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기자의 ‘대리운전 아르바이트’ 3주… 허탕이냐 한탕이냐 그것이 문제였네
원효대교가 휙 지나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강북강변로는 한가하기만 했다. 곧이어 한강대교, 동작대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휙휙 사라졌다.
시속 80km. 너무 느린가? 뒷좌석에서 한마디 한다. “아저씨. 확 밟아도 돼요.”(남자) “저도 밟는 게 좋아요.”(여자)
얼떨떨했던 ‘첫 경험’
그러나 밟을 상황이 아니다. 한두번 지나간 길이 아니건만 오늘은 왜 이리 얼떨떨한가. 영동대교 램프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영동대교가 어디 다음이더라? 동호대교? 성수대교? 머릿속의 한강 다리 지도가 막 꼬이고 있는 찰나, 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여자는 “네” “네”만 하더니 “알겠다”면서 휴대폰을 접는다. “누구야?” “XX나이트클럽의 박찬호래. 요즘 왜 뜸하냐고….” “그러기에 자주 가야지. 지난번에 거기서 나는 XX형이랑 발렌타인 30년 110만원짜리 두병을 깠다고. 300만원이 나왔어.” 신촌에서 양주 한병을 나눠 마신 뒤, 2차를 하러 간다는 20대 남녀의 ‘잡담’은 계속됐다. 강남에서만 놀아, 신촌이 촌스럽다는 그들이었다. 한남대교를 지나치면서 이번에는 내가 남자에게 끼어들었다. “영동대교가 어디 다음이죠?” “성수대교 다음이에요.” “오른쪽 차선에 붙으면 바로 다리를 탈 수 있나요?” “그럼요. 영동대교 가서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그 와중에도 ‘뒤에 탄 남녀는 어떤 사이일까’ 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인다. 애인 사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삐리리리링. 다시 울리는 여자의 휴대폰. “응… 응… 응. 그렇게 할게.” 통화가 끝나자마자 대뜸 남자가 비아냥거린다. “야, 넌 도대체 남자가 몇명이냐?” 흰색 SM5는 영동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튼 뒤 에메랄드 관광호텔 근처 골목 카페 앞에 섰다. 남녀는 내리고, 나는 골목 오른편에 주차까지 해준다. “아저씨, 3만원이죠?” “아, 네.” 배춧잎 3장을 상의 주머니에 넣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 뭐라고 꼭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이·런··기·분·은··처·음·이·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보고’를 했다. “잘 모셔다 드렸습니다.” “얼마 받았어요?” “3만원요.” “애걔. 그것밖에?” “3만원이라고 했다면서요?” “그래도… 팁 안 줘요?” “안 주던데요?” “하여간 고생했어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일단 내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가야 했다. 올림픽대로는 웬일인지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체증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셈을 해봤다. “회사납입 6천원, 택시비 넉넉잡아 1만원,… 그러면 떨어지는 게 1만4천원….” 나는 그날 그렇게 난생 처음 ‘영업운전’이라는 걸 했다. 돈독. <한겨레21>의 누군가는 내가 돈독이 올랐다고 놀렸다.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통해 나는 돈을 벌기로 했다. 아예 한달로 목표기간을 길게 잡았다. 밤샘일을 하지 않는 화, 수, 목요일에 대리운전업체에 ‘위장취업’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 일을 제안했던 독자편집위원회의 한 독자는 이런 말을 했었다. “취객들을 상대로 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겠어요?” 하지만 내가 이 일을 결심한 뒤 삼은 첫째 목표는 큰돈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정말 돈독이 오른 것이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에서 10원이라도 번 자가 없지 않은가. 대리운전업체를 찾은 첫날. 사무실의 아주머니도 나의 부푼 기대심에 바람을 넣어주었다. “참 살기가 어려워. 이제 ‘미스터 고’도 돈 많이 벌어야지.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초장부터 기대는 빗나갔다. 저녁 내내 기다려 한탕 뛴 것이 1만4천원? 처음으로 현금을 만지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찜찜함과 야릇한 허무감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운수 좋은 날’ 세탕을 뛰다
“아, 왜 이렇게 늦어요!!” “네. 지금 갑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대리운전업체에 출근한 지 5일째.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서울호텔 앞에서 응암동까지 부부 손님을 태워다주고 나오자마자 두 번째 콜이 터진 것이다. 저녁 10시도 안 됐는데… 조짐이 아주 좋았다. 대리운전자를 찾은 장소는 마포구 홀리데이인서울호텔 맞은편 골목의 한 고깃집이라고 했다. 신촌의 택시 안에서 나는 “곧 간다”고 하면서도 애가 탔다. 늦었다. 아직도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휴대폰이 또 울린다. “지금 어디세요? 왜 안 오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거 참 내….” 신경질과 함께 핸들이 끊긴다. 택시기사를 채근해 빨리 달리지만 신호등마다 걸린다. 20여분 만에 가까스로 도착하자 손님은 어떤 모범택시 기사와 ‘흥정’을 걸다 내게로 온다.
