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연구목적으로 독일에 와서 이 글을 쓴다. 모처럼 오랜 세월 공부한 곳에 오랜만에 다시 찾아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두드러진 변화는 이제 이곳도 전형적인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서나 많은 인종들을 마주치게 되고, 거리마다 온갖 이국적인 식당들이 즐비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사회가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에서 본 IOC 위원장 선거
최근 새로운 이민법을 추진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독일이라는 문화전통, 그리고 민족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민을 다시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급두뇌에 국한하겠다는 것이다. 또 구동독지역 일부 도시에서처럼 노골적인 외국인 차별 정서가 팽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다문화사회에 대한 담론은 제법 성숙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유학 시절 활동했던 모임을 포함해서 제3세계 모임들이 모두 한지붕 밑에서 모여 일할 수 있도록 만든 ‘세계는 하나’라는 센터가 이곳 뮌헨에서 막 문을 열어 그 축하하는 자리에 갔다가 그 변화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려 14개 나라에서 온 주로 피난민들의 아이들이 모여 랩과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내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다양성이 앞으로 모든 지구촌의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다문화사회의 제 모습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다양성을 가진 다문화사회로 나갈까, 그 앞날을 조금은 답답한 심정으로 그려보던 중, 지난 며칠 동안 날마다 이곳 언론에 보도된 뉴스 때문에 나는 촌스럽게도 민족적인 모멸감과 우리 사회의 폐쇄성에서 오는 한계를 절감했다. 다름 아닌 IOC 위원장선거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미리 말해두거니와 이곳 비판적인 언론은 IOC 자체를 곱게 보지 않을뿐더러 이제 막 물러난 전 위원장부터 스페인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비판적 언론에서마저 잘됐으면 하는 자기만족적 예언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지지했던 한국 후보는 여기서 보면 우리 군사정권시대의 어두운 과거와 IOC 자체의 시대착오적인 부패와 음모를 한꺼번에 상징하는 인물일 뿐이다. 아무튼 이곳 언론뿐 아니라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나, 다시 한번 뚜렷이 드러내준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왕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와 함께 스포츠 자체에 대한 다양성의 꿈을 그려보자. 나도 스포츠 구경 좋아하거니와, 오랜만에 유럽에서 지금 한창인 유명한 ‘프랑스 역전 자전거 경주’를 힐끔거리며 보면서 그 최고수준 선수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기울이는 엄청난 정신과 육체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왜 우리는 꼭 그런 선수들만의, 규격화된 시합만 즐기는 것일까? 오래 전, 해마다 서로 자웅을 겨루는 유명한 대학 중 하나에서 강의를 할 때, 휴강을 하라기에 못하겠다고 학생들과 다툰 적이 있다. 나는 왜 수억원씩 돈을 들여 사온 선수들의 경기를 모든 학생이 학교를 쉬면서까지 응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진정 축제라면 너희들끼리 이 학교에서 저 학교까지 이인삼각 경주나, 무리지어 손잡고 걷기나 그렇게 다양한 놀이로 해라, 이런 주장을 했고 학생들은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내 뜻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내 곁에서, 내 삶 안에서 얼마든지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데도 늘 밖에서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놀이와 축제를 찾는다. 스포츠가 가장 전형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바로 스포츠에서부터 안에서는 놀이의 다양성을 찾아야 하고, 밖으로는 그 폐쇄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눈과 귀, 코와 입과 혀의 다양성
물론 나도 우리가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하면 우리나라를 응원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독일축구를 응원했던 적도 있다. 독일축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재미있고 성실한 시합을 보고 싶어한다.
문화적 다양성이란 저 밖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삶의 색깔만은 아니다. 바로 내 눈과 귀, 코, 입, 특히 혀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다. 이를테면 음식이 바로 그렇다. 예전에는 나도 바깥 나들이를 할 때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다. 하지만 훈련 끝에 이제는 견딜 만해, 적어도 한동안은 김치 없이도 이것저것 맛있게 먹고 즐길 수 있다. 그것도 중국음식이나 이탈리아음식뿐 아니라 쿠르드, 에리트레아, 에콰도르음식 등을 말이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어 오니 이곳의 옛 친구들과 또 무슨 음식을 한번 즐겨볼까, 생각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입맛 다셔본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