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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냉전의 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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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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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 지중해의 몰타해역 선상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종식과 평화를 선언하며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국제적인 탈냉전 기류에도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던 한반도에서도 몇해 전부터 냉전을 탈피하려는 지난한 몸부림이 있었다. 꿈에서나 그리던 금강산관광이 이루어져 격세지감을 안겨주더니, 지난해에는 남북 정상간의 역사적인 만남까지 성사되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햇볕정책, 남북경협, 데탕트 등 매스컴이 뿜어대는 용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냉전은 이젠 아련한 구시대의 유물’인 양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냉전의 몸통이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는데, 어찌 탈냉전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2000년 보안법 구속자 128명

보안법의 희생자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그의 임기중에 보안법이 폐지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말로는 탈이데올로기시대라지만, 냉전이데올로기는 버젓이 살아 전가의 보도로 이용되고 있다. 얼마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함께 펴낸 ‘2000년 국가보안법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모두 128명이고 그중 90% 이상이 찬양·고무죄였다고 한다. 6월15일 선언 이전 구속자보다 이후 구속자가 오히려 더 많고 특히 전체 구속자의 절반 가까운 60여명이 정상회담 직후 석달 동안 구속된 것이라는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햇볕정책이란 게 따스한 햇살로 북한을 개방사회로 유도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뜨거운 반공이데올로기의 햇볕으로 진보세력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제환경은 탈냉전의 기류인데, 분단상황과 깡패국가(rogue state) 북한이라는 변수 때문에 유독 한반도에서는 냉전적인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냉전의 적자 국가보안법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부시 행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MD계획이다. MD구상은 냉전시대 미·소의 극단적 군비경쟁보다 더 위험하다. 냉전시대에는 두 군사대국의 동적인 균형과 긴장으로 제한적이지만 평화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미국만이 유일초강대국으로 남은 세계에서 미국의 힘을 견제할 균형세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MD구상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MD계획의 뿌리는 80년대 초반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유로미사일위기가 한창이던 83년 레이건 미 대통령은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했다. 전략방위구상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소련의 핵미사일을 공중격추시킨다는 계획으로, 요격미사일발사장치를 우주와 지상에 배치한다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전략이었다. 소련은 SDI계획이 우주의 군사화라고 반발했고, 미국 내에서도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클린턴 행정부는 소련붕괴로 SDI의 존재이유가 없어졌다고 보고 이 계획을 대폭 축소조정한 바 있다. 그런데 냉전시기 레이건의 구상이 MD체제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방패와 창의 업그레이드 악순환

MD체제란 미국과 동맹국의 대륙 상공을 격자망식으로 구획짓고 이를 연결시켜 보이지 않는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것이고, 날아오는 적의 핵미사일을 상공에서 요격 분쇄한다는 개념이다. 미국이 이런 핵미사일 방어망을 갖출 경우 국제정치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적의 핵미사일을 공중요격할 체제를 갖출 경우, 상대방의 핵무기는 무력화될 위험성이 있고 미국 외의 핵보유국은 핵억지력 자체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포스트 모던 시대라지만 핵을 보유하고도 핵이 무력해지는 그런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만이 실질적 핵보유국이고, 미국의 핵위협 아래 세계가 불안해지는 공포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구상이 추진중인데 어찌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미국은 북한 같은 불량국가의 미사일위협 때문에 MD구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 구상에 위기를 느끼는 나라는 오히려 러시아나 중국 같은 핵강국들이다. 공격적인 방패를 만들면 그 방패을 뚫을 더 강한 창을 만들게 되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최근 러시아가 MD구상에 대비해 다탄두 대륙간탄도탄 SS19발사 시험을 했다는 보도는 이를 입증해준다.

국가보안법이 존속되는 한 한반도에 탈냉전이 요원하듯이, 미사일방어체제의 철폐없이 세계평화는 불가능하다. 경상도 가뭄이 전라도 정권의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정치적인 농담이 횡행하는 불안한 냉전시대에, 국민의 정부는 지역감정과 정략을 넘어 이제는 노벨평화상이 무색하지 않을 분명한 평화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보안법과 MD계획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은 현 정부의 탈냉전 의지를 가늠하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다.

최연구/ 국제관계학 박사·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대우강사 http://www.postech.ac.kr/~choi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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