목적지는 왕십리. 검은색 그랜저다. 마포대교 고가도로로 유턴해 만리동을 거쳐 퇴계로로 빠졌다. 뒤에 앉은 50대 초반의 남성은 ‘사장님’처럼 보인다. 한동안 가족들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다. 막힘이 없던 도로는 신당동에서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공사중인 모양이다. 손님이 말을 건다. “술 냄새 많이 나지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대리운전 부를 때마다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 “근데 술 많이 드셨나요?” “많이 먹었죠. 내가 사는 술인데 많이 먹어야지, 그럼. 음, 소주 한 두어병 먹었나?” “….” “주물럭을 먹는데… 어휴 얼마나 많이 먹는지 25만원이 뚝딱이야.” “….” “….” “높은 자리에 계신 것도 힘든 일이죠.” “그렇지. 그렇게들 관리하려면…. 하긴 그것도 투자지, 투자.”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 호텔의 부총지배인이자 영업이사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업장 10여 군데를 돌면서 회식을 시켜주고 있는데, 오늘은 예약과 직원들과 한잔 했다는 것이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대리운전은 자주 부르십니까?” “네. 자주 부르죠. 술 먹고 운전하다 걸리면 이 나이에 무슨 망신이야.” “…(개망신이죠).” “난 모범택시 운전사한테도 대리운전을 많이 시켜요. 아주 좋아해.”
상왕십리 주택가에 주차를 시켜준 뒤 3만원을 받고, 이번에는 전철을 탔다. 마포구 용강동 근처의 사무실 부근에 도착하자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 성산동에서 손님이 부르는데 인천 갈 수 있나?” 와, 끊이지 않고 연거푸 세번이나 콜이 오다니…. “그럼요.” 이번엔 사장이 차를 가지고 와 손님들이 있는 곳까지 나를 태워준다. 성산동 임대아파트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30대 초반의 두 여성이 손님이다. 흰색 엘란트라. 성산대교를 건너 오목교-신정교-오금교를 거쳐 고척교에서 우회전한 뒤 쭉 직진했다. 온수역 부근에서 한명을 내려주고 다시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으로 향한다. 앞자리에 탄 손님은 나에게 “낮에는 뭘 하시느냐”고 묻는다. “그냥 놀아요.” “아휴… 요새는 한집 건너 한명이 실직자예요.” 그러면서 한숨을 폭 쉰다. 그는 인천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한다고 말했다. 비수기라 한가하던 차에 낮에 계모임을 가졌다는 것이다. “3시부터 마셨어요. 북한산에서 1차, 연희동에서 2차, 아까 거기서 3차 하고 있었어요.”
전화벨이 울리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런데 부평구 부개동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성산동에서 출발한 시각이 12시20분이었는데, 부개동에 도착하니 1시30분. 정해진 요금 4만원을 받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다. 고양시로 가기 위해선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김포대교와 자유로를 거쳐가야 할 것이다. 2만원에 합의를 보고 택시에 올라 ‘보고’를 한다. “저 다 끝내고 집에 가고 있습니다.” “피곤해서 어쩌나. 그래 팁은 받았어요?” 사무실에 있는 아주머니는 전화 걸 때마다 팁 타령을 한다. “그런 건 못 받았다니까요.” 구차하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난 왜 팁 주는 손님이 없을까 하면서 괜스레 못마땅해진다.
