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짓밟힌 50년의 기록
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역사는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록된’ 사실이다. 그래서 기록은 역사를 만드는 행위다. 하지만 저항의 역사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운동 속에서 그냥 흘러가버리기 십상이다.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김용한(46) 공동집행위원장은 자칫 묻혀버리기 쉬운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발로 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발로 뛴 기록,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이다.
“노근리는 미군 주둔 초기에 벌어진 양민학살의 대명사이고, 매향리는 주둔 초기부터 지금까지 생명과 인권을 파괴해온 현장의 상징입니다. 주한미군문제 해결운동사를 총정리한다는 뜻에서 나온 제목이지요.”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는 문정현 신부가 노안을 비벼가며 독수리 타법으로 한자 한자 쳐내려간 인사말로 시작해서, 원고를 쓸 건강이 못 되는 리영희 교수의 구술을 한마디 한마디 받아 적은 추천사로 끝난다. 그 사이는 생생한 운동의 역사로 꽉 차 있다. 노근리에서 시작된 양민학살 진상규명 투쟁사가 그 첫머리를 열고, 동두천에서 군산에 이르는 각 지역의 풀뿌리 운동사가 허리를 메우고, 미군범죄 척결운동을 비롯한 주제별 운동사가 다리를 잇고, 주한미군 반대운동 자료를 모은 부록으로 끝을 맺는다.
15명이 넘는 필진은 모두 현장에서 운동을 이끌어온 활동가들이다. 지난해 연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먼저 꺼낸 말빚 탓에 김 위원장은 기획에서, 원고청탁, 후원금모금, 원고집필까지 도맡아야 했다. 애초부터 마감은 6월24일부터 미국에서 열린 ‘코리아전범재판’까지로 못박혀 있었다.
“올해는 운동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었죠. 근데 웬걸요. 독극물 방류 발뺌에 기름 유출까지, 올해도 미군에 항의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원고 독촉할 때마다 ‘지금 집회에 있어요’란 대답을 듣고 ‘쪼지도’ 못했죠.”
미군의 ‘방해 공작’은 출판기념회를 앞두고도 이어졌다.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항의 농성을 하던 김 위원장이 출판기념회를 열흘 남짓 앞둔 6월14일, 덜컥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지난해 매향리에서도 구속된 적이 있던 터라 ‘출판기념회 때까지 책이 못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다음날 훈방됐지만, 김 위원장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조마조마하다”고 돌이킨다.
천신만고 끝에 마감을 지켜 나온 책은 ‘코리아전범재판’을 통해 전세계에 뿌려졌고, 일본에서도 600부의 선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다. 김 위원장은 “주한미군 덕에 외화벌이까지 한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국내에서는 출판사 ‘깊은자유’(02-763-8543)와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02-719-8946)을 통해 배포중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