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대학 구조조정과 학생 활동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이 재단을 인수한 뒤 언론사 대학평가 지표를 활용한 자체 평가를 강화해왔다. 한겨레 이종찬
신문은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대학 쪽 의견을 반영해 평가 지표를 구성하고, 대학정보 공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업적통합정보(KRI) 등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평가 기준과 방식을 둘러싼 대학들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대학교육의 여건과 질을 한정된 수의 지표만으로 측정·평가할 수 있느냐다. 대학의 특성과 발전목표, 계열별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일 척도를 적용하기 때문에, 평가 결과가 대학 소재지와 규모, 계열 구성 등에 크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평가 항목의 상당 부분이 ‘투입’ 요소 위주로 구성돼 있고, 점차 ‘산출’에 대한 평가를 고려한다지만 ‘과정’에 대한 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매년 평가 지표를 변경함으로써 평가의 일관성을 저해한다거나, 자의적으로 항목별 가중치를 두는 것 역시 학문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단골로 거론된다. 대학에 강요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평가 방식과 기준의 자의성보다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평가의 부정적 효과다. 핵심은 평가가 대학의 서열화와 획일화를 조장한다는 것인데, 실제 언론사 평가에서 상위권을 형성하는 대학의 순위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대학 간 서열 순위와 대체로 일치한다. 대학들이 순위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정된 자원을 가중치가 높고 목표 달성이 비교적 쉬운 몇 가지 지표들을 개선하는 데 집중적으로 쏟아붓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교수 1인당 발표 논문 수, 영어 강의 비율 및 외국인 학생 수, 강의평가 공개율,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한 졸업생 취업률 등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협의회장은 “방학이면 교수들은 밀린 숙제하듯 할당된 논문량을 채워내느라 머리를 싸매고, 입학처 관계자들은 중국과 몽골 등을 돌아다니며 현지 학생 유치 경쟁에 나서는 촌극이 빚어진다”고 씁쓸함을 토로한다. 실제 대부분의 대학들은 2009년부터 의무화된 대학 자체 평가를 언론사 대학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준비 수단으로 활용한다. 평가 전담팀을 두고 1년 내내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상시 동원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2007년부터 자체 평가를 해온 중앙대의 경우, 평가 분야를 <중앙일보> 평가와 동일한 △교육 여건 및 재정 △학생 △연구 △취업 및 만족도 분야로 나누고, 구체적인 평가 지표들도 이 신문사의 것을 대부분 차용해 활용하고 있다. 이 대학 사회과학계열의 한 교수는 “평가 결과는 학과 지원금 규모와 교수들의 승진·정년보장에 연계되기 때문에 교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이라고 말한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언론사 대학평가에 적용되는 지표 관리를 위해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다 보니 대학이 자체적으로 특성에 맞는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단기 성과를 내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이익과 희생을 강요받는 집단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운영 방향이 주식 배당금 확대와 주가 관리라는 단기 목표에 맞춰짐에 따라 나타나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와 여러모로 흡사하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시스템 모두 ‘평가기관’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주주에게 기업의 모든 성과가치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회계·감사·평가의 구실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국내에 각종 회계법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기업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각종 지표가 개발되고, 이 지표에 따라 투자가 유망한 기업들의 성적과 서열이 매겨진다. 서열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언제든 퇴출의 위협에 직면하기 때문에, 평가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무자비한 정리해고가 다반사로 벌어진다. 서동진 계원디자인대 교수(사회학)는 평가와 순위 매기기가 체제의 에토스(습속)가 됐다고까지 말한다. “평가를 통한 순위 매기기 관행은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지 않고, 보건·교육 등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된다.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인건비가 많으면 인원을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부문은 통폐합하면 된다. 그러면 순위는 올라간다. 대학이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고, 경영과 공학 분야를 늘리는 과정은 기업의 구조조정·정리해고와 다르지 않다.” 평가 자체가 ‘시스템 권력’ 이런 체제 아래서 번성하는 것이 ‘랭킹 산업’이다. 대학평가를 처음 시작한 미국 <유에스…>는 평가 결과를 중계 보도하는 전세계 언론 덕분에 인지도를 키웠고,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 진학 가이드북을 펴내 추가 수입을 올린다. 나아가 고등학교 순위, 병원 순위, 자동차 순위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대학 순위가 발표되면 이 잡지의 가판 판매율은 50% 가까이 늘고, 웹사이트 페이지뷰도 20배가량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에스…>의 성공에 고무된 <포브스> <워싱턴먼슬리> <뉴스위크> <포린어페이스> 같은 매체들도 속속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대학은 매체들의 평가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는 고스란히 언론사의 광고수입 증대로 이어진다. 상황은 국내도 마찬가지다. 언론계 안팎에선 대학평가가 매체의 영향력 확대와 광고수입 증대로 이어지는 효과가 뚜렷한 만큼 앞으로도 ‘대학평가 산업’에 진출하려는 언론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부작용이 뚜렷함에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언론사 평가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것을 거부하지 못한다. 평가 자체가 ‘시스템 권력’이 됐기 때문이다. 시스템 권력은 자원과 정보를 독점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집단을 힘으로 지배하는 형태가 아니라,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스탠더드(표준)가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모든 주체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환위기 직후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으로 기업들에 강요된 갖가지 표준과 지표들이 그런 경우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시스템 권력의 작동 역시 실제로는 규칙과 규준을 결정할 힘을 가진 특정 집단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학평가에서 표준을 제정할 권력을 가진 집단은 대기업과 거대언론이다. 2011년 대학 순위를 발표한 <중앙일보>의 지난주 지면을 살펴보자. 종합 순위가 발표된 9월26일치 이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고려·성균관대 공동 5위… 중앙대는 첫 톱10 올라’, 이어지는 4면의 머리기사 제목은 ‘투자의 힘… 성균관·중앙대 교육혁신 모델로’다. 알려진 대로 성균관대는 삼성이, 중앙대는 두산이 운영하는 ‘재벌 대학’이다. 삼성 계열사로 출발해 모기업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성장한 ‘재벌 신문’답게, 기사는 두 대학의 약진을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성과로 소개했다. 사흘 뒤엔 사설까지 동원됐다. ‘대학 총장은 CEO다’라는 사설에서 “글로벌 시대 대학 총장은 기업 최고경영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성균관대 총장의 소신을 언급한 뒤 “대학의 변화와 혁신이 시급한 지금이야말로 학자·교육자를 뛰어넘는 ‘CEO 총장’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고 글을 맺었다. 이를 두고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대학더러 ‘기업이 되라’고 윽박지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속물의 전형에 근접한 오늘날의 대학 대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희비극은 ‘스놉’(속물)에 대한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의 분석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볼 때 속물은 “타자와의 인정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존재”다. 속물의 본질은 “외적 태도의 천박성이 아니라 그가 종속돼 있는 욕망의 메커니즘”에서 찾아져야 하는데, 핵심은 그가 “과도하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한국 대학은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속물의 전형에 근접해 있다. 강박적으로 타자(기업·시장)의 욕망을 욕망하면서도 그 욕망의 실체에 대해선 어떤 자의식도 갖지 못한 탓이다. 과거 속물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놓고 ‘속물이 되라’고 명령하는 시대다. 시중에 유통되는 무수한 자기계발서가 그렇고, 언론사가 대학에 제공하는 컨설팅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속물주의’가 주체의 형식을 주조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세상, 우리는 지금 속물지배(스노보크라시) 시대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11년 대학평가 결과를 공개한 9월26일치 <중앙일보> 지면. 대기업이 재단을 운영하는 대학들이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을 집중부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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