그래도 이 ‘운수 좋은 날’의 하루매출액은 10만원(3만+3만+4만)이었다. ‘사납금’ 1만8천원(6000×3)과 두번 탄 택시비(5000+2만=2만5천원)를 제한 순수익은 5만7천원이었다. 그래 정말 돈독이 오를 수도 있겠다. 아예 <한겨레21> 때려치우고 이 길로 들어서? 시작한 김에 한 두어달 해볼까? 그러나 나는 3주(출근일수 8일, ‘출정’ 5일에 총 7건) 만에 이 일을 접었다. ‘운수 좋은 날’은 계속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업체에 출근했던 8일 중 3일은 허탕을 쳤으니, 하루에 ‘한탕’을 뛰어도 감지덕지할 판이었다(신생업체라서 홍보가 별로 안 돼 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하염없는 기다림’이었다. 오죽했으면 업체 사무실에 죽치고 있으면서 본 <동감>이라는 뮤직비디오의 가사자막에 책상을 치며 ‘동감’을 했을까. “전화벨이 울리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연인 사이라면 답답한 내가 먼저라도 전화하겠지만, 이럴 땐 “왜 전화 안 하냐”고 누구한테 항의해야 하나.)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결심한 날,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직장인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음주를 즐기는 날(마감전야. <한겨레21> 기자들에겐 가장 스트레스 받는 날이다). 업체에 따르면, 콜이 가장 많은 날이라고 했다. 예감이 좋았다. 저녁 8시50분경 ‘출근’을 했더니 10분 뒤에 바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용산전자랜드 맞은편 주차장에 있는 엔터프라이즈 XXXX호로 오라고 했다. 목적지는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거리가 가까운지 업체에서 2만5천원을 불렀다고 했다. 손님은 40대 중반의 남성. 부하직원인 듯한 이가 선불로 계산을 치렀다. 엔터프라이즈는 부드럽게 굴러 용산역 광장을 지나 반포대교를 넘었다.
"그 나이에 왜 놀고 있니..."
나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처음으로 배기량 2500cc 이상의 고급 승용차를 운전해 봤다. 운전을 시작한 지 정확히 11년째지만 1500cc 이상을 몰아보지 못한 처지였다. ‘포니2, 프라이드, 르망’만이 내 ‘드라이브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그런 내가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랜저와 엔터프라이즈, 포텐샤, 무쏘, SM5 따위를 운전해 보겠는가. 고급 승용차의 각종 기기들에 낯설어 운전석의 문조차 못 연 적도 있었다. ‘자동잠금장치’라는 것이 있다는 것, 때문에 안에서 문을 열기 위해선 기계조작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승차감도 달랐다. 포근하고 아늑한 소파에 핸들이 달린 느낌이랄까. 그런 편안한 기분에 도취되어 있는데 뒤에 앉은 손님이 시시콜콜 캐묻기 시작한다. 고향은 어디냐,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결혼은 했느냐, 그리고 결정적으로 ‘낮에는 뭐하냐’. 어떤 이는 타자마자 뻗어 코를 골기도 하는데 이 손님은 너무 말짱했다. “그냥 뭐…놀아요.” “그냥 놀기만 하나?” “공부도 좀 하고요.” “무슨 공부?” “뭐… 이것 저것.” “대학 가려고?” “(오잉!)네? 제가 그렇게 젊어보입니까? 결혼도 했다니까요.” “전에 직장은 다녔고?” “다녔죠.”
그의 질문은 계속됐다. 대학은 다녔나, 전공은 뭐했나, 영어는 잘하나, 회계 일은 좀 할 줄 아나…. 용산의 중견 컴퓨터업체 사장이라는 그는 ‘실직자’인 나를 측은히 여기면서 나름대로 구제해줄 방도를 찾는 듯했다. 내 인상이 좋다면서, 업체를 끼지 않고 주말에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되겠느냐 묻기도 했다. 집안 행사를 다니는데 일일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바쁜데요(돈만 많이 주면 가겠지만, 사실은 마감이라 시간을 못 내는데요).” “왜? 교회 다니나?” “네 뭐 그냥…(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마감하는데, 내가 돈독이 올라도 그렇게는 몬한다).” 그는 내리면서 명함을 건넸다.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안 되면 자신한테 오라는 이야기였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사실은 실직자가 아닌데도, 왜 나 자신에 대해 연민이 생기는 것일까. 정말 이 나이에 직장도 없이 야밤에 대리운전만 하며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신세라면…. 그런 가정들을 해보니 내가 불쌍해진다. 아냐. 그건 거짓말이잖아. 마포에 도착했다. 다시 콜을 기다려야 한다. 구민주당사 근처의 한 PC방에 들어가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빈둥빈둥했지만 자정이 가까워져도 아무런 부름이 없다. 12시 반… 1시. 나는 천천히 걸어서 회사로 갔다(홀리데이인서울호텔 앞에서 한겨레신문사까지는 20분 걸린다). 8년 동안 큰 말썽 없었던 나의 애마 ‘르망’을 끌고 다시 마포를 거쳐 자유로에 오른다. 마포대교 입구에는 취객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에 나와 손을 흔들고 난리다. 그들을 지나치며, 나는 잠시 도발적인 상상에 잠겼다. “오늘 한탕밖에 못 했는데, 확 ‘나라시’(자동차 불법영업을 뜻하는 속어)라도 뛰어봐?”
