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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교육의 속삭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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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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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문제는 참으로 끝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지는가 하면, 그나마 사건이 없어 잠잠할라 치면 이번엔 뭔가 고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법석을 떨어서 문제를 만든다. 이렇게 교육 걱정도 끝간 데 없고, 그 시름을 덜려는 노력도 이어지건만 우리 교육의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기만 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흑백논리

하기는 그 교육인들 어디 외딴 섬이겠는가? 바담풍 하더라고 세상은 어지럽고 어른들의 삶은 헝클어졌으니 교육이라고 나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어려울 때면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 교육 잘 시켜 앞날을 기약하려 들게 마련이다. 이 땅에 어떤 부모인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살지만 천금같은 내 자식은 앞으로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 없겠는가?

하지만 정작 그 교육은 다른 어떤 삶터의 자리보다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망가졌다. 벌써 다들 잊었겠지만 우리 가슴을 찢어놓았던 어느 입시학원 화재참사를 보면 우리 삶과 삶터, 그리고 교육의 수준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오죽하면 부모들이 자식교육을 빌미삼아 제 땅을 등지고, 교사들은 한숨만 쉬고, 아이들은 학교를 무너뜨리겠는가?


이른바 ‘공교육’의 위기는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고, 그나마 어떻게 해보려던 개혁은 나라살림은 결딴나고 사회 전반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판에 휘청거리기만 한다. 도대체 우리가 무얼 더 기다려야 하는가?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라는 조직, 그리고 사회전반의 운영방식에서 공공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공공성은커녕 사리사욕만 대놓고 침흘리는 가운데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애꿎은 시민들 주머니만 털리는 실정이다. 이렇게 지금 여기 우리 국가와 사회, 특히 교육은 공공성을 만들지도, 지켜주지도 않는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 스스로 공공성을 찾고, 만들고 지켜야 한다.

하지만 힘 가진 이들의 도덕성과 지금까지 해온 짓, 아니 아예 물들어 있는 못된 버릇으로 본다면 그들에게서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흉한 싸움을 보라. 지금 이 모양의 싸구려로 질 낮은 교육을 덤핑하겠다는 의무교육 확산정책을 보라. 가까이는 문제해결은커녕 꼬여만 드는 간디학교 사태를 보라.

무엇보다도 간디학교는 저들이 법까지 만들어, 스스로 뼈빠지게 노력해온 현장을 제도 안에 억지로 끌어넣더니 이제 와서 제 마음대로 문닫아라, 치워라 한다. 이런 형편에 어떻게 제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스스로 교육의 반문화, 저항문화를 만들고 그 주도권을 스스로 만들어 그러쥐어야 한다. 낡은 국가 주도의 공교육 체제 안에 갇혀서는 더이상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마땅히 교육의 본디 자리인 삶 한복판 어디서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이분법적 ‘공교육’과 ‘사교육’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못되고 뒤틀린 공교육은 마치 음습한 곳에서 독버섯 피듯이 사교육의 창궐을 낳았고, 사교육은 공교육의 보조수단에서 이제 그 자체의 논리와 목적을 가진 교육시장으로 번창하고 있다. 물론 우리와 같은 천민성 가득한 자본주의가 갖은 비인간화문제를 낳은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같은 막무가내의 시장논리에 교육을 내맡기자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공교육의 부실로 커진 사교육 시장을 원론적, 이념적으로만 손가락질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민교육’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민교육은 이른바 제3섹터로서의 교육의 장이다. 민교육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아닌 민이 주체이되 그 내용에서 공공의 정의를 추구하는 교육, 곧 우리 ‘스스로 하는 공교육’이다. 그 민교육의 첫 자리가 바로 간디학교에서 가정학교(Home Schooling)까지 학교 안팎에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찾는 대안교육이다.

교육운동의 물꼬를 트는 일

대안교육은 민교육의 맨 앞자리에 선 운동이요 교육현장이다. 이런 뜻에서 대안교육 운동은 이제 사람들뿐 아니라 교육의 내용, 틀까지 교육 당사자들 스스로 나서서 만들고 지켜나가되, 지금처럼 구석에서 조용하게가 아니라 더욱 힘차게 그리고 제도에 맞서나가야 한다. 제도나 그 밖의 문제들을 틈새만 엿볼 것이 아니라 그 제도나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이윽고 갈아엎는 참된 뜻으로의 ‘과격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교육은 민을 중심으로, 민에서 출발한다. 그 어떤 제도나 관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정당성을 비롯한 나머지 틀과 뿌리는 바로 그 민을 찾고 꾸리고, 민의 힘을 북돋우면서 함께 만들어가면 된다. 민교육은 한때 참교육의 함성으로 크게 울렸던 교육운동의 물꼬를 거듭, 하지만 이번엔 작은 속삭임으로 트는 일이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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