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솔직한 ‘허벅지 양심선언’ 그리고 전라도·DJ·<조선일보>
팩스맨.
전화는 받지 않는다. 이메일도 없다. 그는 오직 팩스만으로 외부세계와 연락을 취한다. 그렇다면 팩스는 100% 가능한가? 아니다. 비정하게도(!), 그는 선택적으로 응답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독설가, 강준만(44). 이미 두번이나 거절당한 바 있기에, 이번엔 다른 수를 썼다. “또 응답이 없으면 무조건 8월17일 오후 2시 연구실로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그는 이튿날 조금의 과장과 엄살이 섞인 답신을 보내왔다. “맞아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해야지요.”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211호실. 그는 환한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까무잡잡한 얼굴과 사투리는, 특히 뭔가 비판적인 얘기를 하기 위해 인상을 쓸 때 눈과 볼가에 모아지는 주름은 그의 말마따나 영락없이 ‘촌놈’의 것이었다. 방학이라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그는, 오늘은 귀한 손님 때문에 좀 차려입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쾌도난담의 강준만 리포트가 시작되었다.
강준만 스타일에 시비 걸기
김어준 외롭지 않으세요? 물론 ‘확신범’이고, 독자편지를 받으면 힘도 나겠지만….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순 없잖아요? 강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이걸 왜 했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장벽 같은 걸 만날수록 더 신바람이 나기도 해요. 절벽 같은 데 부딪혀서 ‘그럼 내 주장이 잘못됐단 말이야? 아니지 내가 주장한 게 옳지’라고 느낄 때 더 신바람이 난단 말이에요, 물론 저도 자기성찰을 해봐요, 혹시 내가 돌았을까 하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아. (웃음) 돈놈이 돌았다고 할 리는 없을 테고. 시간이 가면 확실히 드러날테지요. 김규항 강 선생님은 학생운동 경력도 없고 졸업하곤 중앙일보와 MBC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을 가셨죠. 돌아와서도 바로 이런 일한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시작했거든요. 운동하던 사람들이 다 돌아선 지금 가장 비타협적인 싸움꾼 노릇을 하고 있는데 남들 다 운동하던 시절엔 왜 가만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강준만 제가 느끼는 분노는 이타심을 가진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성격의 분노예요. 학교 다닐 때 주위 운동권 애들이 날 많이 꼬셨거든, 나하고 친한 애 하나는 저하고 얼마나 격론을 벌였는데요. 근데 전 전형적인 경영학과 이데올로기로 무장이 되어 있었단 말이에요. “뭐 때문에 니가 나서서 그러냐”라는 식의 철저한 이기주의 말이에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요. 제가 만약 광고회사에 있다면 열심히 광고 만들 거예요, 그게 사회에 기여하는 거예요 다 자기 맡은 직능이 있다는 거죠. 만약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이기심과 양립할 수 있는, 그러나 당신들의 자식들을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그게 내 운동관이거든요. 저는 제가 내키지 않고 하기 싫은 건 안 해요. 그 부분에 관해선 비판을 받는다면 받을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원래 그런데 그러면 어떡하나. 김규항 선생님에 대한 만만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방법론인데요. 운동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입장을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입장을 재확인하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세를 넓히고 그 입장과 저의 입장 사이에서 부유하는 사람들을 이리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선생님의 방법은 그런 점에서 조금 무리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불필요하게 거칠다거나 해서 이 운동의 대의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그걸 강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정리합니다만. 강준만 스타일을 가지고 그러는 거죠. 주로? 김규항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당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좀더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웃음) 김어준 부연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 스타일을 좋아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실용주의적인 현실론자이시니,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전술적인 ‘효과’, ‘효용’ 측면을 고려해 전술적 변화를 고려해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강준만 내가 시작할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거든요,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사람들도 조금 비판의지를 낮출 수 없느냐…. 