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증을 ‘천형’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왜곡된 시선, ‘대머리’라는 말부터 바꾸자
“화장실에서 울면서 삭발했었죠. 집에 그냥 굴러다니는 가위로…. 홀딱 벗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씹혀가면서 깎아대는데…. 참 슬펐습니다. 진짜 죽고 싶더군요.”
“스물여덟이란 나이가 되니까 결혼이란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제대로 여자 한번 사귀지 못했습니다. 탈모가 시작되니까 여자에 대해 자신감이 제로가 되어버리더군요. 결혼정보회사 가입 불가 조건 중 하나가 대머리더군요.”
“미용실에서는 왜 머리를 감겨줄 때 누워서 하는 걸까요? 이발소처럼 엎드려서 하면 머리가 잘 보이지 않을 텐데….”
국내 최대의 탈모 커뮤니티 사이트인 ‘대다모’(daedamo.com)를 보면 ‘머리’문제로 속앓이를 하는 이들의 고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쓰는 ‘평생을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야 할 십자가’ 또는 ‘천형’이라는 표현은,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다보니 대인기피증까지 생긴다고 한다. 실제 지난해 3월9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탈모증으로 수업시간에도 모자를 써야 했던 한 학생이 모자를 벗으라는 교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탈모 사실이 드러나 교실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사정이 이 지경인 줄 알고나면 탈모증을 앓고 있는 이들의 머리 생김새를 두고 ‘주변머리없다’느니 ‘소갈머리없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아무 거리낌없이 해댄 과거가 마음에 걸린다. 또 학창 시절 머리카락 부족한 선생님들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 ‘빛나리’, ‘민둥산’, ‘달마대사’, ‘가로등’, ‘버섯동자’ 등으로 놀려댄 과거도 되돌아보게 된다.
초콜릿 광고 논란과 <조선일보> 그런데 최근 이 ‘대다모’와 <조선일보>가 보도내용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7월10일치 사회면에 ‘대머리 인터넷 동호인 모임’ 소속 네티즌들이 롯데제과가 TV광고를 하면서 ‘쿠키에 초콜릿이 드문드문한 것과 남자친구의 드문드문한 머리를 비교한 것’을 두고 거친 욕설과 폭언이 섞인 이메일을 보내 회사가 광고중단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이 사이버 공간의 집단적 언어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 셈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조선일보> 기고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가 수많은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는 상황을 방어하려는 조선일보쪽의 계산이 드러나 있었다. 대다모는 즉각 반론을 폈다. 대다모쪽은 회원들이 롯데제과 홈페이지에 올린 글 대부분은 욕설이 담긴 무차별 사이버 테러가 아니라 탈모로 인해 겪는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었다고 주장했다. 롯데제과 김유택 광고팀장도 “광고중단 결정은 사이버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애초 단순한 유머광고로 기획한 내용이 본의 아니게 탈모인들에게 고통을 줬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광고를 그만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모쪽은 조선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애초 이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탈모인들에 대한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다모의 한 회원은 “탈모증은 유전으로 인한 질환인데도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에 가득 차 있다”며 “특히 방송사들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코미디 소재로 사용하는 바람에 대표적인 사회적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회원은 “소수자 인권을 얘기하는 진보적인 언론에서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집단이나 인물, 탐욕스런 계급을 그릴 때는 ‘대머리’로 묘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의학적 치료보다 사회적 인식 전환이 중요 탈모인들은 연애, 결혼, 취업 등 사회활동의 중요한 계기마다 차별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노골적인 취업 차별이 존재하고 결혼정보회사들에서도 회원 가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탈모인의 경우 숫자는 남성들에 비해 적지만 그 피해 정도는 남성들이 느끼는 것의 몇배에 이른다. 이아무개(32)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여대를 다니면서도 파마 한번 하지 못했고, 직장에 취직한 뒤에도 빈곳을 가리기 위해 항상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는 직장상사가 머리가 항상 왜 그렇게 단정하지 못하고 그 모양이냐고 따져요. 사무실을 뛰쳐나와서 펑펑 울었죠.” 이씨가 더욱 상처를 받은 건 결혼을 결심하면서부터다.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결혼해도 괜찮겠냐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물어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줬다. 수백만원을 내고 탈모예방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마음의 병은 고치기 힘들었다고 한다. 현재 정확한 탈모인구는 집계돼 있지 않다. 다만 전체 인구의 10% 안팎이 탈모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고, 이 가운데 탈모가 외모에 끼치는 영향에 민감해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는 10∼30대 탈모인은 약 80만명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추산이다. 탈모인들이 탈모방지와 발모에 쓰는 비용은 한해 약 300억∼4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부분가발업체와 모발관리업체가 성업중이고 두피이식수술을 받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문제는 히포크라테스도 자신의 대머리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듯이, 탈모증의 근본치료가 대단히 어렵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한올이 아쉬운’ 탈모인들에게 현란한 말솜씨와 얄팍한 상술로 다가가는 사기꾼들 역시 이들을 괴롭히는 주된 적들이다. 