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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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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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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질병 재평가하는 안티 에이즈 운동… “HIV 신화 깨뜨린다”는 주장에 의학계 코웃음

사진/ 누가 에이즈바이러스를 증명했는가. 안티 에이즈 운동을 벌이는 이훈씨가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박승화 기자)
“어머니, 저 에이즈 걸렸어요.”

이 고백은 “어머니, 저 암이랍니다”라든가 “저 백혈병 걸렸어요”라는 말과는 다른 맥락을 지닌다.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는 암이나 감기처럼 단순한 질병이 아닌 탓이다. 에이즈 감염은 신체를 위협하는 질병의 의미를 넘어 한 인간의 실존 자체를 위협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에이즈 감염은 건강뿐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를 변화시킨다. 주변 사람들은 접촉을 기피하게 되고, 가족들은 감염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기 십상이다. HIV/AIDS에 묻어 있는 도덕주의적 편견 탓이다. 에이즈 감염인은 동성애자나 마약사용자, 그도 아니면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아직도 에이즈는 단순한 질병이 아닌 사회·정치적인 질병이다.

에이즈 감염을 둘러싼 도덕적 편견들


사회적 맥락이 워낙 복잡하고, 바이러스 규명이 까다롭다보니 에이즈가 발견된 80년대 초반부터 온갖 루머와 추측들, 음모론이 난무했다. 초기 감염인이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였던 탓에 ‘게이 돌림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부 도덕주의자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집단에게 신이 내린 천형이라고 떠들었다. 도덕적 편견에 갇혀 제대로 된 예방대책이 유예되는 동안, 에이즈는 전세계로 확산돼갔다.

성적 지향성의 구분없이 에이즈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떠오른 또다른 피해집단은 흑인이었다.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부족한 의료비가 그 배경이었다. 이처럼 흑인이 급격하게 피해집단으로 떠오르자 일부 흑인들은 “인종주의자와 그 하수인들이 인종청소를 위한 세균전쟁의 도구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핵실험으로 생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풍문,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균전을 획책하던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물이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질 정도였다. 그리고 에이즈는 발견 초기부터 그 존재 자체를 의심받아왔다. “에이즈는 없다”, “HIV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의학계를 비롯한 서구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것이다.

8월1일 오후 6시40분 서울 광화문 부근. 반팔 티셔츠를 걸친 청년 한명이 유인물을 부지런히 나눠주고 있었다. 청년의 어깨 너머로 ‘에이즈와 함께 살다- 행복하다. 내 삶과 육체를 깨달았으므로’라는 글귀가 보였다. 매달 성적 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하는 퀴어아카이브의 8월 정기 상영회장이다. 극장 입구에 게시된 유인물들이 말해주듯 이번 달 주제는 ‘에이즈’.

한가로이 영화를 기다리던 50여명의 사람들에게 청년이 다가가 “에이즈에 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습니다”라며 유인물을 건넸다. 무심코 유인물을 받아든 사람들은 ‘에이즈는 없다’라는 제목을 보고 조금씩 놀라는 기색이다. ‘에이즈와 함께 산다’는 주제의식을 내건 영화제에서 ‘에이즈는 없다’는 주장을 만난 탓이다. 몇몇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유인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몇몇 사람들은 청년에게 다가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에이즈가 정말 없다고요?”

유인물을 나눠주던 이훈희(29)씨는 “에이즈 이론은 가설”이라며 “아직 HIV를 증명하는 논문이 단 한편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병원체 진단에는 바이러스 분리가 결정적이다. ‘분리’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로 확정되지 않으며, 어떤 병을 일으킨다고 단정내릴 수도 없다. 그런데 HIV는 아직껏 분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5년 동안 대체의학을 공부해왔다는 이씨는 “이는 면역학의 기본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씨의 주장은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케리 뮬리스 박사의 언급으로 뒷받침된다. “나는 에이즈가 HIV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에 기인하는 병이라고 생각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만일 HIV가 에이즈를 초래한다고 하려면, 높은 가능성을 가진 최소한의 사실을 종합적으로 증명하는 과학적 논문이 있어야 한다. 그런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

HIV 가설을 부인하는 연구자들이 편집하는 <콘티니움>(www.virusmyth.com/aids/award.htm)은 HIV를 발견한 사람에게 1천파운드의 상금을 수여한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상금을 받아간 과학자는 없다.

