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연학교 들어간 골초의 니코틴 탈출기… 금욕적 ‘투병’으로 연기의 유혹 떨쳐
7월8일 오후 2시35분, 건물 앞에서 나는 ‘마지막’ 담배를 물었다. 절반쯤 피웠을까, 몇 모금은 더 피울 수 있을 만큼 남았지만 나는 과감하게 담배를 꺼버렸다. 그리고 라이터를 담뱃갑에 넣었다. 함께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라이터가 담뱃갑 속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아직 담배 한 개비가 남아 있었다. 순간 ‘한대만 더 피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끊기로 하자마자 1초 만에 다시 아쉬워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고, 생담배를 그렇게 한 개비 정도 버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했다. 눈을 딱 감고 라이터를 넣어 사정없이 담뱃갑을 구긴 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갔다. 5일 금연학교. 서울위생병원이 운영하는 이 학교는 병원에서 합숙을 하며 담배를 끊는 국내 유일의 ‘합숙’ 금연학교다. 니코틴 없이 생존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이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담뱃갑·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합숙소로
애초 ‘기자가 뛰어든 세상’의 한 아이템으로 금연학교 체험이 정해졌을 때 해당자는 내가 아니라 박병수 기자였다. 그런데 박 기자는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담배를 끊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신문가판대 체험을 택했다. 그러잖아도 담배를 끊어볼까 하던 내게는 괜찮은 기회였다. 가서 합숙만 하면 기사도 저절로 나오고, 잘만 된다면 담배도 끊을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 위생병원 금연학교를 찾아갔다. 금연학교의 실질적 교장인 최방원 강사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금연하시는 것이 현명한 겁니다. 여기를 마친 분들은 90%가 3개월 이상 끊습니다. 한번 입원해서 도전해보세요.” ‘입원’이란 용어가 시작부터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내 생각에도 나 같은 골초는 강제적으로 담배로부터 격리되지 않고는 담배를 끊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입학원서를 쓰고 입원하기로 했다. 나는 잠잘 때와 비행기 탔을 때를 빼면 10시간 넘게 담배를 피우지 않은 적이 없는 골초다. 하루에 한갑 반 정도를 피운다. 금연 시도는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담배를 진짜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미세한 입자가 만들어내는 파란 생담배 연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새하얀 연기로 바뀌는 그 놀라운 변화, 연기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모습, 담배가 점점 타들어가 재로 변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재미. 난 이 모든 걸 좋아한다. 담배맛?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담배를 사랑하는 이유다. “두 손가락에 끼어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르켰다.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김용호 ‘담배’)는 시는 꼭 내 이야기인 듯싶었다. 힘들고 괴로울 때, 담배는 어찌보면 가족보다 더 요긴한 동반자였다. 처음 담배를 배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고3 시절에 인이 박여 16년을 담배와 함께 살았다. 남들은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화장실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는 골초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다. 아침에 눈 뜨면 잠 깨려고 한대 피우고, 밥 먹고나면 소화시키려고 한대 피우고, 출근할 때는 출근하니까 피우고, 회사에 와서는 자리에 앉았으니까 피우고…. 하루 한갑을 넘기지 않던 흡연량이 늘어난 것은 신문사에 입사한 뒤부터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담배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다. 우리 <한겨레21>만 해도 기자 20여명 가운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겨우 여섯명이다. 16년 동안 맺어온 담배와의 인연
당연히 아내는 늘 담배를 끊으라고 졸라댔다. 처음에는 “결혼하면 끊을게” 대답하다 “서른살 되면 끊을게”, “아기 낳으면 끊을게”를 거쳐 요즘에는 “그냥 때되면 끊기로 하고 일단은 조금씩 줄일게”로 버티고 있다. 그런 내가 금연학교에 들어간다니까 아내는 “퇴원하자마자 담배를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며 “정말 당신이 담배를 끊으면 존댓말을 쓰겠다”고 공약까지 내놨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금연은 정말 힘든 일이다. 금연 시도를 해보지 않은 나도 그 어려움을 잘 안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의 경우에는 ‘마지막’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세상에서 담배 끊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다. 사람들은 금연을 일생 동안 수십, 수백번도 하니까. 애연가로 유명한 린위탕(林語堂)은 3주간의 금연 끝에 “양심적인 자아에 대하여 비겁한 짓을 하고 또 정신을 앙양하는 무엇인가를 고의적으로 완강히 거절한 짓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다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과연 내가 금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도 첫 번째 시도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걱정스러워졌다. 금연은 정말 독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던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금연학교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기사가 끝나는 것 아닐까. 그러는 사이 입소 날짜는 다가왔고, 그때까지 나는 원없이 담패를 피워댔다.
