채널이 막혀 답답해한다는 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업 지도부와 노동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적당하게 또 빠질 텐가? 아니고 계속 간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체 게바라식의 전략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노조와 시민사회, 학계, 진보개혁 정당이 모여 머리를 굴리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퇴로 없는 파업에 관한 집단 진로 상담이다. 이게 당장 모두가 집중할 현안이다. 낙하산 퇴출, 즉 파업 승리 이후의 숙제에 관해 떠드는 것은 현재의 답답한 폐쇄 국면에 비춰볼 때 너무 앞선, 그래서 공허한 한담에 불과하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장님만 물러나면 ‘리셋’이 되나요 파업 이후 평범한 때, 언론의 본령 지킬 방법에 대한 논의 절실한 시기
그러니까, 전제는 이런 거다. 1987년 이후 언론은 꾸준히 진화해왔다고 믿자. 나와 당신 사이에 그 약속은 굳건해야 한다. 신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몇몇 증좌들을 생각하라. <한겨레> 창간, 안티조선운동, 어떤 신문들의 편집권 독립, PD저널리즘의 성숙, 그리고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된다는 인터넷 매체까지. 어찌됐건 사회의 민주화 속도에 비례해 언론은 진화해온 것이고, 표현의 자유는 흐름을 타고 꾸준히 확대돼온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헤친 MB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언론의 진화는 뚝 끊어졌고, 표현의 자유는 사라졌다. 이런, 제기랄.
이때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전방위적으로 동시에 파업을 시작했다. MB가 떨어뜨린 낙하산들이야말로 언론을 망친 망나니이니 우리가 끝장 투쟁으로 척결하겠노라 외친다. 그러곤 따라 외치라 한다. ‘(MB 정부 동안) 기대에 못 미쳐 죄송했습니다. 앞으론 (참여정부 때처럼) 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저 낙하산들 때문입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저 낙하산들만 당장 치울 수 있다면 우린 곧 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사리 믿지 못한다. ‘4년 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새삼’ 두터운 조소와 냉소를 헤치기 위해 그들은 뉴스를 ‘제대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고, 뉴스를 ‘리셋’해 다시 보여주기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 이렇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4년간 한 번도 다루지 못했던 아이템들에 거침없는 하이킥이 작렬하고, 거론조차 불경했던 어떤 이슈들이 가감 없이 업로드된다.
하지만 이 파업은 끝날 것이다. ‘좋은 언론’에 대한 염원을 가진 이들이 책임을 방기하지만 않는다면, 꾸준히 그래왔던 것처럼 언론은 또 진화할 것이다. 몇몇 증좌들은 우연한 사례가 아니라 언론 건전성을 견제하는 ‘밀본’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깡패 같던 권력도 불로초를 못 구해 쇠잔해지는 마당이니, 그 종속적 미물에 지나지 않을 낙하산 사장의 위세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파업의 이후다. 이 시간이 또한 순간이 되어 지나가버리고, 찾아올 시간의 언론에 대해 그들은 별말이 없다. 다만, 잘하겠단다. 그렇게 전과 다름없는 뉴스, 참여정부 시절 정도를 최대치로 할 언론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을 때, 우린 또 몹시 공허해지지 않을까? 방송 뉴스가 ‘여성지’를 경쟁 상대로 삼은 것은 낙하산 사장의 지시 때문이 아니다. <연합뉴스>가 권력의 입맛에 맞춤해진 것은 사장이 데스크를 보기 때문이 아니다. 언론인의 기질이 직장인의 그것이 된 까닭은 이명박 정부의 부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주 비상한 시기의 특별한 항의가 될 수밖에 없는 ‘파업’은 덜 중요한 문제다. 지금 필요하고 절실한 논의는 순서를 뒤집어 평범한 시기에 일상적 방법으로 언론의 본령을 지켜갈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다. 그 고민이 결여된 파업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다. 이 파업의 경험이 어떤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나와 우리 조직은 세상의 불의와 맞서 싸워 끝내 승리했단 무용담으로 각인된다면, 그 쩌는 우월함에 ‘한때 너희가 잘못했다고 반성도 했고, 잘하겠다고 하지 않았었느냐’를 묻기란 참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
김완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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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파업에 대한 야당의 산법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큰일이 속속 터지는데, 공세 채널이 막혀 답답해한다는 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업 지도부와 노동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적당하게 또 빠질 텐가? 아니고 계속 간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체 게바라식의 전략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노조와 시민사회, 학계, 진보개혁 정당이 모여 머리를 굴리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퇴로 없는 파업에 관한 집단 진로 상담이다. 이게 당장 모두가 집중할 현안이다. 낙하산 퇴출, 즉 파업 승리 이후의 숙제에 관해 떠드는 것은 현재의 답답한 폐쇄 국면에 비춰볼 때 너무 앞선, 그래서 공허한 한담에 불과하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2월 문화방송 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손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자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사장님만 물러나면 ‘리셋’이 되나요 파업 이후 평범한 때, 언론의 본령 지킬 방법에 대한 논의 절실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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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