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어머니 대지와 함께 죽겠다”

369
등록 : 2001-07-25 00:00 수정 :

크게 작게

미 석유개발 사업으로 생존권 위협받는 콜롬비아 우와족의 몸부림을 보았는가

사진/ 우와족의 경작지 모습. 우와족은 4년을 경작한 뒤에는 12~15년 정도 경작을 멈춘다. 이같은 생태친화적 농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들은 1년에 평균 3개월 정도 단신을 한다.
“이 투쟁을 포기하지 말라”, “다시 일어나라”, “원주민을 보호하라”. 지난 7월19일 서방선진 7개국 및 러시아(G8)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제노바에 모인 수만명의 ‘반세계화’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이렇게 외쳤다.

그들 앞에 설치된 무대 중앙에는 온몸이 족쇄로 묶인 청년 12명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고통스러워하던 청년들은 원주민의 자유를 선언한 직후 모든 족쇄를 벗어던졌다. 콜롬비아 원주민들의 생존투쟁을 형상화한 이 퍼포먼스는 반세계화 시위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 모두는 올해 석유 등 천연자원개발에 반대해 저항하다 살해당한 콜롬비아 인디언 원주민 부족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원주민들 가운데 우와족은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석유시추 계획에 반대하고 있어 전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증폭돼왔다. ‘한국청년생태주의자’(KEY)와 대전녹색연합을 중심으로 한 대전지역 우와족 연구모임은 시위와 기금모금 등을 통해 우와족문제를 알려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청년생태주의자 소속 회원들은 콜롬비아대사관을 상대로 우와족 영토에서의 석유시추를 중단하라는 시위도 벌일 계획이다. 이 문제가 한국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


필자가 우와족을 알게 된 건 1998년 <녹색평론>에서 이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콜롬비아 원주민 부족 6천여명 전원이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이뤄지는 미국 석유개발사업에 반대해 집단자살을 할지 모른다는 얘기는 눈물과 함께 가슴에 박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올해 초 현장 활동가의 구실을 잠시 접고 유학생활을 하던 필자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왔다. 미국 환경단체의 소개로 이탈리아 녹색당 대표단들과 함께 우와족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필자가 그곳에 간다면 아시아인으로서 처음이 될 터였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녹색당 당수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가 포함된 대표단은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마주한 채 안데스 산맥 한자락에 자리한 2만여km2 크기의 우와족 영토로 접어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새파란 하늘, 생명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숲과 산들, 그리고 신성한 코바리아강….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영토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약과 석유시추, 내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었다. 외부인들의 접근이 없었던 덕분에 우와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삶의 철학인 ‘평화’와 ‘연대’, ‘모든 것에 대한 헌신’을 지키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들의 평화는 1985년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탈 페트롤륨의 석유시추지역 답사가 이뤄진 뒤부터 순식간에 깨지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군대 수천명이 상주하자 게릴라들과의 내전이 시작됐다. 석유개발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최루탄으로 인해 우와족 아이들이 숨지고 미국 환경운동가 3명이 게릴라들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아라우카주 비행장에 내린 직후부터 맞닥뜨리기 시작한 군사시설과 무장군인들의 모습은 이곳의 긴박한 상황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도로 곳곳에 보이는 병사들은 정규군인지 게릴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35년 동안 내전을 겪고 있는 마약과 폭력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첫쨋날 정글과 관목숲을 헤쳐 이들 영토 깊숙이 들어온 우리는 이튿날 우와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월하야’(종족 중에서 가장 순결한 자)를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다.

길은 진흙수렁의 연속이었다. 관목숲과 깊은 정글을 뚫고 가다가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 곳에 다다르면 눈앞에 밀림의 바다가 펼쳐지곤 했다. 아침에 드리워진 안개는 이곳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길 옆으로는 거대한 코바리아강이 흐르고 있고, 걸어가는 길을 이름모를 나비들이 안내했다. 정글은 나무와 풀과 벌레와 나비의 날갯짓 이외에는 온통 ‘고요’뿐이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이곳 정글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와족 의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진/ 우와족 영토를 찾은 대표단의 모습. 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3번째가 필자. 가운데 맨 왼쪽이 이탈리아 녹색당 당수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

바나나잎을 말아 만든 즉석 물통으로 샘물을 들이켜면서 동행한 우와족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에바리스토의 말에 귀기울였다. “30년 전 콜롬비아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정한 이곳에 대규모 도로를 건설하려 했지요. 우리는 어머니인 대지를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요. 이제 다시 석유회사가 들어와서 우리 땅을, 우리 어머니를 죽이려 하는군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어머니를 죽이면, 자신도 죽는다는 간단한 원리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요.”