그러나 난 지식계 내부의 그런 문화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자꾸 말하지만 언로가 잘못됐다 이거예요. 가령 내가 글로 어떤 사람의 행태에 대해서 막 욕했다고 해서 만나면 욕하고 그럽니까? 제가 아무리 옹졸해도 그건 분리하는 주의예요. 제가 손호철 교수 만나면 고개 돌리고 그럴 것 같아요? 김규항 그럴 거 같은데요. (웃음) 그런데 그걸 좀 인정을 해야 되는데… 선생님께선 평균 수준보단 유별나게 뜨거운 분인 건 사실이죠. 강준만 그게 없으면 이짓을 하겠어요? 김어준 정말 글을 많이 쓰는데, 하루에 원고를 어느 정도 분량이나 씁니까? 강준만 그건 계산 안 해봤는데…. ‘이시형 비판’의 자격을 위하여 김규항 아무리 구어체로 쓴다 해도 그 분량을 채우려면 절대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텐데 제가 듣기로는 전북대 신방과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도 높다고 그러더군요. 개인 활동을 교수생활과 병행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무리 전화를 안 받고 사람을 피한다 해도 말이죠. 근래에는 건강도 안 좋다고 들었는데…. 할만 합니까? 강준만 네. 즐기니까요. 제가 <조선일보>에 글쓰는 지식인들 심정 이해가 가는 게 저도 89년에 글을 많이 썼어요, 근데 <김대중 죽이기> 이전에 썼던 글을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그때도 내가 비판을 얼마나 했는데요. 얼마 전에 누굴 만났는데 저한테 그래요, 요즘 뭐 하냐고. 그래서 그냥 지내던 대로 지낸다고 대답했지요. 그 양반 다음 말이 “신문에 안 보인다”는 거예요. 신문에 글을 왜 안 쓰냐는 거예요. 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사실 요즘이 저의 전성기거든요 사실. 아 그래봤자 1만명(월간 <인물과 사상> 정기구독자 수)이에요. 그러나 일간지에 한번 쓰면 전화가 여기저기서 오고 만난 지 수십년 된 친구도 전화하고. 이 즐거움, 이 보람이 엄청난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지식인들한테 신문에 글쓰는 거 문제삼는 게 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죠. 저도 왜 인정에 대한 욕망이 없겠어요. 근데 그게 목적이냐, 아니면 뜻하는 바가 있어서 그 일을 하면서 인정의 욕망을 누리는 거냐는 차이가 있겠죠 김어준 욕망이라… 연애에 대한 욕망 같은 어떻습니까. (웃음) 강준만 연애에 대한 욕망요? 하하하. 김규항 원래 여자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 들었습니다만. (웃음) 강준만 하하하. 김어준 녹음기 끌까요? (웃음) 강준만 이걸 써야지. 제일 중요한 얘긴데. 김규항 뜨겁게 말씀해 주세요. (웃음) 강준만 곧 나올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정신과의사 이시형씨를 비판하면서 한 가지 선언을 했어요. 그 사람 말인즉, 룸살롱에 갔더니 아가씨들끼리 중간고사 이야기를 하더래요. 대학생이라는 얘기지. 그러면서 만약 손님이 고졸이면 얼마나 위화감을 느끼겠느냐, 프로의식이 없다고 비판을 하더라고. 아니, 자기 딸만한 아가씨들이 있는 곳에 간다는 게 무슨 자랑입니까? 사실 저도 룸살롱은 못 가지만 가요주점 같은 데는 가요. 가면 아가씨들이 술 따라주고, 싱싱하고 예쁜 아가씨들… 술 한잔 먹고 이러다보면 허벅지도 주무르고… 아, 좋죠. (웃음) 사실 386광주술판 사건 났을 때도 죄책감을 느꼈는데, 장원사건까지 터지면서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가 이시형씨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거였죠. 나도 그런 곳에 가면서 이시형씨의 마초근성을 비판할 수는 없잖아요. 진짜 난 위선은 못해.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양심선언을 했어요. “나는 젊은 아가씨들의 성적 접대를 받는 그런 술집에 가서 못된 짓 많이 저질렀던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일단 공개적으로 여성의 성적 접대를 받는 술집은 안 가겠다는 거죠. 단 이건 있죠. 내가 마광수 지지자인데 자기가 정당한 연애를 통해서 뭘 한다 이거는 자유다 이거예요. 내가 뭐 손봉호씨입니까? 그렇지만 돈주고 사는 그 서비스, 아가씨 접대받는 거… 아, 전부터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어떡하다가…. 김규항 현재는 안 하고 앞으로도 안 하겠다는 겁니까? 강준만 선언하는 거예요. 그런데 두분은 그런데 안 가세요? 김규항 저는 매매춘은 반대입니다. 강준만 그냥 아가씨가 접대하는 것 말입니다. 김규항 삽입성교만 매매춘이라 보는 건 한심한 남근주의입니다. (웃음) 강준만 아, 맞는 얘기예요. 김어준 선생은…. 김어준 저는 안 갑니다. 김규항 가증스러운 놈. (웃음) 하여튼 저는 일체의 매매춘은 반대지만 화간은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강준만 그건 뭐 인간 개인의 문제고 사생활의 문제고, 그건 뭐 부인이 있는 자식이 그랬다고 그러면 부인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의 문제죠. 그런데 이제 여성의 성적 접대는 뭐, 다들 하니까, 이런 식으로 이제 더이상은 엉거주춤해서는 안 될 때가 온 것 같더라고요. 김어준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걸리면 타격 큰 거 아시죠? (웃음) 강준만 그렇죠. 