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송국 ‘시다바리’가?”…열악한 근무여건에 시달리는 지방방송 작가들의 몸부림
사무실에서 기자들이 많이 받는 전화 가운데 하나는 방송사로부터다. “‘OOO’ 기사에 나온 ‘XXX’씨의 연락처가 어떻게 되나요?” 때로는 어렵게 찾은 취재원을 ‘거저 먹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아가 치밀기도 하지만 직접 알아보라며 매몰차게 끊기는 어렵다. 자신을 구성작가라고 밝히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조급함이나 절박함 비슷한 게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일당 만원에 12시간 노동하라고?
작가가 원고 안 쓰고 왜 섭외를 하는지 의아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방송사에는 원고만 쓰는 드라마 작가도 있다. 그러나 시사, 교양프로그램의 구성작가의 경우는 다르다. 섭외뿐 아니라 아이템 선정, 자료조사, 취재, 촬영 및 편집 구성안 작성, 편집, 자막처리 등을 챙겨야 하는 구성작가에게 원고작성은 오히려 부분적인 일이다. 그럼 PD와 작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프로그램이 실패하더라도 PD는 회사를 나가야 하는 일까지 생기지는 않지만 작가는 섭외 한 가지만 잘 못해도 해고구성요건이 성립되는 사람들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프리랜서 작가들은 “짐싸”라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해고 이유 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짐을 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신의 처지를 “프리랜서가 아니라 파리랜서(파리 같은 목숨)”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얼마 전 지방의 한 방송사에서 “우리는 더이상 파리랜서로 살 수 없다”며 작가들이 일어나 방송가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마산MBC의 텔레비전, 라디오 구성작가 14명은 동료 프리랜서인 디제이, 리포터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어 ‘근로계약서 작성, 원고료 지급 체계 마련’ 등을 주장하며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만원짜리 작가라고 들어보셨어요?” 이곳에서 FM 방송을 만드는 라디오 작가들은 최근 회사에서 원고료를 인상하기 전까지 모두 일당 만원짜리 작가였다. 편성국장이 담당 PD로 이름만 걸어놓은 채 사실상 아나운서와 둘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강진희(가명)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새롭게 바뀐 아나운서의 열정이 지나쳤던 탓일까. 아나운서는 오후 5시 방송프로그램의 원고를 점심 때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함께 선곡하고 진행 보조를 한 뒤에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방송계획을 상의하자”고 제안했다. 아나운서의 요구대로 일을 한다면 하루 12시간 정도를 꼬박 투자해야 할 판이었다. “하루 만원씩 일당을 받는 작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닌가” 항의한 강씨에게 아나운서는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면서 그를 힐난했다. 며칠 뒤 강씨는 국장으로부터 그만둘 것을 통보받았다. 다른 작가들이 들고일어나 해고 통지는 번복됐지만 이미 아나운서가 새로 뽑은 작가가 출근하고 있는 상태였다. 강씨는 프로그램을 맡은지 한달 여 만에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루 만원의 일당이라는 ‘초’저임금은 비단 마산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방송사에서 일하는 작가들은 서울의 작가들보다 훨씬 낮은 급여로 일한다. 서울도 방송사와 작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급여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역 방송국 1∼2년차 초보작가는 지방 작가들의 월 평균 급여는 50만∼60만원으로 서울 작가들에 비해 3분의 1가량 적다. 특히나 서울지역의 중앙방송사보다 낮게 책정되는 제작비와 부족한 인력 등 지방 방송사의 열악한 제작여건으로 인해 지방의 작가들은 낮은 원고료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단체교섭권을 달라
개편 때마다 원고료 인상과 근무여건 개선을 주장해왔지만 늘 “다음 개편 때”라는 대답만 들어온 작가들의 인내심은 강진희씨의 사건을 보면서 그 한계에 달했다. 작가가 주축이 된 프리랜서들은 3월 초 전국여성노조에 가입했다. 이들은 봄 개편을 앞두고 노조가입 여부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요구안을 만들어서 편성국장을 찾아갔다. 언제나처럼 다음 개편 때 생각해보자는 응답이 돌아왔다. 다음에 찾아간 사장 역시 “구성작가와 방송사는 대화상대가 아니다”라며 싸늘하게 사장실의 문을 닫았다. 3월22일 ‘전국여성노조 마산·창원지부 마산MBC 분회’의 이름으로 단체교섭 요청공문이 날아가자 회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4월4일 자체 제작하는 라디오프로그램 4개 가운데 3개의 폐지가 통고됐다. 작가 두명과 함께 12년 동안 일해온 디제이도 해고를 통보받았다. “왜 프로그램을 없앴냐고 항의하니까 우리가 빨간 조끼를 입고 다니면서 정신을 산만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편성국장이 말하더군요.”(박미경 마산MBC 분회장)
국장은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부터 조합원들에게 유니폼을 벗을 것을 조건으로 폐지 번복을 약속했다. 일주일 뒤 회사는 작가료를 하루 5천원씩 인상하면서 교섭중단을 요구했다. “돈 몇푼 더 받는다고 단체교섭을 포기하면 개편 때마다 병주고 약주고 하면서 결국 목소리 높인 사람들을 자를 게 뻔하잖아요.” 조합은 작가료를 인상하지 않아도 좋으니 교섭을 하자고 몇 차례 더 공문을 띄웠지만 여지없이 묵살당했다. 결국 4월25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서를 접수해서 노동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들은 출퇴근시간 제약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단체협상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회사쪽의 완강한 주장에 작가들은 “새벽이건 휴일이건 PD가 부르는 시간에 달려나와야 하는 우리가 과연 자유롭게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꼴뚜기가 뛴다고 망둥이도 뛰냐”,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일주일만 가르치면 할 수 있는 게 작가다”며 수군거리는 회사사람들의 눈초리가 불과 21명의 여성조합원들 귀에 늘 밟힌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건 정규직 채용도 계약직 전환도 아니다.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회사와 정확하게 고용관계를 맺고 일하고 싶다는 게 정말 무리한 요구냐”고 이들은 서운해한다.
