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정효 기자
대법원 판결은 이념이 아니라 삶을 바꾼다. 행정법상 불법인 명의신탁은 대법원 판례로 보호받고 있다. 시민단체가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대법관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박시환(위)·김지형 대법관 퇴임 뒤 대법원의 보수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이 11월18일 퇴임했다. 두 대법관은 김영란(2010년 8월 퇴임)·이홍훈(2011년 5월 퇴임)·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진보 대법관 5인으로 불렸다. 이들은 강의석씨 판결, 철도노조 업무방해 판결, 삼성 X파일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서 종교의 자유, 노동권, 삼성 관련 보도의 공공성 등을 옹호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2012년 7월 퇴임하는 전 대법관 혼자 남았다. 1988년 군사독재 유산으로부터 사법부 개혁을 주장하는 판사 연서명 운동 당시 박시환·김지형 대법관과 함께 참여했던 이인복·박병대 대법관이 현직에 있지만, 정치·경제·사회 등 핵심 이슈에서 일관되게 진보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박시환 대법관은 사법부 개혁을 주장하는 1988년 연서명 참여, 국가보안법 위헌제청 등 젊어서부터 인권·시민자유 등의 가치를 판결에 담는 데 앞장서왔다. 김지형 대법관은 진보적인 노동법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박시환·김지형 대법관 후임으로 지난 10월 김용덕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보영 변호사가 임명 제청됐다. 김 차장은 54살의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왔고, 50살의 박 변호사는 전주여고와 한양대를 나왔다. 출신·나이·대학·성별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은 논평을 내어 “(두 후보가) 사법부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뚜렷한 의미를 남긴 판결과 활동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나이, 학력, 출신 지역 등의 다양성이 가치관의 다양성을 법원에 반영할 수 있겠느냐는 게 시민단체의 우려다.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짙은 아쉬움을 표현했다. 김 대법관은 “6년이 지난 지금은 부끄러움이 앞설 뿐입니다. 처음의 다짐과 소망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라며 “제가 법관으로서 도달하려고 했던 목표는 한 가지였습니다. 고통받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대법관은 “능력과 자질에 비해 저는 너무 과분한 자리에 와 있었으며, 저의 그릇은 이미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법관은 동료와 후배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 대법관은 “강자의 입맛에 맞게 통제되는 법관, 순치되는 법관으로는 다수와 소수, 강자와 약자의 이익을 두루 살피고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창조적인 법 해석을 통한 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법관을 통제하고 자기 편으로 길들이려는 욕구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결국 법관의 자율은 법관 스스로가 싸워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라고도 했다. 김 대법관은 “어느 사회가 법관과 법원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 사회는 매우 소중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법원 바깥의 기대와 우려 2012년에 김능환·안대희·전수안 대법관이 퇴임하면 그 자리를 다시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채운다. 6년 전 김지형 대법관은 취임식에서 함석헌의 시를 읊었고, 박시환 대법관은 “법원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고 말했으며, 지금은 이명박 행정부의 총리가 된 김황식 당시 대법관은 “이 땅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내년 대법관 취임사에서 느낄 수 있느냐는 게 법원 바깥의 기대이자 우려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