그러면 안 되죠. 김어준 이제 큰일났습니다 이거. (웃음) 강준만 근데 그런 거 말고, 아까 말한 것처럼 연애에 대한 욕망 같은 건 없어요. 육체적인 거말고 정신적인 연애에 대해서는 아직 집사람의 마음도 완전히 장악을 하지 못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안 떠오르더라고요. 김규항 아니 그럼 육체적인 거는 그런 게 있다? 그럼 해결할 방안이 뭐가 있는지? 김어준 오지달인, 다섯손가락 달인. (크게 웃음) 강준만 손봉호 교수님 책과 법정스님 책 읽으면서 뭐, 과연 인간이 참 극기를 할 때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말을 얼버무리며 크게 웃음) 김어준 손을 보면서…. 김규항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김어준 (허벅지를 가리키며) 여기가 엉망인가요? (웃음) 김규항·김어준은 독자들의 개인 강준만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접근해보려 했다. 가령 젊은 시절 여자 탤런트와의 연애설이 사실이냐는 것. 그의 짤막한 대답. “아닙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인사를 물고 늘어진 어떤 인터뷰를 도중에 거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돌려서 말한 것이다. 더이상 묻지 말라고. 서울에서 교수초빙이 온다면… 김규항 서울쪽에서 교수 제안이 있으면 갈 의향이 있습니까? 강준만 글로 몇번 썼는데…. 김규항 질문을 위한 질문입니다. (웃음) 강준만 전주에 와서 몇달 만에 선언했어요. 서울로 안 간다고. 저도 사실은 서울로 갈 생각이 있었지 왜 없었겠어요. 근데 애들하고 술만 마시면 꼭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선생님, 서울로 언제 가세요?” 그럼 뭐 다른 교수 같으면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임마. 야, 한잔해.” 하고 끝날 텐데. 내가 되게 순진한 구석이 있는가 봐, 막 스트레스받는 거야. 거짓말을 못하니까. 난 안 되겠어. 몇번 반복이 되니까 “알았다. 내 서울 안 가마.” 그래서 서울 들락날락하던 것도 중단한 것도 아마 그땝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방에 있는 교수들이 서울로 가는 거에 대해 반대는 안 해요. 제 이데올로기 자체가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개인이 감당하기엔 이해득실이 너무 커요. 지방에 있는 거하고 서울에 있는 거하고. 김규항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지방국립대는 분명히 명문대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적더군요. 강준만 갈수록 더욱더 벌어지는 거예요. 김규항 취업도 막히고 교수들은 자꾸 서울로 가고 학생들도 자신감을 잃고, 악순환이죠. 김어준 경제뿐 아니라 학문분야마저 이런 이원화구조로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준만 글쎄, 더 심해진다고. 서울 대 지방의 그 이원구조가 한국 지식계에 끼치는 영향이 참 크다구요. 일단 지방의 경우, 가는 수는 소수일 망정 “나도 잠재적으로 서울로 가는 대상자”라고 생각되면 서울로 갈 수 있게끔 행동하는 그 패턴을 따라가게 되요. 싫은 행동 안 하려고 해요. 튀면 절대 못 갑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 지식인을 한번 묶어주고요. 또 서울로 간 친구들은 어떤 생각이냐면, 일단 서울로 갔다는 건 일종의 약속이에요. 너 여기와서 까불지 않는 조건이야 하는 묵계지요. 그래서 또 자기검열을 하게 되요. 한국 지식인들을 순치시키는 데 서울-지방의 일방적인 이동만 있는 구조가 대단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죠. 김규항 <조선일보> 문제를 포함해서 지식인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분들 중에 서울의 메이저 캠퍼스 교수들은 없지요. 우연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 DJ 광신도 아니에∼요” 강준만 대부분 지방대 교수거나, 학부하고 대학원 전공하고 다른 사람들이에요. 학부하고 대학원 종이 같아버리면, 비판적 의식을 가질 새도 없이 조르륵 말려서 졸개로 키워져요. 설사 의식은 갖는다 하더라도 ‘오야봉’ ‘꼬붕’ 체제가 가져다준 혜택이 워낙 크기 때문에 도전을 안 해요. 반면에 학부 대학원 전공이 달라버리면 그 라인에서 이탈되거든요. 설움도 겪어본단 말이에요. 문제의식을 갖거든요. 삐딱하게 가게 되지요. 김어준 결국 없는 놈들이 하는 말인가요? (웃음) 강준만 비판받거나 이대로가 좋다고 하는 놈들은 “꼭 지방대에 있는 새끼들이 욕해요”라고 사석에서 빈정댄다고. 지방대라 한맺혀서 그런다는 거예요. 누가 막 흥분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거 맞는 이야기네. 나쁘냐 그게?” 그럼 우리 사회에서 비판이 가능하냐는 거예요. 재벌 아들놈이 재벌 비판하는 거 봤어요? 재벌 비판하면 저 새끼가 재벌 못돼서 그래요, 검찰 비판하면 저 새끼가 검사 못돼서 그런다고 그러고, 서울대 비판하면 서울대 안 나와서 그런다고 그러고 빈민운동하면 저 새끼 부자 아니래서 그런다고 그러고. 비판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는 거예요. 본래 누리지 못하는 놈들이 하는 건데 왜 이놈의 지식계만큼은 그게 무슨 또 대단한 비밀이나 간파한 것처럼 그런 수작을 한다고. 저 새끼 뭐 지방대 있으니까 그런다고. 뭐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다고 그러고. 김어준 그럼, 앞으로도 <인물과 사상> 계속 나오는 건가요? 