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장을 받아든 신임 법관의 손이 떨린다.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10년 뒤 재임용 심사를 받는다. <한겨레> 김봉규
법원조직법은 ‘연임 불가’ 사유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신체·정신상의 장해로 인해 판사로서의 정상적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서 판사는 대법원으로부터 두 번째 사유, 그러니까 ‘근무성적 불량’으로 부적격 대상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의 근무성적평정 내용 등은 법으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대통령에 대한 ‘막말’이 문제였다면 ‘판사의 품위’를 사유로 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10년치 근무평정을 종합해 내린 결정이지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는 것이다. 판사들 걸러낸 박정희, 전두환 사법부의 과거를 돌아보면 권력에 미운털이 박힌 판사들을 걸러내는 데 법관 재임용 제도가 악용된 사례는 많다. 제헌헌법은 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은 법관 임기를 권력에 종속시켜버렸다. 유신헌법에 따라 개정된 법원조직법에 근거해 법관 356명은 연임, 38명은 재임용을 받지 못해 1973년 3월31일자로 의원면직됐다. 38명 가운데 5명은 ‘1차 사법파동’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말은 의원면직이었지만, 1971년 국가배상법 위헌 의견을 낸 대법원판사 9명도 같은 날 의원면직됐다. 이 일이 있은 뒤 사법부는 급속히 굴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80년 개정 헌법에 따라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됐다. 이듬해 4월17일 6명의 대법원판사가 퇴직하고 판사 37명이 법복을 벗게 됐다. 1991년에도 30여 명의 판사가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이들이 포함됐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게 시국사건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포함됐다. 법관 재임용 판단의 주요 근거 자료는 해마다 법원장에 의해 이뤄지는 법관근무평정이다. 과거 법관 서열과 인사, 보직 결정은 판사가 되기 전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수료 성적에 따라 전적으로 이뤄졌다. ‘성적순’은 법복을 벗을 때까지 꼬리표가 됐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식당에 들어갈 때, 등산을 할 때’조차 성적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판이 커지자 1994년 근무성적평정이 시작됐다. 2003년에는 법원장 1명이 평가하고 당사자가 원하면 10년 경과 뒤 평정 결과 요지를 공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05년, 처음으로 근무평정 결과가 법관 정기 인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법조 브로커 사건으로 사법 불신이 커졌던 2006년에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킨 판사들을 연임 심사 때 철저히 검증해 퇴출시키는 방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한 전직 법원장은 “근무평정의 객관성을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업무성실도, 판결, 내부 의견, 상급심 재판부의 의견 등을 종합해 평가한다. 하지만 시험 성적처럼 1~2점으로 나누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하는 일이라 당사자는 섭섭하고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남을 판단하는 게 직업인 판사들은 평가를 당하게 되는 근무평정에 굉장히 민감해한다”고 했다. 현 법관 인사 시스템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고법부장 승진’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튀는 판사들을 걸러내는 것으로 비쳐지지 않을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전관예우, 정치판사는 걸러지나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은 평정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하지만 평정 권한을 가진 법원장의 부당한 압력과 판사들의 눈치보기가 결국 재판 독립성을 일상적으로 해칠 것이라는 우려는 가시지 않았고 현실화하기도 했다. ‘신영철 사태’가 언론에 불거지기 직전인 2008년 12월,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일선 법원장들에게 “근무평정 권한을 지닌 법원장의 언행이 자칫 한계를 벗어나면 젊은 법관들의 의욕과 기백을 꺾게 된다”고 뜨뜻미지근하게 지적했다.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는 법관인사위원회에는 외부 인사도 참여한다. 서 판사는 “재임용 심사에 들어갈 사유도 아니고 사직할 마음도 없다. 소명 절차를 거치겠다”고 했다. 2월 말 법관 인사에서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여부가 공식 발표된다. 양승태 대법원장 들어 엄격해졌다는 법관 재임용 심사. 사법부는 정말 전관예우에 약한 판사, 불성실한 판사, 정치권력을 따르거나 경제권력에 어깨가 기운 판사들을 제대로 걸러내고는 있을까.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