마지막 담배를 피운 뒤, 병원 본관 옆에 금연학교 건물로 따로 마련된 건강교육관에 들어갔다. 나와 함께 합숙할 ‘입학동기’ 대부분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개중에는 나처럼 건물 앞에서 마지막 담배를 피웠던 이들도 있었고, 아침부터 담배를 끊고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이곳 위생병원 금연학교는 지난 1971년 시작해 올해로 꼭 30년째다. 입원 교육은 지난 96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함께 합숙할 우리 기수는 모두 25명. 이 가운데 여자는 4명이었다. 연령층은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는데 최고령자가 63살, 최연소자가 30살이었다. 서른세살인 나는 세 번째로 어린 참가자였다.
애절한 사연을 간직하고 참가한 25명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40년째 담배를 피웠다는 쉰살의 개인사업가, 9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1년 전에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는 대학교수,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학생들이 와서 “담배 끊으세요”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속썩이는 남편 때문에 배운 담배가 낙이 됐다는 40대 주부, 산후우울증 때문에 담배를 배워 하루 한갑 이상을 피운다는 30대 주부, 이곳 금연학교에서 담배를 끊은 아버지가 대신 등록을 해놓고서는 입소하지 않으면 인연을 끊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다는 대학교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바람에 왔다는 신혼의 회사원….
신기했던 점은 건강 이상 판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끊으러 온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다들 대단한 골초들로 이미 수차례, 수십 차례 혼자 금연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온 경우였다. 일상생활을 잠시나마 전폐하고 오로지 담배 끊기 위해 입원하는 만큼 각오들이 대단했다. 이번 입원이 처음이 아닌 사람도 네명이나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도 여러 명이었다.
상견례를 마치자 강사는 우리에게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담배나 라이터를 내놓으라고 했다. 일부 사람들이 머뭇거리다가 담배를 강사에게 건넸다. 그 다음 우리는 간단한 교재를 받았다. 매일 금연항목을 지켰는지를 점검하는 일일점검표에는 큼직하게 ‘폐인되어 후회말고 건강할 때 금연하자’라고 적혀 있었다. 담배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폐인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담배를 끊게 만들려는 주최쪽의 의도겠거니 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보는 그림도 받았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은 사람의 건강한 폐와 30년 동안 담배를 매일 두갑씩 피우다 폐암으로 숨진 사람의 시커멓게 망가진 폐를 비교해놓은 사진이었다. 입을 대고 물을 빨아 마시는 물통도 하나씩 지급됐다. 학교쪽에서는 자나깨나 이 물통을 들고 다니면서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물을 마시라고 했다. 체내에 있는 니코틴을 배출하는 데는 물이 최고라는 것이다. 물 마시기와 함께 심호흡도 담배 생각을 떨치는 좋은 방법이므로 틈나는 대로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병실에 짐을 옮겨놓은 뒤 우리는 초등학생처럼 어깨에 물통을 하나씩 메고 강의실에 모였다. 기본 신체검사를 한 뒤 곧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주로 비디오를 보거나 전문가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강사들은 금단 증상에는 불쾌감, 우울한 느낌, 초조감, 짜증, 식욕부족, 졸음 등이 있는데 점차 심해지다가 사흘째에 최고조에 오른 뒤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커피, 탄산음료, 술 등은 금단현상을 부추기므로 절대 접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들었다.
“담배가 없으니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무척 이른 오후 5시였다. 이곳에서는 담배를 끊는 것이 기본적으로 생활습관의 개혁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자기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담배 한 가지만 없애겠다는 손쉬운 생각으로는 절대 금연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원 기간 동안에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7시 아침식사를 하고, 9시부터 수업 시작해 오후 5시에 저녁식사, 다시 오후 9시까지 수업, 그리고 오후 9시부터 무조건 취침을 해야 했다. 식사 역시 맵고 짠 음식, 육류, 가공식품 등이 담배를 더 피우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채식 반찬과 현미밥만 나왔다. 내가 첫날 깨달은 사실은 이곳이 ‘금연학교’가 아니라 ‘금욕학교’라는 점이었다.