강준만 저 죽을 때까진 해요. 죽을 때까지.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가요. 김어준 이건 빼야 될 것 같은데…. (웃음) 강준만 아니다 싶으면 깃발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다매? 난 그렇게 못하겠다는 거지. 저 같은 경우에는 밥먹고 하는 짓의 하나가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는 건데… 들어보면, 학구적인 부류가 하나 있어요. 학구적인 분들은 절 싫어해요.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예를 들면 스타일리스트들이 싫어하죠. 글 한줄 한줄에 온갖 열과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새끼 쓴 거를 보면은 기분 나쁜거든. 그러나 나는 대중을 상대로 한 글을 쓰는데 그것 가지고 왜들 그러나 싶어요. 나도 콤플렉스 느끼고 있는데 말야. 우리나라 스타일리스트 몇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 고종석씨, 김규항씨, 김훈씨, 그리고 임지현씨도 글 잘 써요. 앉아서 그냥 막쓰는 글이 아니구나 하는 게 오잖아요. 그 문화적 갈등. 부르디외도 그말 하잖아요. 상대방의 혐오감이 이데올로기는 아니거든요, 문화적인 취향의 차이가 더 적개심을 드러내게 만든다구.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 근데 또 문화적 취향 때문에 내가 저놈을 싫어한다고는 또 이야기 안 해요. 자기를 속여요. 다른 이유를 끄집어댄다고요. 하여간 <딴지일보>를 보면 부러워요. 내가 그런 걸 했어야 하는데. (웃음) 김규항 문화적 취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드니까. 강준만 힘드니까 만만한 게 상업주의이에요. 내 글 읽어보지도 않아. 또 만만한 게 DJ 광신도. 나 씹을 놈들이 정성스레 읽겠어요? 읽지도 않고서는 하나 가지고 스테레오타입화해서 씹어대고 그러죠. 그런 점에서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면 좀 피곤하죠. 그렇다고 나에 대해서 쏟아지는 비판을 듣기 싫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이제 거기에 압도당하면 안 되죠. 사실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두 시간 반의 쾌도난담은 상대적으로 싱거웠다. 본 게임은 저녁을 먹으러 가서 시작됐다. 그는 혼자 맥주를 10여병 가까이 비우면서 열변을 토했다. 일단 <조선일보>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이 빠질 리 없었다. “걔네들을 극우라고 불러? 극우도 극존칭이지. 한데 어떻게 된 놈의 세상이 그런 신문이 1등을 하게 놔두냔 말이야.” DJ정권에 대해서도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지금 지 무덤들을 파고 있어. 그걸 모른다면 DJ의 한계이자 DJ졸개들의 한계야. 정권교체 목적이 지 굶주린 배 채우는 거였나? 물론 정권교체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인사에서 너무 해쳐먹어. 이번 개각도 너무 실망했다고. 그것뿐인가? DJ, 좋게 말하면 미필적 고의고 나쁘게 말하면 방조야, 방조. ‘DJ 광신도’ 소리 들으면서 해왔던 나 같은 사람들만 배신감 느낀다고.” 그는 잠시 화장실로 가면서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저 DJ 광신도 아니에∼요.” 전라도가 비굴하다
그리고 전라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라도 사람들 비굴해요. 전라도 사람만이라도 <조선일보>를 안 봐봐. 언론개혁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근데 정권교체 뒤 <조선일보> 구독률이 오르면 올랐지 결코 떨어지지 않았어. 하여간 악착같이 봐.” 그는 오랫동안 전라도 옹호론을 펼쳤던 사람으로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허벅지 양심선언. “허벅지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웃음) 그 좋은 걸 포기한다니…. 나는 모든 룸살롱이 하루아침에 폐쇄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아요. 모든 성적 서비스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단, 나 같은 놈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랑 유사한 놈들은 그러지 말아야 해….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많이 그런 곳에 간 것 같네.” (웃음)
김어준 제가 원래 근본이 없는 잡초 같은 놈인데, (웃음) 오늘 선생님을 뵙고 나서 한 가지 얻은 것이 바로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입니다. 스스로 사상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볼 일이 뭐 있었겠습니까만은, 하지만 제 생각과 행동에 어떤 일관성이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몰랐죠. 근데, 선생님을 통해 이게 어떤 ‘관’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김규항 내가 늘 얘기 했잖아. 너는 자유주의자라니까. 자유주의가 뭔지 아는 거하고 자유주의자인 거 하곤 아무 관련이 없는 거야. (웃음)
김어준 자유? 좋은 거네. 와, 난 자유다. (웃음) 강 선생 오늘 뵈니까, 입심이 대단하십니다. 쾌도난담 게스트 중에 거의 황구라(황석영) 선생에 필적하는 수준인데. (웃음)
강준만 구라는 내 길이 아닙니다.
