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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짓밟힘, 노래, 그리고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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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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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한명씩 다녀갈 때마다 표를 한장씩 뗐다. 보통 10여명, 토·일요일엔 20∼40명까지 군인을 받았다. 생리중에도 군인을 받아야 했다. 그럴 땐 주인이 누런 솜 같은 걸 줘서 하체 깊숙이 밀어넣고 받았다. 말을 안 듣거나 손님을 안 받으면 주인이 혁대로 마구 때렸다. … 위안소에 있을 때 매독에 걸린 적이 있다. 그러자 군의관은 은색 수은을 불 위에 얹어 태우며 기화되는 수은을 내 하체에 쐬었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하체를 드러낸 채 수은이 타는 종지에 하체를 내밀었다. 이 경악스런 일로 매독은 씻은 듯이 나았지만 나는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여성이 되고 말았다.”

헌정앨범 <위안부 할머니>에 실린 곡 <증언>의 한 대목이다. 이 앨범을 기획·연출한 임상훈(23·실험독립만세 대표·사진 왼쪽)씨는 일본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힙합 스타일의 젊은 음악인이었다. 적어도 지난해 TV에서 우연히 고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이라는 미술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위안부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였다고 막연히 알았을 뿐 그 이상은 몰랐어요. 그런데 작품 속 벌거벗겨진 소녀의 모습이 며칠 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거예요. 심지어 꿈에도 나타나고. 몹시 가슴이 아팠고 무관심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임씨는 자료를 모으고 할머니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빼앗긴 순정>을 시작으로 한곡한곡 곡도 만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험을 옮긴 <증언>을 쓰고 편곡할 때에는 자꾸 눈물이 나와서 몇번이고 연필을 놓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곡은 마련됐지만, 돈이 없었다. 올해 초 무작정 여성신문사를 찾아가 협찬을 약속받았다.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앨범 한장으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곧바로 받아낼 수는 없겠죠. 하지만 한점의 미술작품이 제 가슴을 뒤흔들어놓았던 것처럼, 한장의 앨범이 누구보다 제 또래의 젊은이와 청소년들의 마음에 다가갔으면 합니다. 할머니들이 자꾸 세상을 떠나셔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이 모여 머지않아 큰 변화가 이뤄지리라 믿습니다.”

타이틀곡 <빼앗긴 순정>은 일본군 강제위안부 출신인 문필기(사진 오른쪽) 할머니가 직접 불렀다. 8월13일 오후 4시와 7시, 서울 종로구 연강홀에서 열리는 공연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에서 임상훈씨와 문필기 할머니를 직접 만날 수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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