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덕목
등록 : 2001-07-25 00:00 수정 :
아침은 햄버거로, 잠은 의원회관 소파에서.
지난 7월15일 방영된 한국방송 일요스페셜 ‘입법스타가 된 워싱턴의 홈리스 의원들’은 검약과 치열한 입법 경쟁, 민생 정치를 지향하는 미국 의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의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에 힘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봉사정신이겠지요. 의사당에서 기숙하는 ‘홈리스’ 의원은 하원의 10%인 4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집단 외유, 집회·농성 같은 엉뚱한 데 힘을 쓰는 우리 금배지들과 비교됩니다. 여의도에도 민생과 씨름하는 의원, 보좌진들이 적지 않게 있겠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봉사정신(service)과 함께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려(prudence), 용기(courage)입니다. 정치는 가치의 배분, 갈등의 조정이므로 마땅히 사려깊어야 하고, 기존의 법과 관행을 깨야 하므로 대단한 용기도 요구됩니다.
언론 세무조사는 정치판에 소신·관망·정략·편의주의·기회주의의 복합파장을 일으키며, 사려깊고 용기있는 정치인은 있는가,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영웅은 난세에 나고 장수는 큰 싸움에서 나오는 법이니까요.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차세대 지도자를 자처하는 여야 중진들을 다시 보게끔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이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입니다. 그는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비리를 비호하는 이회창 총재는 타락한 주류이며 <조선일보>는 이 총재의 기관지”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언론에 찍혀서 좋을 게 없는 정치현실에서 소신을 말하는 그의 용기는 평가받을 만합니다.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은 세무조사의 당위를 역설하면서도 언론사 사주가 구속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타협의 미학이라기보다는 강자에 대한 편의적 태도로 여겨집니다.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사주문제는 법과 원칙에 의해 처리돼야 이견을 최소화하고 신뢰라는 사회적인 기초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받았습니다. 그는 여러 자리에서 법과 원칙으로 차분한 논리를 펴 사려깊다는 인상을 심었습니다.
반면 국회 부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세무조사가 김정일 답방을 위한 사전정지작업 의도라는 색깔론을 제기했다가 발을 빼 듬직한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분별력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내년에 지방자치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잇따라 있습니다. 누가 선량이 돼야 할까요? 어떤 레벨이든 봉사, 사려, 용기 세 가지 덕목을 다 갖춘 인물이면 그만이겠지요. 셋을 다 갖춘 인물이 없으면 둘 가진 사람을, 그마저 없으면 하나의 덕목이라도 확실한 사람에게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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