PD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하는 작가들의 의지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작가들이 주장하는 고용계약 명시화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마산MBC의 한 PD는 “작가들의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회사와 작가가 직접 계약을 할 경우 원하지 않는 작가와 일하면서 업무의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작가들의 움직임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인사업주로 일하는 작가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경남 지방노동위의 판결에 마산MBC 작가들뿐 아니라 중앙 방송사들까지 예민하게 촉수를 세우고 있다. 이 결정은 작가들의 처우개선뿐 아니라 방송사 인력운영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실상 PD들의 일을 대부분 떠맡은 구성작가들은 방송사가 몸집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온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산MBC에 영향받아 작가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역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대구·경북방송작가협회도 조합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전지역 역시 작가들의 단체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남 광주지역의 A방송사와 경남 진주의 B방송사 작가들은 최근 전국여성노조에 가입했다. 서울지역 역시 방송작가협회를 중심으로 얼마 전 구성작가들의 노동실태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계약의 명시화와 원고료 기준 현실화 등을 담는 가이드 라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점점 확대되는 단체 설립 움직임
그러나 방송작가들 전체의 권익이 개선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방송작가들처럼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입장에 있는 학습지 교사나 골프장 캐디 노조 운동 사례와 달리 방송작가들 내부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방송작가 정아무개씨는 “스스로가 노동자로 불리기를 수치스러워하는 작가들도 많다”고 말한다. 방송에 대한 막연한 매력 때문에 노동조건 등을 따지지 않고 방송사 주변에 모여드는 젊은 여성들이 많은 현실도 ‘파리랜서’ 작가들의 단결을 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마산MBC 작가들의 용기가 수많은 작가들에게 힘을 줄 것”이라는 정씨의 말처럼 21명 빨간 조끼의 여성들로 인해 긴 싸움의 출사표는 이미 던져졌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방송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 가운데 최초로 조합을 설립한 마산MBC의 조합원들.
얼마 전 지방의 한 방송사에서 “우리는 더이상 파리랜서로 살 수 없다”며 작가들이 일어나 방송가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마산MBC의 텔레비전, 라디오 구성작가 14명은 동료 프리랜서인 디제이, 리포터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어 ‘근로계약서 작성, 원고료 지급 체계 마련’ 등을 주장하며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만원짜리 작가라고 들어보셨어요?” 이곳에서 FM 방송을 만드는 라디오 작가들은 최근 회사에서 원고료를 인상하기 전까지 모두 일당 만원짜리 작가였다. 편성국장이 담당 PD로 이름만 걸어놓은 채 사실상 아나운서와 둘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강진희(가명)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새롭게 바뀐 아나운서의 열정이 지나쳤던 탓일까. 아나운서는 오후 5시 방송프로그램의 원고를 점심 때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함께 선곡하고 진행 보조를 한 뒤에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방송계획을 상의하자”고 제안했다. 아나운서의 요구대로 일을 한다면 하루 12시간 정도를 꼬박 투자해야 할 판이었다. “하루 만원씩 일당을 받는 작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닌가” 항의한 강씨에게 아나운서는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면서 그를 힐난했다. 며칠 뒤 강씨는 국장으로부터 그만둘 것을 통보받았다. 다른 작가들이 들고일어나 해고 통지는 번복됐지만 이미 아나운서가 새로 뽑은 작가가 출근하고 있는 상태였다. 강씨는 프로그램을 맡은지 한달 여 만에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루 만원의 일당이라는 ‘초’저임금은 비단 마산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방송사에서 일하는 작가들은 서울의 작가들보다 훨씬 낮은 급여로 일한다. 서울도 방송사와 작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급여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역 방송국 1∼2년차 초보작가는 지방 작가들의 월 평균 급여는 50만∼60만원으로 서울 작가들에 비해 3분의 1가량 적다. 특히나 서울지역의 중앙방송사보다 낮게 책정되는 제작비와 부족한 인력 등 지방 방송사의 열악한 제작여건으로 인해 지방의 작가들은 낮은 원고료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단체교섭권을 달라

사진/ 지난 6월14일 민주노총 본부 강당에서 ‘방송으로 밥 벌어먹기’라는 주제로 열린 공개토론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