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카다피가 지난 3월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퇴진 거부를 밝히는 연설을 하기 앞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청중을 휘어잡는 ‘달변’도 닮아 있다.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잡스는 직접 무대에 올라 대중을 열광시켰다. 카다피의 ‘프레젠테이션’은 더욱 파격적이다. 특히 2009년 9월 사상 첫 미국 방문길에 유엔 총회장 연단에 오른 카다피가 남긴 96분짜리 ‘연설’은 세간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 의전규정은 각국 정상의 총회장 연설을 최대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걱정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그린북>을 통해, 아프리카를 넘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까지 ‘혁명’을 수출하고자 애썼다. 애플 창업 초기, 경영 안정화를 위해 당시 펩시콜라 사장이던 존 스컬리를 영입하려고 잡스가 던진 발언은 그의 인생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 남아 평생 설탕물이나 파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랑 같이 가서 세상을 바꿔보시렵니까?” 삶이 비슷하다고, 죽음까지 그럴 순 없다. 췌장암으로 오랜 투병을 해온 잡스는 지난 10월6일 미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죽음을 예감했던 그는 그보다 6주 앞선 8월24일 애플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비슷한 삶, 다른 선택 그에 하루 앞선 8월23일 카다피도 죽음을 예감했을 법하다. 그날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까지 진격해온 반군은 마침내 그의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카다피는 잡스와 다른 선택을 했다. 고향 시르테로 숨어들어 자기 국민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외쳤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된 지난 10월20일 카다피는 반군에 붙들렸다. 무참히 매질을 당한 그는 이내 처형됐다. 잡스가 만들어낸 아이폰이 ‘아랍의 봄’을 불렀다. 카다피는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첫 국가원수다. ‘사필귀정’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