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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래 역사학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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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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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앞으로 건너뛰어가 21세기 초의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를 만난다고 가정하자. 그는 기록으로 남지 않은 자료를 수집하면서 당신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체험이나 기억 또는 소지품을 통해 당신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대한 어떤 정보를 줄 수 있을까?(<사회를 보는 논리>,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1. 휴대폰!

31세기야 텔레파시로 다 통하지만, 그때만 해도 손바닥만한 요것이 원조 텔레파시로 요술방망이였어요. 주머니 속에 넣고 커닝도 하고, 화장실에서도 친구나 애인을 불러낼 수 있었지요. 독립, 예속, 네트워크의 상징이었어요.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지요. 이것 가지려고 10대 소녀들이 원조교제라는 것도 하고, 은밀한 관계가 증폭돼 이혼도 늘어나고…. 아무튼 그때 이후 지구상에서 이별, 영원한 이별이 사라졌어요. 어떤 낭만과 함께.


2. 머리색깔

21세기만 해도 유전기술이 초보단계여서 인종이라는 게 있었고 우리쪽 인종은 원래 머리카락이 까맸거든요. 그런데 세계화라는 것이 머리를 덮쳤어요. 눈알색은 달라도 머리색깔은 양의 동서가 없어졌어요. 노랑머리 빨강머리 파랑머리, 유사 이래 처음으로 뒤에서 보면 인종 구별이 불가능해졌지요. 얼굴에 각 잡기도 시작됐고요.

3. 색깔론

머리카락뿐 아니라 머릿속 색깔론이라는 것도 있었는데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뇌가 좀 특이한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이 한번씩 ‘저기저기는 머릿속이 불그스레하다’고 그래요. 그러면 신문이라고 만날 배달되는 종이쪼가리가 있는데, 거기서 ‘저기저놈들 새빨간 놈이란다, 고로 나쁜 놈들이다’라고 장풍을 날려요.

문명의 원시시대에 어떻게 남의 머릿속을 알아냈냐고요? 특이한 뇌를 가진 사람들은, 그냥 딱 보면 안대요. 그리고 빨갛기 때문에 빨갛대요. 그러면 한쪽에선 우∼하지만, 한쪽에선 와∼하고 손뼉치고 좋아해요. 한바탕 하고 나면 무척 기분이 좋은가봐요. 뇌에 따라 한달에 한번, 석달에 한번, 또는 1년에 두번씩 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양한 유형이 있었지요.

1주일에 5일 놀자는 놈, 세금 많이 거둬 병원비 싸게 하자는 놈은 빨갛대요. 그것이 왜 빨갛고, 여기 눈알색깔로 인기인 빨간색이 왜 문제가 됐냐고요? 그냥 빨갛다 그러면 빨간 놈이 되고, 빨간 놈은 나쁘고, 들썩거리고…. 어쨌든 그랬어요.

무슨 소리냐고요? 역사학자님, 이걸 이해 못하면 연구가 안 되는데. 음 차라리, 사라진 그 섬, 여의도라는 데에 남아 있다는 새대가리 화석을 한번 분석해보는 게 낫겠네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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