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우려, 익숙하지 않은 가사일… 힘들지만 아빠의 육아휴직은 아이들의 인권문제
“아빠, 육아휴직 연장할 수 없나요?”
두달 동안의 육아휴직이 끝나는 7월1일 밤 10시. 잔뜩 졸린 눈을 하고 있던 여민이가 중얼거렸다. 우리 둘은 가끔씩 그랬던 것처럼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들으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참, 생후 6개월짜리가 무슨 말을 하지? 새삼스레 여민이를 쳐다봤다. 잠이 들어 코까지 골고 있었다. 내가 헛것을 들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챘지만, 여민이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단다, 아가야.
아이 똥냄새는 향기롭지 않더라
육아휴직이 끝나는 지금, 휴직을 결심했던 지난 4월 말이 오버랩된다. 한 잡지사 기자의 취재 부탁 전화는 시쳇말로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겼다. 그 기자는 “출산과정에 참여했던 아빠로서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쓴 ‘인권출산 체험기’(<한겨레21> 343호 참조)를 읽어봤단다. 부끄러웠다. 스스로가 위선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인권’을 존중하는 출산과정에 참여했다고 동네방네 광고해놓고, 아빠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를 모른 체함으로써 정작 아이의 ‘인권’은 ‘나 몰라라’ 한 셈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러나 결심 하나로 모든 일이 해결될 수는 없는 법. 아빠의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사회적·제도적·의식적 장애는 여전했다. 먼저 회사 안에서 우려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육아에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면 계속 그렇게 해야 하고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게 남성들의 주된 반응이었다. 부서 안에서는 당장 한명이 빠져 생기는 공백에 대한 걱정으로 휴직기간을 줄이려는 시도도 있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오는 거부감은 여성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누나 등 여성 가족들이 주로 그랬다. 남자를 집안에 들어앉히는 것은 남자의 성공이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뿌리깊은 편견은 아빠의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주요한 사회적 의식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향에 계신 외할머니께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시고 “회사에서 잘렸냐”는 걱정을 여러 번 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아빠의 육아휴직은 엄마의 출산휴가와 마찬가지로 다뤄져야 한다”고 잘라 말해준 한 남자 선배의 격려는 가뭄 속 단비였다.
어쨌든 육아휴직은 받아들여졌다. 우리 회사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노사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남성 육아휴직자가 이미 한번 있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러나 체계적인 준비없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휘발유통을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다. 아기 키우는 아빠들이 쓴 책이나 글을 읽어보면 아기 똥냄새는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다는 식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내게는 아주 지독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이가 밤에 울기 시작하면 가슴에 안고 흔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체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로 오랫동안 안고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작정을 한 것처럼 악을 쓰면서 울 때에는 며칠 동안 울던 아이를 패대기쳐 죽였다는 청석골 두령 곽오주가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믿었지만, 하루 반나절을 쉴 수 있는 민방위훈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직업병, 손목인대 이상과 건망증
직업병도 두 가지 생겨났다. 안아주기를 오래 하다보니 손목인대가 늘어나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결국 침을 맞아야 했다. 또 하나는 웃기게도 건망증이었다. 한번은 돈을 부쳐야 하는데 아이 준비물만 잔뜩 싸서 나오고 정작 은행에 도착하니 통장을 빠뜨리고 나와 황당했던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민이와 한번 외출하려면 보통 10가지 이상의 준비물이 필요했다. 끓인 물, 분유, 기저귀, 소독한 젖병, 물티슈, 아기띠, 옷, 모자, 파우더 등등 끝이 없었다. 영남대 이강옥 교수가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에서 언급한 전업주부가 지닌 건망증의 본질이 자꾸 떠올랐다. 평소 머릿속에 아이와 가사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잔뜩 집어넣고 지내기 때문에 좀더 덜 중요한 정보들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자기표현을 극대화해서 아기에게 보여줘야 하고 수다가 많은 말습관을 지녀야 한다는, 아기 양육자의 필수조건에서도 나는 약간 비껴나 있었다. 어떤 상황을 맞이하든 감정 변화를 덜 보이는 데다 그 표현을 자제하는 편이어서 아이 달래는 소리, 콧소리도 섞고 옥타브도 높여야 하는 그 소리를 제대로 내기가 쑥스러웠다.
그러나 생후 4개월이었던 여민이에게 아빠가 다른 양육자보다 나은 조건도 있었다. 4개월짜리 아기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몸 전체를 움직이는 놀이가 필요해진다. 끊임없이 손을 뻗어 사물을 잡으려 하는가 하면, 누웠다가 뒤집어 엎드리고 그 반대로 뒤집어 눕기도 한다. 또 부모를 대하는 것처럼 낯선 사람을 반기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줘야 한다. 엄마보다는 힘이 있고 활동력이 왕성한 아빠가 전적으로 돌보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점은 아기발달문제 전문가인 김수연씨가 운영하는 ‘아기발달연구소’(www.babysoo.co.kr)에서 여민이의 발달정도를 검사한 뒤 더욱 뚜렷해졌다. 검사결과 여민이는 전반적인 근육의 발달정도는 평균 이상이지만, 하체보다는 상체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기질적으로는 성취욕이 너무 강해서 하루빨리 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했다. 또 사물보다 사람한테 관심이 많아서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밖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충고대로 해봤다. 하루에도 두세번 정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았다. 볼일이 생길 때마다 내 차에다 태우고 다녔다. 아직 앉지 못하는 여민이를 위해 찻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카시트도 마련했다. 일단 낮에 과격하게 놀아주니까 밤에 푹 잤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과 함께 아침 일찍 똥을 누는 규칙적인 배변습관도 자리를 잡았다. 상체를 발달시키기 위해 집에서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무조건 엎드리게 하고 목 아래 어깨 부분에 수건을 넣고 올려줬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훈련을 시켰다. 여민이는 드디어 6월 초부터, 그러니까 만 5개월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기기 시작했다. 한번 기기 시작하니 기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는 이방 저방 유람을 할 정도로 기어다닌다. 그뒤로는 짜증이 급격히 줄었고 팔다리 힘도 부쩍 좋아졌다.