김어준 근데, 가만 보면 개그맨 소질도 있으신데…. (웃음)
강준만 하긴 제가 옛날 MBC 라디오 PD 시절 <폭소기동대>라는 프로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때 손창호, 이성미, 김학래, 엄용수, 정명재, 김정열씨가 출연했는데,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요.
김규항 <폭소기동대>에서 <인물과 사상>으로. (웃음) 어준아, 오늘은 술자리에서 결론을 내보자.
김어준 오늘은 허벅지가 압권이네. 이거 어때요, 강준만은 가지 않는다.
김규항 어디로?
김어준 그들의 허벅지 곁으로. (웃음)
김규항 그리고 홀로 허벅지만 찌른다. (웃음)
고경태기자 k21@hani.co.kr

(사진/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강준만 교수.그는 '정적 접대를 받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어준 외롭지 않으세요? 물론 ‘확신범’이고, 독자편지를 받으면 힘도 나겠지만….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순 없잖아요? 강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이걸 왜 했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장벽 같은 걸 만날수록 더 신바람이 나기도 해요. 절벽 같은 데 부딪혀서 ‘그럼 내 주장이 잘못됐단 말이야? 아니지 내가 주장한 게 옳지’라고 느낄 때 더 신바람이 난단 말이에요, 물론 저도 자기성찰을 해봐요, 혹시 내가 돌았을까 하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아. (웃음) 돈놈이 돌았다고 할 리는 없을 테고. 시간이 가면 확실히 드러날테지요. 김규항 강 선생님은 학생운동 경력도 없고 졸업하곤 중앙일보와 MBC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을 가셨죠. 돌아와서도 바로 이런 일한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시작했거든요. 운동하던 사람들이 다 돌아선 지금 가장 비타협적인 싸움꾼 노릇을 하고 있는데 남들 다 운동하던 시절엔 왜 가만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강준만 제가 느끼는 분노는 이타심을 가진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성격의 분노예요. 학교 다닐 때 주위 운동권 애들이 날 많이 꼬셨거든, 나하고 친한 애 하나는 저하고 얼마나 격론을 벌였는데요. 근데 전 전형적인 경영학과 이데올로기로 무장이 되어 있었단 말이에요. “뭐 때문에 니가 나서서 그러냐”라는 식의 철저한 이기주의 말이에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요. 제가 만약 광고회사에 있다면 열심히 광고 만들 거예요, 그게 사회에 기여하는 거예요 다 자기 맡은 직능이 있다는 거죠. 만약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이기심과 양립할 수 있는, 그러나 당신들의 자식들을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그게 내 운동관이거든요. 저는 제가 내키지 않고 하기 싫은 건 안 해요. 그 부분에 관해선 비판을 받는다면 받을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원래 그런데 그러면 어떡하나. 김규항 선생님에 대한 만만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방법론인데요. 운동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입장을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입장을 재확인하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세를 넓히고 그 입장과 저의 입장 사이에서 부유하는 사람들을 이리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선생님의 방법은 그런 점에서 조금 무리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불필요하게 거칠다거나 해서 이 운동의 대의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그걸 강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정리합니다만. 강준만 스타일을 가지고 그러는 거죠. 주로? 김규항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당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좀더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웃음) 김어준 부연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 스타일을 좋아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실용주의적인 현실론자이시니,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전술적인 ‘효과’, ‘효용’ 측면을 고려해 전술적 변화를 고려해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강준만 내가 시작할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거든요,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사람들도 조금 비판의지를 낮출 수 없느냐…. 