HIV는 여전히 가설… 치료약 효과 미지수

사진/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에이즈 치료약으로 거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한 에이즈 환자의 주검 위에 제약회사를 악덕업자로 묘사한 포스터를 올려놓았다.(GAMMA)
이 땅에서는 이날 안티 에이즈 운동이 처음 시작됐지만, 이미 서구에서는 “에이즈는 없다”는 주장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1981년에 설립된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 그룹이 대표적인 안티 에이즈 과학자 집단이다. 안티 에이즈 주장을 담은 대표적 사이트로는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그룹’의 홈페이지(www.rethingkngaeds.com)와 에이즈에 관한 350가지 이상의 기사와 500개 이상의 웹페이지를 담은 ‘바이러스 신화’의 웹사이트(www.virusmyth.com)가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연말 안티 에이즈 모임이 등장했다. 지난 11월 문을 연 다음카페의 ‘에이즈는 없다’(cafe13.daum.net/_c21_/home?grpid=19N9)가 바로 그것이다. 이씨가 운영자로 있는 이 카페는 현재 150여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다.

안티 에이즈 운동가들은 HIV의 존재뿐 아니라, HIV 혈청 테스트의 신뢰성도 의심한다. HIV 혈청 테스트는 1/400이라는 희석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규정이 자의적일 뿐 아니라 희석 정도에 따라 양성판정이 나올 수도, 음성판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의 한 여성은 6번 실시한 검사에서 세번은 양성판정, 세번은 음성판정을 받기도 했다.

또한 안티 에이즈 운동가들은 에이즈 치료제 복용을 “처방전에 의한 살인”으로 부른다.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에이즈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에이즈를 “거대한 이익을 노린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와 결탁한 일부 연구자들의 거짓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해마다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에이즈 치료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와 연구자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즈는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의료계는 “HIV는 변이가 많아 정확한 규명이 까다롭기 때문에 생기는 희극”이라고 일축한다. 강원대 미생물학과 신영오 교수는 “HIV 바이러스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며 “눈에 띌 만한 예외가 있어야 혼란이 생기는데, 에이즈에 관해 그런 혼란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편, 안티 에이즈 이론을 사회적 맥락에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기획실장은 “에이즈는 대규모 자본이 투여된 의료화(medicalization)의 극치이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어 ‘에이즈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가 된다”고 현대의학의 한계를 먼저 지적했다. 이어 우 실장은 “지금껏 보건의료를 둘러싼 담론은 의사들이 독점해왔다”며 “그 밖의 모든 이론들이 비과학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나온, 주류 담론에 대한 저항 중의 하나”로 안티 에이즈 운동을 평가했다.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좀더 나아가 “이 주장이 진실에 가깝냐, 아니냐가 문제의 모든 것는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어떤 종류의 과학적 연구나 발견도 의료자본의 장삿속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대중의 지적 냉소주의”를 지적하며 “결국 에이즈에 관한 한, 전문가주의의 붕괴는 지식의 민주화로 이어지기보다 지식의 비합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버렸다”고 분석한다. ‘사회적 질병’인 에이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지식들의 전투, 그 극단에 ‘에이즈는 없다”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감염인들 치료 방기에 대한 우려 목소리

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시위를 벌이는 에이즈 운동가들. 이들은 저가의 에이즈 치료약 공급을 주장하고 있다.(GAMMA)
한편에서는 안티 에이즈 운동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에이즈 감염인은 “감염인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에이즈 운동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온 안티 에이즈 운동은 혼란만 가져다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문화평론가 이정우씨는 안티 에이즈 운동을 “감염인들이 건강관리를 소홀하게 만들어, 그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적”이라고 공격했다.

이런 비판에도 스스로를 “감염인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주는 반체제 인권운동”이라고 규정하는 안티 에이즈 운동은 이 땅에 얼굴을 내밀었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에이즈 이론이 가설이라면 안티 에이즈 이론도 ‘HIV 존재 증명’에 의해 한순간에 허물어질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이즈는 없다’는 주장의 등장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에이즈 시대를 규정할 만한 사건임은 분명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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