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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우영 <삼국지>, 원본으로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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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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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패러디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딴지그룹’(www.ddanzi.com)도 다른 인터넷 업체들처럼 많은 사업을 벌인다. 콘텐츠만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유명 뮤지션을 불러 콘서트도 열었고, 재미있게 디자인한 티셔츠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결과는? 큰돈은 못 벌었고, 엄격히 말하면 신통찮았다. 그런데 최근 딴지가 엄청나진 않아도 괜찮게 성공시킨 사업이 하나 있다. 바로 20여년 전 인기만화인 고우영씨의 <삼국지>를 무삭제 원본 CD로 만들어 판 것이다. 이게 뜻밖에 ‘효자’가 됐다. 지난 6월 말 출시해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8천여개가 팔려나간 것이다.

이 CD책이 나오게 된 것은 한 신참 사원의 굽히지 않는 고집 때문이었다. ‘너부리’라는 필명으로 ‘딴지일보’ 기자로 활동중인 김용석(28)씨가 그 주인공. 어려서부터 고우영 <삼국지>를 보고 자란 ‘고우영 <삼국지> 마니아’ 김씨는 올해 초 ‘딴지일보’에 입사해 어린 시절의 우상 고우영씨를 인터뷰하게 됐다. 김씨는 고우영씨에게 “삼국지가 원래 신문연재 당시 그림과 달리 많이 훼손된 채 책으로 나와 안타까웠다”고 말했고, 작가 고씨에게서도 그게 무척이나 속상했다는 말을 들었다. 돌아온 김씨는 자기가 보고 싶어했던 그 ‘원본’을 다시 복원하는 사업을 회사에 제안했고, 반신반의하는 회사에 끝까지 밀어붙여 일을 성사시켰다.

고우영판 <삼국지>는 80년대 초반 연재했던 원본 그대로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심의기구로부터 철퇴를 맞고 100여쪽 분량이 수정돼 다시 출판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비운의 작품. 문제는 삭제, 수정된 장면이 성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 야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은 부분들인데다가 수정 상태가 너무나 조잡하고 무성의해 작품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골수 고우영 팬들로부터 출판사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80년대가 워낙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던 엄혹한 시절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꿈을 심어줬던 우상에게 작은 헌사를 바친 것일 뿐인데, 저와 비슷하게 느꼈던 분들이 예상 외로 많이 호응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단순히 ‘옛날 것’, 또는 ‘만화’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좋은 작품들이 세월을 뛰어넘어 팬들 곁에 존재하고 평가받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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