그러나 난 지식계 내부의 그런 문화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자꾸 말하지만 언로가 잘못됐다 이거예요. 가령 내가 글로 어떤 사람의 행태에 대해서 막 욕했다고 해서 만나면 욕하고 그럽니까? 제가 아무리 옹졸해도 그건 분리하는 주의예요. 제가 손호철 교수 만나면 고개 돌리고 그럴 것 같아요? 김규항 그럴 거 같은데요. (웃음) 그런데 그걸 좀 인정을 해야 되는데… 선생님께선 평균 수준보단 유별나게 뜨거운 분인 건 사실이죠. 강준만 그게 없으면 이짓을 하겠어요? 김어준 정말 글을 많이 쓰는데, 하루에 원고를 어느 정도 분량이나 씁니까? 강준만 그건 계산 안 해봤는데…. ‘이시형 비판’의 자격을 위하여 김규항 아무리 구어체로 쓴다 해도 그 분량을 채우려면 절대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텐데 제가 듣기로는 전북대 신방과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도 높다고 그러더군요. 개인 활동을 교수생활과 병행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무리 전화를 안 받고 사람을 피한다 해도 말이죠. 근래에는 건강도 안 좋다고 들었는데…. 할만 합니까? 강준만 네. 즐기니까요. 제가 <조선일보>에 글쓰는 지식인들 심정 이해가 가는 게 저도 89년에 글을 많이 썼어요, 근데 <김대중 죽이기> 이전에 썼던 글을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그때도 내가 비판을 얼마나 했는데요. 얼마 전에 누굴 만났는데 저한테 그래요, 요즘 뭐 하냐고. 그래서 그냥 지내던 대로 지낸다고 대답했지요. 그 양반 다음 말이 “신문에 안 보인다”는 거예요. 신문에 글을 왜 안 쓰냐는 거예요. 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사실 요즘이 저의 전성기거든요 사실. 아 그래봤자 1만명(월간 <인물과 사상> 정기구독자 수)이에요. 그러나 일간지에 한번 쓰면 전화가 여기저기서 오고 만난 지 수십년 된 친구도 전화하고. 이 즐거움, 이 보람이 엄청난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지식인들한테 신문에 글쓰는 거 문제삼는 게 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죠. 저도 왜 인정에 대한 욕망이 없겠어요. 근데 그게 목적이냐, 아니면 뜻하는 바가 있어서 그 일을 하면서 인정의 욕망을 누리는 거냐는 차이가 있겠죠 김어준 욕망이라… 연애에 대한 욕망 같은 어떻습니까. (웃음) 강준만 연애에 대한 욕망요? 하하하. 김규항 원래 여자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 들었습니다만. (웃음) 강준만 하하하. 김어준 녹음기 끌까요? (웃음) 강준만 이걸 써야지. 제일 중요한 얘긴데. 김규항 뜨겁게 말씀해 주세요. (웃음) 강준만 곧 나올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정신과의사 이시형씨를 비판하면서 한 가지 선언을 했어요. 그 사람 말인즉, 룸살롱에 갔더니 아가씨들끼리 중간고사 이야기를 하더래요. 대학생이라는 얘기지. 그러면서 만약 손님이 고졸이면 얼마나 위화감을 느끼겠느냐, 프로의식이 없다고 비판을 하더라고. 아니, 자기 딸만한 아가씨들이 있는 곳에 간다는 게 무슨 자랑입니까? 사실 저도 룸살롱은 못 가지만 가요주점 같은 데는 가요. 가면 아가씨들이 술 따라주고, 싱싱하고 예쁜 아가씨들… 술 한잔 먹고 이러다보면 허벅지도 주무르고… 아, 좋죠. (웃음) 사실 386광주술판 사건 났을 때도 죄책감을 느꼈는데, 장원사건까지 터지면서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가 이시형씨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거였죠. 나도 그런 곳에 가면서 이시형씨의 마초근성을 비판할 수는 없잖아요. 진짜 난 위선은 못해.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양심선언을 했어요. “나는 젊은 아가씨들의 성적 접대를 받는 그런 술집에 가서 못된 짓 많이 저질렀던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일단 공개적으로 여성의 성적 접대를 받는 술집은 안 가겠다는 거죠. 단 이건 있죠. 내가 마광수 지지자인데 자기가 정당한 연애를 통해서 뭘 한다 이거는 자유다 이거예요. 내가 뭐 손봉호씨입니까? 그렇지만 돈주고 사는 그 서비스, 아가씨 접대받는 거… 아, 전부터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어떡하다가…. 김규항 현재는 안 하고 앞으로도 안 하겠다는 겁니까? 강준만 선언하는 거예요. 그런데 두분은 그런데 안 가세요? 김규항 저는 매매춘은 반대입니다. 강준만 그냥 아가씨가 접대하는 것 말입니다. 