첫 저녁식사를 먹고 나서 우리는 삼삼오오 산책을 했다. 평소 늘 담배를 피우던 시간이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 담배생각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식후 흡연을 못하니 미치겠다”고 입을 모았다. 아까 버린 담배가 남아 있는지 혼자서 몰래 쓰레기통에 갔다왔다는 이도 있었다. 담배가 없으니 시간도 잘 흐르지 않았다. 1시간 휴식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어 다들 멀뚱멀뚱 지겨워했다.
너무나 이른 9시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의외로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정확하게 둘쨋날 새벽 6시였다. 평생 않던 아침 체조를 하고 채식 식사를 한 뒤 수업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배지를 하나씩 줬다. “나는 금연을 선택했다”고 적힌 배지였는데, 금연 만 하루가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 들으면 겨우 하루 금연해놓고 별 웃기지도 않는다고 비웃겠지만, 골초들한테 하루는 엄청 긴 시간이다. 실제 혼자서 금연을 할 경우 가장 많이 실패하는 기간이 바로 첫 24시간 이내라고 한다. 그래서 의지를 북돋우라고 배지를 준 것이라고 강사들이 설명했다.
둘쨋날부터 본격적으로 금단 증상이 시작됐다. 내 경우에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계속됐다. 잠이 쏟아져 한 5분쯤 자면 다시 괜찮아지고, 또 갑자기 졸음이 찾아오는 것이 되풀이됐다. 다른 이들도 모두 졸음에 시달렸다. 오후부터는 학교에서 다시마 썬 것과 감초를 교실에 비치했다. 사람들은 웃도리 앞주머니에 감초나 다시마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담배 피우듯 꺼내서 먹었다. 오후부터는 또다른 금단현상인 두통이 추가됐다. 그러나 밤에는 정말 신기하게 일찍 잠이 들었고,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금단현상, 쏟아지는 졸음에 두통까지
셋쨋날에는 소풍을 나갔다. 불암산 중턱에 올라가 우리는 소나무 한 그루씩 붙잡고 가슴에 들어 있던 담배에 대한 추억을 버리는 ‘의식’을 치렀다. 강사는 앞으로는 농담으로라도 담배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행여 장난으로라도 자꾸 담배이야기를 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끼리 모였을 때면 담배이야기말고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다들 “이렇게 오래 담배 안 피우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는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집에 전화를 해서 다시마를 사놓아라, 라이터 버려라 하고 의식적으로 다짐을 하기도 했다. 3일째가 가장 힘들다는 금단현상은 예상외로 버틸 만했다. 동료들도 “서로 함께 의지하니까 버틸 만하다”며 아마 바깥에서 혼자 이렇게 참고 있으면 벌써 실패했을 것이니 이번에 반드시 담배를 끊자고 의지를 다졌다.
4일째 되는 날은 금단현상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잠도 덜 오고, 머리도 덜 아팠다. 내일이면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평상시 생활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다들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너무나 금연과는 거리가 먼 회사 분위기를 떠올려봤다. 골초들 사이에 포위돼 있는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차피 기사 쓰러 들어온 것, 내가 완전히 금연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니까 다시 피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너무 부담갖지 말고 하루 하루 금연을 이어나가자고 결심했다.
마지막 밤이 되자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이 9시 수업을 마치자마자 “사회복귀 적응훈련을 해야 한다”며 호프집으로 무리지어 나갔고, 나도 취재를 핑계삼아 따라갔다. 겨우 나흘 만에 만나는 ‘사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며칠 동안 못 먹었던 육류(통닭)도 섭취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 담배를 피우는 이는 없었다. 다들 담배 안 피우며 술먹기는 처음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술. 그날 밤, 두명의 동료가 결국 술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
담배를 끊은 지 닷새가 되는 12일, 그동안 배운 금연 수칙을 총정리한 수업을 마친 뒤 우리는 드디어 금연학교를 졸업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나누며 앞으로 매달 한번씩 전화하거나 모여서 금연 여부를 확인하기로 하고 동기회장과 총무까지 뽑았다. 졸업식은 상당히 공식적이고 정통적으로 진행됐다. 의지를 더욱 다지기 위해서였다. 금연학교 교장인 박정식 심장질환 전문의가 수료자 모두에게 수료증을 나눠줬다. “위의 사람은 건강을 위하여 소정의 금연교육 과정을 마치고 금연하기로 선택하였으므로 이 증서를 수여함.” 이번이 두 번째 졸업인 40대 아저씨는 부인과 아들이 건네는 꽃다발을 받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맹세했다.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며 금연할 것을 권했다던 신혼 회사원의 부인도 찾아와 남편에게 박수를 쳤다.