또 민간요법도 당사자들에게는 괴로움만 주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과장인 박아무개(39)씨는 “솔잎이 달린 소나무 가지, 검정콩, 중국산 발모제, 싱싱한 계란노른자 등 발모촉진에 좋다는 것은 다 해봤지만 뾰족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머리를 치료하는 일과 함께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인지치료상담센터 이민식 박사는 “20세기 말부터 자신의 능력과 외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자기애적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이같은 경향과 외모중시 풍조 때문에 탈모인들 스스로가 더욱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모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정적인 이미지가 녹아 있는 ‘대머리’라는 단어부터 바꾸는 사회적 토론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전체 인구의 10% 안팎이 탈모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부분가발업체 등이 성업중이지만 탈모증은 근본치료가 어렵다.(박승화 기자)
초콜릿 광고 논란과 <조선일보> 그런데 최근 이 ‘대다모’와 <조선일보>가 보도내용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7월10일치 사회면에 ‘대머리 인터넷 동호인 모임’ 소속 네티즌들이 롯데제과가 TV광고를 하면서 ‘쿠키에 초콜릿이 드문드문한 것과 남자친구의 드문드문한 머리를 비교한 것’을 두고 거친 욕설과 폭언이 섞인 이메일을 보내 회사가 광고중단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이 사이버 공간의 집단적 언어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 셈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조선일보> 기고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가 수많은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는 상황을 방어하려는 조선일보쪽의 계산이 드러나 있었다. 대다모는 즉각 반론을 폈다. 대다모쪽은 회원들이 롯데제과 홈페이지에 올린 글 대부분은 욕설이 담긴 무차별 사이버 테러가 아니라 탈모로 인해 겪는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었다고 주장했다. 롯데제과 김유택 광고팀장도 “광고중단 결정은 사이버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애초 단순한 유머광고로 기획한 내용이 본의 아니게 탈모인들에게 고통을 줬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광고를 그만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모쪽은 조선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애초 이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탈모인들에 대한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다모의 한 회원은 “탈모증은 유전으로 인한 질환인데도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에 가득 차 있다”며 “특히 방송사들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코미디 소재로 사용하는 바람에 대표적인 사회적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회원은 “소수자 인권을 얘기하는 진보적인 언론에서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집단이나 인물, 탐욕스런 계급을 그릴 때는 ‘대머리’로 묘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의학적 치료보다 사회적 인식 전환이 중요 탈모인들은 연애, 결혼, 취업 등 사회활동의 중요한 계기마다 차별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노골적인 취업 차별이 존재하고 결혼정보회사들에서도 회원 가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탈모인의 경우 숫자는 남성들에 비해 적지만 그 피해 정도는 남성들이 느끼는 것의 몇배에 이른다. 이아무개(32)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여대를 다니면서도 파마 한번 하지 못했고, 직장에 취직한 뒤에도 빈곳을 가리기 위해 항상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는 직장상사가 머리가 항상 왜 그렇게 단정하지 못하고 그 모양이냐고 따져요. 사무실을 뛰쳐나와서 펑펑 울었죠.” 이씨가 더욱 상처를 받은 건 결혼을 결심하면서부터다.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결혼해도 괜찮겠냐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물어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줬다. 수백만원을 내고 탈모예방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마음의 병은 고치기 힘들었다고 한다. 현재 정확한 탈모인구는 집계돼 있지 않다. 다만 전체 인구의 10% 안팎이 탈모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고, 이 가운데 탈모가 외모에 끼치는 영향에 민감해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는 10∼30대 탈모인은 약 80만명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추산이다. 탈모인들이 탈모방지와 발모에 쓰는 비용은 한해 약 300억∼4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부분가발업체와 모발관리업체가 성업중이고 두피이식수술을 받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문제는 히포크라테스도 자신의 대머리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듯이, 탈모증의 근본치료가 대단히 어렵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한올이 아쉬운’ 탈모인들에게 현란한 말솜씨와 얄팍한 상술로 다가가는 사기꾼들 역시 이들을 괴롭히는 주된 적들이다. 또 민간요법도 당사자들에게는 괴로움만 주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과장인 박아무개(39)씨는 “솔잎이 달린 소나무 가지, 검정콩, 중국산 발모제, 싱싱한 계란노른자 등 발모촉진에 좋다는 것은 다 해봤지만 뾰족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머리를 치료하는 일과 함께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인지치료상담센터 이민식 박사는 “20세기 말부터 자신의 능력과 외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자기애적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이같은 경향과 외모중시 풍조 때문에 탈모인들 스스로가 더욱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모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정적인 이미지가 녹아 있는 ‘대머리’라는 단어부터 바꾸는 사회적 토론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