김규항 삽입성교만 매매춘이라 보는 건 한심한 남근주의입니다. (웃음) 강준만 아, 맞는 얘기예요. 김어준 선생은…. 김어준 저는 안 갑니다. 김규항 가증스러운 놈. (웃음) 하여튼 저는 일체의 매매춘은 반대지만 화간은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강준만 그건 뭐 인간 개인의 문제고 사생활의 문제고, 그건 뭐 부인이 있는 자식이 그랬다고 그러면 부인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의 문제죠. 그런데 이제 여성의 성적 접대는 뭐, 다들 하니까, 이런 식으로 이제 더이상은 엉거주춤해서는 안 될 때가 온 것 같더라고요. 김어준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걸리면 타격 큰 거 아시죠? (웃음) 강준만 그렇죠. 그러면 안 되죠. 김어준 이제 큰일났습니다 이거. (웃음) 강준만 근데 그런 거 말고, 아까 말한 것처럼 연애에 대한 욕망 같은 건 없어요. 육체적인 거말고 정신적인 연애에 대해서는 아직 집사람의 마음도 완전히 장악을 하지 못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안 떠오르더라고요. 김규항 아니 그럼 육체적인 거는 그런 게 있다? 그럼 해결할 방안이 뭐가 있는지? 김어준 오지달인, 다섯손가락 달인. (크게 웃음) 강준만 손봉호 교수님 책과 법정스님 책 읽으면서 뭐, 과연 인간이 참 극기를 할 때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말을 얼버무리며 크게 웃음) 김어준 손을 보면서…. 김규항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김어준 (허벅지를 가리키며) 여기가 엉망인가요? (웃음) 김규항·김어준은 독자들의 개인 강준만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접근해보려 했다. 가령 젊은 시절 여자 탤런트와의 연애설이 사실이냐는 것. 그의 짤막한 대답. “아닙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인사를 물고 늘어진 어떤 인터뷰를 도중에 거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돌려서 말한 것이다. 더이상 묻지 말라고. 서울에서 교수초빙이 온다면… 김규항 서울쪽에서 교수 제안이 있으면 갈 의향이 있습니까? 강준만 글로 몇번 썼는데…. 김규항 질문을 위한 질문입니다. (웃음) 강준만 전주에 와서 몇달 만에 선언했어요. 서울로 안 간다고. 저도 사실은 서울로 갈 생각이 있었지 왜 없었겠어요. 근데 애들하고 술만 마시면 꼭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선생님, 서울로 언제 가세요?” 그럼 뭐 다른 교수 같으면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임마. 야, 한잔해.” 하고 끝날 텐데. 내가 되게 순진한 구석이 있는가 봐, 막 스트레스받는 거야. 거짓말을 못하니까. 난 안 되겠어. 몇번 반복이 되니까 “알았다. 내 서울 안 가마.” 그래서 서울 들락날락하던 것도 중단한 것도 아마 그땝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방에 있는 교수들이 서울로 가는 거에 대해 반대는 안 해요. 제 이데올로기 자체가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개인이 감당하기엔 이해득실이 너무 커요. 지방에 있는 거하고 서울에 있는 거하고. 김규항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지방국립대는 분명히 명문대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적더군요. 강준만 갈수록 더욱더 벌어지는 거예요. 김규항 취업도 막히고 교수들은 자꾸 서울로 가고 학생들도 자신감을 잃고, 악순환이죠. 김어준 경제뿐 아니라 학문분야마저 이런 이원화구조로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준만 글쎄, 더 심해진다고. 서울 대 지방의 그 이원구조가 한국 지식계에 끼치는 영향이 참 크다구요. 일단 지방의 경우, 가는 수는 소수일 망정 “나도 잠재적으로 서울로 가는 대상자”라고 생각되면 서울로 갈 수 있게끔 행동하는 그 패턴을 따라가게 되요. 싫은 행동 안 하려고 해요. 튀면 절대 못 갑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 지식인을 한번 묶어주고요. 또 서울로 간 친구들은 어떤 생각이냐면, 일단 서울로 갔다는 건 일종의 약속이에요. 너 여기와서 까불지 않는 조건이야 하는 묵계지요. 그래서 또 자기검열을 하게 되요. 한국 지식인들을 순치시키는 데 서울-지방의 일방적인 이동만 있는 구조가 대단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죠. 김규항 <조선일보> 문제를 포함해서 지식인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분들 중에 서울의 메이저 캠퍼스 교수들은 없지요. 우연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 DJ 광신도 아니에∼요” 강준만 대부분 지방대 교수거나, 학부하고 대학원 전공하고 다른 사람들이에요. 학부하고 대학원 종이 같아버리면, 비판적 의식을 가질 새도 없이 조르륵 말려서 졸개로 키워져요. 