담배없는 생활이 마음에 들지만…
졸업식을 끝내고 나는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 동료들은 “정말 끊기는 한 거냐”며 물어봤고, 나는 자신있게 “한대도 안 피웠다”고 대답했다. 유치하게 한대 피워봐라는 식의 유혹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한달 만이라도 금연을 하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며 반가워했다. 그날 밤, 나는 우습게도 기사를 쓰다가 무의식중에 담배를 피우게 되는 꿈을 꿨다. 정말 금연을 하려면 담배를 잊어야 한다는데, 닷새 만에 담배를 잊기는 역시 불가능한 것이었나보다.
금연 꼭 엿새째인 지금 나는 기사를 마무리하는 바로 이 순간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 선택이 이어질지 자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담배없는 생활도 해볼 만하고, 담배없는 지금 생활이 더 마음에 든다는 점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지금으로선 다음주에도 그렇게 기사를 써보자고 다짐하는 것, 그것뿐. 다른 생각은 없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금연은 기본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꿔야 가능하다. 그래서 금연학교에서는 수시로 체조와 운동을 시킨다.
인터넷을 뒤져 위생병원 금연학교를 찾아갔다. 금연학교의 실질적 교장인 최방원 강사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금연하시는 것이 현명한 겁니다. 여기를 마친 분들은 90%가 3개월 이상 끊습니다. 한번 입원해서 도전해보세요.” ‘입원’이란 용어가 시작부터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내 생각에도 나 같은 골초는 강제적으로 담배로부터 격리되지 않고는 담배를 끊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입학원서를 쓰고 입원하기로 했다. 나는 잠잘 때와 비행기 탔을 때를 빼면 10시간 넘게 담배를 피우지 않은 적이 없는 골초다. 하루에 한갑 반 정도를 피운다. 금연 시도는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담배를 진짜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미세한 입자가 만들어내는 파란 생담배 연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새하얀 연기로 바뀌는 그 놀라운 변화, 연기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모습, 담배가 점점 타들어가 재로 변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재미. 난 이 모든 걸 좋아한다. 담배맛?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담배를 사랑하는 이유다. “두 손가락에 끼어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르켰다.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김용호 ‘담배’)는 시는 꼭 내 이야기인 듯싶었다. 힘들고 괴로울 때, 담배는 어찌보면 가족보다 더 요긴한 동반자였다. 처음 담배를 배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고3 시절에 인이 박여 16년을 담배와 함께 살았다. 남들은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화장실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는 골초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다. 아침에 눈 뜨면 잠 깨려고 한대 피우고, 밥 먹고나면 소화시키려고 한대 피우고, 출근할 때는 출근하니까 피우고, 회사에 와서는 자리에 앉았으니까 피우고…. 하루 한갑을 넘기지 않던 흡연량이 늘어난 것은 신문사에 입사한 뒤부터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담배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다. 우리 <한겨레21>만 해도 기자 20여명 가운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겨우 여섯명이다. 16년 동안 맺어온 담배와의 인연

금연학교로 떠나기 전 마감을 하고 있는 모습. 마감 때면 몸의 일부나 다름없을 정도로 담배를 늘 입에 물고 살았다.

담배 대신 감초(왼쪽)와 다시마(오른쪽)를 먹으면 금단현상을 줄일 수 있다.

금단 증상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졸음’이었다. 수시로 졸음이 쏟아졌다.

금연학교에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보다 적극적인 사람들이었다. 확실하게 담배를 끊기 위해 여름휴가를 모두 투자한 이들도 상당했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