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병역법 88조 1항’ 등에 대한 결정이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이날 헌법재판관들의 합헌 결정으로 청년들은 최대 7천~8천 년 동안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한겨레21 김경호
해주기가 싫어서 그랬을 뿐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에 발표된 이 안은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금방 뒤집히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사회복무제도가 실시되었다면 더 이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2004년에 결정을 내렸던 헌재가 7년이 지나 동일 조항에 대해 다시 결정을 내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004년 당시 헌재와 대법원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권리로서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병역거부를 선언한 젊은이들을 무조건 전과자로 만드는 일을 피하는 방안을 국회에서 찾아볼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국회는 손을 놓아버렸고, 행정부에서 뒤늦게 해결 방안을 마련했지만, 정권 교체로 새로이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이를 뒤엎었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물로 탄생했다. 유신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은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권을 빼앗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헌법위원회에 주어버렸다. 민주화 이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때 위헌법률심판권을 대법원에 돌려주지 않고 따로 헌법재판소를 만든 것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상호 견제와 협력을 해가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려고 애쓰라는 뜻이었다. 2011년의 헌재 결정이 절망스러운 것은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파괴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헌법소원을 내고, 법관은 현행 법률에 위헌 소지가 있으면 위헌심판을 청구한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나름의 고민 끝에 입법권고를 붙여서 사회로 돌려보낸 결정은 입법부에서 방기되고, 행정부에서 해결책이 나올 듯하다가 정권 교체로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위헌법률심판이 다시 제기되어 병역거부자 처벌 문제를 헌법재판소에서 재검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책임한 뺑뺑이를 도는 사이에 감옥에 간 젊은이가 1년 평균 700여 명씩 근 5천 명이 된다. 병역거부자들에게 선고되는 형이 징역 1년6개월이니, 2004년 헌재 결정에서 2011년의 헌재 결정까지 이들이 산 징역을 합치면 8천 년이 된다. 입법부에서 잘 해결해보라고 내보낸 사안이 수천 명을 감옥에만 보내고 다시 헌법재판소로 돌아왔다면 무슨 조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7년 만에 돌아온 이 문제에 대해 2004년에 비해서도 훨씬 후퇴한 결정을 내보냈다. 이제 국민은 만약 헌법재판소가 입법권고를 한 사안이 개무시당하면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2004년보다 더 강력하게 입법권고를 하는 수준이어도 시원찮을 판에 헌법재판소는 2004년보다 더 후퇴한 입법권고조차 사라져버린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선한 젊은이들이 살아야 했던 징역도 모자라 짧으면 한 3천 년, 길면 한 7천~8천 년어치 징역을 더 살라는 것이 이번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특유한 안보 상황’을 들어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수 없으며, 대체복무제도 도입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급증해 병력자원 손실이 예상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 앞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실시한 독일·대만 등의 경험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와 병무청에서 국방력에 지장을 주지 않고 병역거부자의 급증을 막는 현실적 방안을 검토해 사회복무안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것에 다름없다. 해줄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주기 싫어서 그랬을 뿐이다. 아, 안보재판소여…. 국가기밀에 붙여야할 결정 헌법재판소는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엔 인권위원회가 한국도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근거해 여러 차례에 걸쳐 권고한 사실과 관련해, 그런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부터 유엔의 권고를 개무시하고 있다. 인권 옹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이런 민망한 결정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 국가기밀에 부쳐 외국에 알려지는 것을 절대 막아야 할 것이다. 전세계 병역거부자의 90% 이상이 한국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