설사 의식은 갖는다 하더라도 ‘오야봉’ ‘꼬붕’ 체제가 가져다준 혜택이 워낙 크기 때문에 도전을 안 해요. 반면에 학부 대학원 전공이 달라버리면 그 라인에서 이탈되거든요. 설움도 겪어본단 말이에요. 문제의식을 갖거든요. 삐딱하게 가게 되지요. 김어준 결국 없는 놈들이 하는 말인가요? (웃음) 강준만 비판받거나 이대로가 좋다고 하는 놈들은 “꼭 지방대에 있는 새끼들이 욕해요”라고 사석에서 빈정댄다고. 지방대라 한맺혀서 그런다는 거예요. 누가 막 흥분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거 맞는 이야기네. 나쁘냐 그게?” 그럼 우리 사회에서 비판이 가능하냐는 거예요. 재벌 아들놈이 재벌 비판하는 거 봤어요? 재벌 비판하면 저 새끼가 재벌 못돼서 그래요, 검찰 비판하면 저 새끼가 검사 못돼서 그런다고 그러고, 서울대 비판하면 서울대 안 나와서 그런다고 그러고 빈민운동하면 저 새끼 부자 아니래서 그런다고 그러고. 비판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는 거예요. 본래 누리지 못하는 놈들이 하는 건데 왜 이놈의 지식계만큼은 그게 무슨 또 대단한 비밀이나 간파한 것처럼 그런 수작을 한다고. 저 새끼 뭐 지방대 있으니까 그런다고. 뭐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다고 그러고. 김어준 그럼, 앞으로도 <인물과 사상> 계속 나오는 건가요? 강준만 저 죽을 때까진 해요. 죽을 때까지.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가요. 김어준 이건 빼야 될 것 같은데…. (웃음) 강준만 아니다 싶으면 깃발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다매? 난 그렇게 못하겠다는 거지. 저 같은 경우에는 밥먹고 하는 짓의 하나가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는 건데… 들어보면, 학구적인 부류가 하나 있어요. 학구적인 분들은 절 싫어해요.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예를 들면 스타일리스트들이 싫어하죠. 글 한줄 한줄에 온갖 열과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새끼 쓴 거를 보면은 기분 나쁜거든. 그러나 나는 대중을 상대로 한 글을 쓰는데 그것 가지고 왜들 그러나 싶어요. 나도 콤플렉스 느끼고 있는데 말야. 우리나라 스타일리스트 몇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 고종석씨, 김규항씨, 김훈씨, 그리고 임지현씨도 글 잘 써요. 앉아서 그냥 막쓰는 글이 아니구나 하는 게 오잖아요. 그 문화적 갈등. 부르디외도 그말 하잖아요. 상대방의 혐오감이 이데올로기는 아니거든요, 문화적인 취향의 차이가 더 적개심을 드러내게 만든다구.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 근데 또 문화적 취향 때문에 내가 저놈을 싫어한다고는 또 이야기 안 해요. 자기를 속여요. 다른 이유를 끄집어댄다고요. 하여간 <딴지일보>를 보면 부러워요. 내가 그런 걸 했어야 하는데. (웃음) 김규항 문화적 취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드니까. 강준만 힘드니까 만만한 게 상업주의이에요. 내 글 읽어보지도 않아. 또 만만한 게 DJ 광신도. 나 씹을 놈들이 정성스레 읽겠어요? 읽지도 않고서는 하나 가지고 스테레오타입화해서 씹어대고 그러죠. 그런 점에서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면 좀 피곤하죠. 그렇다고 나에 대해서 쏟아지는 비판을 듣기 싫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이제 거기에 압도당하면 안 되죠. 사실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두 시간 반의 쾌도난담은 상대적으로 싱거웠다. 본 게임은 저녁을 먹으러 가서 시작됐다. 그는 혼자 맥주를 10여병 가까이 비우면서 열변을 토했다. 일단 <조선일보>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이 빠질 리 없었다. “걔네들을 극우라고 불러? 극우도 극존칭이지. 한데 어떻게 된 놈의 세상이 그런 신문이 1등을 하게 놔두냔 말이야.” DJ정권에 대해서도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지금 지 무덤들을 파고 있어. 그걸 모른다면 DJ의 한계이자 DJ졸개들의 한계야. 정권교체 목적이 지 굶주린 배 채우는 거였나? 물론 정권교체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인사에서 너무 해쳐먹어. 이번 개각도 너무 실망했다고. 그것뿐인가? DJ, 좋게 말하면 미필적 고의고 나쁘게 말하면 방조야, 방조. ‘DJ 광신도’ 소리 들으면서 해왔던 나 같은 사람들만 배신감 느낀다고.” 그는 잠시 화장실로 가면서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저 DJ 광신도 아니에∼요.” 전라도가 비굴하다

(사진/“<조선일보>에는 극우도 극존칭이지…”강준만교수는 전라도 사람들의 <조선일보>중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