‘진짜’ 전업주부는 힘들었다
갓난아기가 뒤집고 기고 앉고 걷기까지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 진화해온 수만년의 세월을 압축적으로 감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신기하다. 아내와 나는 큰맘먹고 캠코더를 샀다. 움직이는 모습을 찍어두니까 아이의 운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바로잡아주는 데 활용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물건을 잡을 때 항상 오른손이 먼저 나오고 오른손에 비해 왼손을 쓰는 비율이 훨씬 낮을 때 의식적으로 왼손을 쓰도록 놀아주는 식의 계획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5월23일에는 한국방송(KBS) <아침마당>에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했다.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10년된 기념으로 마련한 ‘변화하는 가족문화’ 시리즈의 한 주제인 ‘살림하는 남편’들에 관한 얘기였다. 나머지 손님들이 모두 전업주부 구실을 하는 분들이라 두달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나와는 처지가 달랐다. 가사노동의 전문성이라는 점에서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빠도 형편에 따라 육아와 가사를 전담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지극히 평범한 진리라는 점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법에 보장돼 있는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과 관련한 사회문제들을 짚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방송을 본 이들은 뜻밖에 많았다. 생방송이어서 그런지 반응도 빨랐다. 보수적인 시각으로 얘기하는 이들 때문에 가족들이 마음을 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도 무척 우울해졌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는 ‘동지’를 찾아나섰다. 여민이를 차에 태우고 서울 마포에서 과천까지 내달렸다. 그곳에는 지난해 9월부터 딸을 키우기 위해 9개월 반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노동부 사무관 권병희씨가 있었다. 육아휴직 대선배인 권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둘은 아이들을 데리고 과천에 있는 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정말 힘든 건 육아뿐 아니라 가사노동까지 온전히 해내는 ‘진짜’ 전업주부가 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나도 이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가사노동을 엉망으로 했다. 반찬거리를 장만한다든지 하는 음식과 관련한 부분은 아내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분유를 먹이고 젖병을 소독하고 아기옷을 삶아 빠는 일을 하면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내게는 너무 벅찼다. 나머지는 포기하고 잘 놀아주는 일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집안청소를 제대로 못해 지저분한 적이 많았다. 퇴근한 아내가 “도대체 집에서 뭐하는 거야” 하는 소리를 했을 때는 무척 섭섭했다.
그래도 육아휴직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건 지금 여민이가 엄마를 빼고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와 친하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텔레비전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가시고기의 부성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몇번 했다. 이제 여민이의 표정만 봐도 그가 똥을 누는지, 잠이 오는지, 짜증이 나는지 알 수 있다. 가장 행복한 때는 여민이와 함께 목욕을 하는 시간이다. 휴직기간이 끝나가던 6월 말 여민이를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으로 데려갔다. 고향이 있는 동해였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아빠를 키운 건 8할이 바다란다.”
유아휴직기간과 급여수준 정해져야
휴직기간중에 정치권과 여성계는 모성보호법 제정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육아휴직 부분이 포함돼 있어 관심있게 지켜봤다. 그렇지만 개별 기업과 전체 사회 분위기가 육아휴직을 엄마뿐 아니라 아빠의 정당의 권리로서 인정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현재도 남녀고용평등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남성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지만,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은가. 특히 유급 육아휴직의 핵심은 기간과 급여수준에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정해져야만 한다. 나 역시도 완전 무급휴직이어서 가정경제에는 주름살이 더욱 팼다.
가정경제의 어려움에도 아내는 육아휴직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해줬다. “남편이 돈을 벌어서 아이 양육비를 대는 것도 무척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아이와의 유착관계를 키우면서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육아휴직에 대해 대만족이다. 다른 아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남편을 졸라서라도 육아휴직을 시키라고.”
21세기는 아빠의 육아휴직이 더이상 놀랄 일이 아닌 세상이다. 또 아빠의 육아휴직이 아이들의 인권문제로 다뤄져야 할 시대이기도 하다. 거대한 흐름을 이끌어가는 아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동지가 되겠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엄마와 아기가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아빠와 아기 사이의 애착관계도 중요하다.
육아휴직이 끝나는 지금, 휴직을 결심했던 지난 4월 말이 오버랩된다. 한 잡지사 기자의 취재 부탁 전화는 시쳇말로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겼다. 그 기자는 “출산과정에 참여했던 아빠로서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쓴 ‘인권출산 체험기’(<한겨레21> 343호 참조)를 읽어봤단다. 부끄러웠다. 스스로가 위선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인권’을 존중하는 출산과정에 참여했다고 동네방네 광고해놓고, 아빠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를 모른 체함으로써 정작 아이의 ‘인권’은 ‘나 몰라라’ 한 셈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민이는 하루에 한두번 목욕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동네 전업주부와 육아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소는 주로 아파트단지 안 놀이터였다.

여민이의 운동발달 정도를 측정하고 있는 아기발달연구소의 김수연 씨.

여민이는 기기 시작하면서 짜증이 줄어들고 유쾌해졌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