산 정상에 이르렀지만 월하야를 당장 만날 수는 없었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3일 단식과 명상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던 우리는 처소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그와 만나기로 했다. 그날밤 그들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잠을 청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음날 아침 자그마한 체구의 월하야를 만났다. 먼곳까지 와준 것과 우와족의 투쟁을 지원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바라본 그의 눈은 탐욕으로 사라져가는 지구의 생명과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의 모든 영적 에너지가 당신들과 더불어, 거대한 자연과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당신들의 ‘의지’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을 내려와 그들이 베푸는 의식을 경험했다. 필자는 그들이 사는 집 앞에 앉아 있었고, 지도자 한명은 일정한 리듬이 밴 주문 같은 언어를 1시간 동안 읊었다. 중간중간 소라 모양의 악기소리가 끼어들었다.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까닭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의식의 마지막 절차는 그들의 전통술인 ‘치자’를 마시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는 순간 우와족이 된다는 사실은 나중에 통역자한테서 들었다. 의식을 주재한 지도자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당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있는 짐들을 벗고 스스로 정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그뒤 필자는 어려움과 고통 속을 함께하려는 이들의 진심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우와족으로서의 ‘지혜’가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우와족 영토 밖 아라우카지역의 농민·노동자·학생단체 관계자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는 이 자리에서 “부족 전체의 목숨을 내놓은 이 투쟁은 반세계화 투쟁의 상징”이라며 “인간의 존엄성,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하며 질주해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주변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온 인류의 지혜를 보호하고 연대를 통해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콜롬비아 정부가 강제로 빼앗은 쿠바라지역의 옛 우와족 영토 안에 있는 다리. 1999년 이 다리 위에서 미국 환경운동가 3명이 게릴라들한테 살해됐다. 다리 너머는 옥시덴탈의 시추지역이다.
1999년과 2000년 우와족이 옥시덴탈 페트롤륨의 석유시추지역에서 평화시위를 할 당시 콜롬비아 군대가 쏜 최루탄에 우와족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아라우카주 노동자들과 농민, 학생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이며 우와족의 투쟁을 지원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농민 대표는 “우와족과 같은 공동체들이 파괴되는 것과 우리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것은 결국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마약소탕작전인 ‘플랜 콜롬비아’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어른들과 아이들, 농작물, 숲의 건강과 생명이 무너지고 있어요. ‘플랜 콜롬비아’에 따라 훈련받은 군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좌익게릴라들과 날마다 전쟁을 벌입니다. 하루에 수십, 수백명씩 죽어나가죠. 민간인들도 우익게릴라에 끌려가서 죄없이 죽어갑니다.” 콜롬비아에서 우익게릴라인 ‘파라밀리터리’의 민간인 학살은 악명높다. 이들은 매년 2만여명의 민간인 피해자 가운데 80%를 살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우와족 거주지역 전체가 보이는 주스칼지역의 모습. 가운데로 흐르는 강이 코바리아강이다.
전세계 환경운동가들의 지적처럼 다국적기업의 석유개발과 플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내전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이다. 콜롬비아 환경운동가인 악셀 카스틸료는 “플랜 콜롬비아로 지원받아 훈련된 군인들은 다국적기업의 석유개발에 저항하는 원주민 공동체들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며 “희생되는 것은 콜롬비아의 다양한 생태계를 비롯한 원주민과 농민들”이라고 말한다. 민간인의 희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내전 희생양인 ‘난민’들이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인구의 10%가 내전난민이다. 우와족 영토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보고타에 돌아왔을 때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전, 그리고 난민들

사진/ 10대 우와족 소녀. 우와족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떡잎이 큰 식물을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풍습을 지킨다.

보고타 시내 중심가의 적십자사 건물은 난민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하얀색이 더러워져 회색빛이 된 앰뷸런스 주위로 난민 어린이들이 몰려들었다. 카메라를 든 필자에게 아이들이 돈을 달라며 구걸했다. 3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에 12명이 들어가 있었다. 120가구, 400여명의 주민이 한개의 수도꼭지에 기대 살고 있었다. 그나마 보고타 정부가 수도와 전기를 곧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난민들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구걸로 생계를 겨우 잇고 아이들은 병에 걸리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도시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지난해 정부의 강제철거에 맞서 화염병을 들고 경찰과 일대 격전을 벌였다. 적십자사 건물 주위로 피자헛, 맥도널드, 백화점의 행렬이 아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7월16일 필자는 이탈리아 녹색당 국제연대 담당자 쥐세페 드 마르조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우리의 모임이 연기됐다. 옥시덴탈의 석유시추 지역에 콜롬비아 군인 1만5천명이 투입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잔인하기로 유명한 우익게릴라가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오는 9월 콜롬비아 북쪽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모임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있는 모든 원주민의 대표들, 전세계 환경운동가들, 콜롬비아 내 84개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들이 모여 옥시덴탈의 석유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을 선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지사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일단 우리의 계획은 연기된 상태다.

“당신에게 지구는 짓밟히는 길가의 꽃”

사진/ 지난 10년동안 우와족 투쟁을 전면에서 이끌어온 정치적 지도자 로베르트 코바리아. 그는 지난 1998년 환경운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받았다.

우와족의 정치적 지도자 로베르토 코바리아는 1999년 영국 <가디언>을 통해 우와족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그의 말은 지금 제노바에 모인 서방국 정상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우리와 당신들이 같은 점은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졌고 지구에서 양육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신들과 우리의 생각은 천지 차이다. 지구는 꽃이다. 우와족은 마치 벌새가 꽃을 주의깊게 사용하는 것처럼 지구를 사용한다. 반면 당신들에게 지구는 돼지가 짓밟는 길가의 꽃과 같다. 우와사람에게 지구는 신성한 존재이지만 당신들에게는 지구는 짓밟을 수 있는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당신들에게 돈은 수단이요, 목적이요, 언어다. 그것이 당신들의 심장을 병들게 했다. 이제 당신들의 병은 물에, 공기에, 숲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심장이 병들어가는 과정을 당신들은 이전에는 문명화과정이라 불렀고 지금은 진보라고 부른다.”

(우와족의 투쟁에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옥시덴탈과 콜롬비아 정부에 항의서한 보내기, 우와족의 기도에 동참하기 등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Ltaehwa@hanimail.com)

이태화/ 녹색연합 국제연대부장 Ltaehwa@hanimail.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