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씨는 지난 6월11일 찾아온 이들에게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이 아니라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한겨레21 김경호
벌써 20년이 흘렀다. 1991년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이 자살로 몰아간 그 죽음의 진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6월12일, 고 박창수 위원장을 키운 아버지 황지익 선생이 크레인 아래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황 선생은 “진숙이가 우리 창수랑 (입사) 동기잖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백발의 노인은 “아까 진숙이와 통화했는데, 절대 딴마음 먹지 말라고 했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흔다섯의 노인이 1월에도, 5월에도 이곳에 왔었단다. 김진숙씨가 내려오면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고생했다. 너 같은 사람 없다. 네가 대한민국 노동자 모두 살렸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의지로 불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그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희망의 버스에 탄 진용주씨는 김진숙씨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3년 10월 김주익 열사 장례식과 11월 노동자대회에서 김진숙씨가 했던 추도사를 들어보면 그 의미가, 전율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희망의 버스는 김진숙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하늘의 김진숙만 쳐다보는 이들에게 하늘의 김진숙이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다림이의 아비 고지훈·김갑열을 기억해주십시오. 잘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최성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암으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크레인 아래를 눈물바다로 만든 85호 여인의 연설이 끝나고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85호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비고해자이면서도 현장을 지키는 그의 첫마디였다. 스무 살에 한진에 들어와 18년을 일했다는 그는 회사가 컨테이너로 공장 출입을 봉쇄한 것을 두고 “(노동자가) 옥쇄를 한 것이 아니라 옥쇄를 당했다”면서도 “잘 끝나겠죠”라고 낙관했다. 그의 말을 듣자, 정말로 정리해고가 철회될까, 멀리서 비관했던 ‘모르는 자’의 불안이 ‘내부자의 따뜻한 확신’에 녹았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몸뻬 바지를 입은 ‘날라리 외부세력’이 부르는 ‘뽕짝 메들리’가 들렸다. “내가 내가 못 잊을 사람아 진숙아~ 진숙아 내가 정말 사랑한 진숙아~ 내 어깨 위에 날개가 없어 널 찾아 못 간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지상의 승객은 하늘의 진숙씨와 함께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를 목놓아 불렀다. 아침이 밝았고, 오후가 되었다. ‘승객들’을 보내는 ‘크레인’의 인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 강병재 동지가 계십니다. 기억나십니까. 15만4천 볼트 송전탑에서 홀로 88일을 견뎠던 분입니다. …그 강병재 동지가 마침내 살아서 땅을 딛고 여기를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날라리들과 어울려 춤을 추던 강병재 동지를 봤습니다. 그 앞에서 함께 어울려 춤추던 한진지회 박성호 동지도 또한 봤습니다. 박창수 위원장 시절 상집간부를 했고 해고됐고 징역 세 번 갔고, 김주익·곽재규의 목숨값으로 15년 만에 복직됐다 이번에 다시 해고됐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날라리들과 어울려 춤추는 모습을 보며 저는 벅찼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제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을 봤습니다. …살아 내려가 현장에서 꼭 다시 뵙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김진숙씨는 크레인에 오르기 직전에 남긴 글에서 소원이 있다고 했다. “주익씨가 못해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한진중공업을 떠나면서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한 계단 한 계단을 한 사람씩 책임지자”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그리하여 “15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 내려가는 연습을 해온 대로 제 발로 저 계단을 내려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무나 애달프고 너무나 그리워서 차마 보고 싶단 말도 쉽게 못했던 사람들을 얼싸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끝내 목이 메는 52살 여성 노동자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오작교가 되자고 다짐했다. 어느 희망의 버스 승객이 썼다. 희망을 주러 갔다가 얻고 갑니다.” 다음날 ‘진숙씨’의 트위터에는 “버스는 갔지만 내려놓고 간 희망이 자라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이 올라왔다. 미안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의 고사리손들이 울며 떠나는 이들의 손에 건넨 양말을 신고 다시 애타게 진숙씨를 찾아서, 아니 성호씨·지훈씨·갑열씨·성철씨·상철씨·형백씨를 찾아서 버스에 오를 것이다. 부산=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