글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한 음식점 골목에 자가용을 주차시킨 뒤 '손님의 연락'을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이날은 장장 4시간의 대기 끝에 일을 얻었다.
그러나 밟을 상황이 아니다. 한두번 지나간 길이 아니건만 오늘은 왜 이리 얼떨떨한가. 영동대교 램프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영동대교가 어디 다음이더라? 동호대교? 성수대교? 머릿속의 한강 다리 지도가 막 꼬이고 있는 찰나, 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여자는 “네” “네”만 하더니 “알겠다”면서 휴대폰을 접는다. “누구야?” “XX나이트클럽의 박찬호래. 요즘 왜 뜸하냐고….” “그러기에 자주 가야지. 지난번에 거기서 나는 XX형이랑 발렌타인 30년 110만원짜리 두병을 깠다고. 300만원이 나왔어.” 신촌에서 양주 한병을 나눠 마신 뒤, 2차를 하러 간다는 20대 남녀의 ‘잡담’은 계속됐다. 강남에서만 놀아, 신촌이 촌스럽다는 그들이었다. 한남대교를 지나치면서 이번에는 내가 남자에게 끼어들었다. “영동대교가 어디 다음이죠?” “성수대교 다음이에요.” “오른쪽 차선에 붙으면 바로 다리를 탈 수 있나요?” “그럼요. 영동대교 가서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그 와중에도 ‘뒤에 탄 남녀는 어떤 사이일까’ 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인다. 애인 사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삐리리리링. 다시 울리는 여자의 휴대폰. “응… 응… 응. 그렇게 할게.” 통화가 끝나자마자 대뜸 남자가 비아냥거린다. “야, 넌 도대체 남자가 몇명이냐?” 흰색 SM5는 영동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튼 뒤 에메랄드 관광호텔 근처 골목 카페 앞에 섰다. 남녀는 내리고, 나는 골목 오른편에 주차까지 해준다. “아저씨, 3만원이죠?” “아, 네.” 배춧잎 3장을 상의 주머니에 넣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 뭐라고 꼭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이·런··기·분·은··처·음·이·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보고’를 했다. “잘 모셔다 드렸습니다.” “얼마 받았어요?” “3만원요.” “애걔. 그것밖에?” “3만원이라고 했다면서요?” “그래도… 팁 안 줘요?” “안 주던데요?” “하여간 고생했어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일단 내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가야 했다. 올림픽대로는 웬일인지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체증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셈을 해봤다. “회사납입 6천원, 택시비 넉넉잡아 1만원,… 그러면 떨어지는 게 1만4천원….” 나는 그날 그렇게 난생 처음 ‘영업운전’이라는 걸 했다. 돈독. <한겨레21>의 누군가는 내가 돈독이 올랐다고 놀렸다.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통해 나는 돈을 벌기로 했다. 아예 한달로 목표기간을 길게 잡았다. 밤샘일을 하지 않는 화, 수, 목요일에 대리운전업체에 ‘위장취업’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 일을 제안했던 독자편집위원회의 한 독자는 이런 말을 했었다. “취객들을 상대로 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겠어요?” 하지만 내가 이 일을 결심한 뒤 삼은 첫째 목표는 큰돈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정말 돈독이 오른 것이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에서 10원이라도 번 자가 없지 않은가. 대리운전업체를 찾은 첫날. 사무실의 아주머니도 나의 부푼 기대심에 바람을 넣어주었다. “참 살기가 어려워. 이제 ‘미스터 고’도 돈 많이 벌어야지.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초장부터 기대는 빗나갔다. 저녁 내내 기다려 한탕 뛴 것이 1만4천원? 처음으로 현금을 만지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찜찜함과 야릇한 허무감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운수 좋은 날’ 세탕을 뛰다

고양시 일산으로 향하는 한 손님을 데려다주기 위해 포텐샤에 오르고 있다.

음식점과 술집을 찾은 이들이 몰고 온 승용차들로 빽빽한 서울 마포구 용강동 거리

연락이 안 와 허탕을 치던 날, 업체홍보전단을 돌리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