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DJ와 반DJ, 색깔론을 뛰어넘는 양식있는 ‘언론 토론’을 기대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언론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오마이뉴스’, ‘인터넷한겨레’, ‘디지털조선’ 등 주요 언론사이트에는 시민들이 사상 유례없이 활발하게 토론공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표현들도 있지만, 솔직한 의견·날카로운 분석·전문적인 식견 등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글들이 많습니다. 기자인 저 자신 온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열심히 읽으며 매일같이 ‘독자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언론에 대해 말하고 취재원에 밀착해온 기자들이 독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현상, 깨어 있는 독자가 훌륭한 언론을 만든다는 점에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자유롭지만 책임없는 상업언론
세계적으로 언론의 역사를 보면 통제언론-자유주의-상업주의를 거쳐 사회책임·시민참여 언론으로 가는 추세입니다. 단계를 뛰어넘어 발전하는 데는 언론의 자각과 자율규제, 법적 제도적 정비도 중요하지만 독자와 시민모니터가 큰 몫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과 언론사 사이의 공방에 머물지 않고 ‘독자 vs 언론’으로 직접토론의 구조가 형성된 것은 언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동안 독자는 신문 방송이 떠들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독자라는 상품을 확보해 이를 광고주에게 파는’ 상업언론이 체제안정적이고 자사이기주의적인 속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면서 비판적인 능동적 수용자(active audience)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지금 한국은 능동적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 독자, 아니 위대한 독자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사나 정치권, 지식인이 여론을 독점할 수 없으며 여론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독자 행동은 지극히 정당하고 힘이 있습니다.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한발 물러서고 진정한 주인인 독자가 이끄는 토론으로 확장됐으면 합니다. 언론, 여론은 물과 공기처럼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들인데,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만 쥐어주고 주인들이 무심했던 탓도 있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인가 아닌가 하는 데서부터 추미애와 이문열 누가 더 문제인가 하는 데까지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처럼 판매에서 앞서는 신문이 가장 좋은 신문이다, 아니다 <한겨레>처럼 사회적 약자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신문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의도 있을 수 있습니다. 토론이 더욱 활발해지고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행동으로 나간다면 그것이 곧 언론발전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정치색을 배제하고 언론의 구조 본질 성격에 논의를 집중해야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자꾸 친DJ와 반DJ, 그리고 색깔론으로 덧씌우려는 쪽이 있는데, 그것은 본질을 흐리는 농단입니다. 독자 대 언론으로 양식있는 사회에 맞는 언론을 위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무조사의 배경, 그리고 한겨레의 편집방침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언론은 학계,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계 내부(언론노조 등)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상업주의 물량주의가 노골화되면서 ‘자유롭지만 책임없는’ 언론현실이 큰 문제로 부각됐습니다. 보수화경향 속에 논조가 왔다갔다하고 기사와 광고를 바꿔먹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일부 신문은 경쟁보다는 역시 권력과의 결탁이 최고라는 한국적 속성을 간파하고 선거 때 공공연히 특정 후보를 밀었습니다. 기업적 측면이 중시되면서 신문사 편집국도 경영에 더욱 예속되고 광고주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친일, 독재굴종 같은 과거지사를 덮어둘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바로 그런 생존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무조사 면제 같은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점도 악폐로 지적됐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언론사(주)쪽의 위세와 반발, 정치권의 회피로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올 들어 비로소 세무조사가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세무조사의 시기와 방법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바른 언론을 위해 한번은 넘어야 할 고비를 과감히 넘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한겨레에 대해 정권의 주구, 홍위병, 악령이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당시부터 줄곧 언론의 적폐 청산을 주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세무조사, 언론개혁에 힘을 싣는 것은 당연합니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한겨레는 몇몇 보수적 신문사가 여론을 갖고노는 언론현실이 진보와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근거없는 마타도어에 관하여 현 정권과 한겨레를 연관짓는 것은 근거없는 마타도어입니다. 한나라당이 성역없는 세무조사를 먼저 말했다면 우리는 한나라당의 주구가 됐을 것입니다. 어떤 정책이 옳다고 여겨질 때 그것을 지지할 뿐입니다. 예컨대 제가 편집장으로 있는 <한겨레21>은 오로지 저와 우리 기자들의 토론으로 편집방침을 정합니다. 등 뒤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편집국장을 기자들의 투표로 뽑는 <한겨레> 편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 내부는 토론과 설득의 구조이며, 지시와 침묵의 구조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련되지 못할지언정 누구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약체 DJ정권과 결탁했다니, 한겨레 구성원 모두가 눈이 멀었다는 뜻인가요? 공익 언론, 책임있는 언론, 이념적 지향성이 분명한 언론.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우리라고 이런 언론을 못 가질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온 천하가 무너지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려운’ 이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활발한 토론, 행동하는 독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세계적으로 언론의 역사를 보면 통제언론-자유주의-상업주의를 거쳐 사회책임·시민참여 언론으로 가는 추세입니다. 단계를 뛰어넘어 발전하는 데는 언론의 자각과 자율규제, 법적 제도적 정비도 중요하지만 독자와 시민모니터가 큰 몫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과 언론사 사이의 공방에 머물지 않고 ‘독자 vs 언론’으로 직접토론의 구조가 형성된 것은 언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동안 독자는 신문 방송이 떠들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독자라는 상품을 확보해 이를 광고주에게 파는’ 상업언론이 체제안정적이고 자사이기주의적인 속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면서 비판적인 능동적 수용자(active audience)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지금 한국은 능동적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 독자, 아니 위대한 독자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사나 정치권, 지식인이 여론을 독점할 수 없으며 여론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독자 행동은 지극히 정당하고 힘이 있습니다.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한발 물러서고 진정한 주인인 독자가 이끄는 토론으로 확장됐으면 합니다. 언론, 여론은 물과 공기처럼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들인데,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만 쥐어주고 주인들이 무심했던 탓도 있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인가 아닌가 하는 데서부터 추미애와 이문열 누가 더 문제인가 하는 데까지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처럼 판매에서 앞서는 신문이 가장 좋은 신문이다, 아니다 <한겨레>처럼 사회적 약자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신문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의도 있을 수 있습니다. 토론이 더욱 활발해지고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행동으로 나간다면 그것이 곧 언론발전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정치색을 배제하고 언론의 구조 본질 성격에 논의를 집중해야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자꾸 친DJ와 반DJ, 그리고 색깔론으로 덧씌우려는 쪽이 있는데, 그것은 본질을 흐리는 농단입니다. 독자 대 언론으로 양식있는 사회에 맞는 언론을 위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무조사의 배경, 그리고 한겨레의 편집방침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언론은 학계,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계 내부(언론노조 등)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상업주의 물량주의가 노골화되면서 ‘자유롭지만 책임없는’ 언론현실이 큰 문제로 부각됐습니다. 보수화경향 속에 논조가 왔다갔다하고 기사와 광고를 바꿔먹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일부 신문은 경쟁보다는 역시 권력과의 결탁이 최고라는 한국적 속성을 간파하고 선거 때 공공연히 특정 후보를 밀었습니다. 기업적 측면이 중시되면서 신문사 편집국도 경영에 더욱 예속되고 광고주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친일, 독재굴종 같은 과거지사를 덮어둘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바로 그런 생존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무조사 면제 같은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점도 악폐로 지적됐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언론사(주)쪽의 위세와 반발, 정치권의 회피로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올 들어 비로소 세무조사가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세무조사의 시기와 방법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바른 언론을 위해 한번은 넘어야 할 고비를 과감히 넘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한겨레에 대해 정권의 주구, 홍위병, 악령이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당시부터 줄곧 언론의 적폐 청산을 주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세무조사, 언론개혁에 힘을 싣는 것은 당연합니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한겨레는 몇몇 보수적 신문사가 여론을 갖고노는 언론현실이 진보와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근거없는 마타도어에 관하여 현 정권과 한겨레를 연관짓는 것은 근거없는 마타도어입니다. 한나라당이 성역없는 세무조사를 먼저 말했다면 우리는 한나라당의 주구가 됐을 것입니다. 어떤 정책이 옳다고 여겨질 때 그것을 지지할 뿐입니다. 예컨대 제가 편집장으로 있는 <한겨레21>은 오로지 저와 우리 기자들의 토론으로 편집방침을 정합니다. 등 뒤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편집국장을 기자들의 투표로 뽑는 <한겨레> 편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 내부는 토론과 설득의 구조이며, 지시와 침묵의 구조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련되지 못할지언정 누구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약체 DJ정권과 결탁했다니, 한겨레 구성원 모두가 눈이 멀었다는 뜻인가요? 공익 언론, 책임있는 언론, 이념적 지향성이 분명한 언론.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우리라고 이런 언론을 못 가질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온 천하가 무너지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려운’ 이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활발한 토론, 행동하는 독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