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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병수] 거꾸로 매놔도 가판대 시계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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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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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7시간, 박병수 기자의 혜화역 신문가판대 판매보조원 체험기

신문값을 받아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것도 처음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잖아요, 선배. 지하철신문가판대 창을 통해 본 세상, 제목도 정말 좋다.” 6월19일 화요일, 다음주 ‘기자가 뛰어든 세상’이 결정되지 않아 이러쿵저러쿵 모여 논의하는 자리에서 김소희 기자가 스스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정치팀장이 바라본 세상, 정말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지하철신문가판대 판매원 체험은 이렇게 결정됐다.

유명짜한 ‘광(狂)팬 아줌마’를 찾아…

그러나 막상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지하철신문가판대라.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하루종일 앉아서 신문파는 일이 전부일 텐데. “박 선배, 여기서 생각해보면 별 게 없을 것 같지만, 막상 가서 해보면 생각과 달리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흐흐흐….” 구본준 기자였다. 웃으면 하회탈로 변하는 표정이 선배를 생각해준 격려인지, 고생 한번 해보라는 것인지….


다음날 19일 오후 2시께 4호선 혜화역 가판대를 찾아나섰다. 혜화역 가판대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동료 사이에 유명짜한 분이다. 지난 3월1일치 <한겨레21> 347호가 나가자 대뜸 전화로 편집장을 찾아 표지이야기 ‘메인 스트림 논쟁. 당신은 주류인가, 비주류인가’를 들먹이며 “독자들이 정치기사를 싫어한다. 맨날 싸움만 하는 정치판 이야기를 누가 사보겠느냐”고 항의(?)를 하는가 하면, 5월17일치 358호 표지이야기 ‘죽을 권리’가 출간되자 이번에는 “제목이 정말 좋다. 살 권리가 아닌 죽을 권리, 기발한 발상이다. 덕분에 다 팔렸다”고 격려전화를 하기도 했던, 김소희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겨레21> ‘광(狂)팬 아줌마’였다.

가판대는 어렵지 않게 찾았다. 사당역 방향 플랫폼에 하나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맞나? 부스 안에는 예상과 달리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한분 앉아 계셨다. 잠시 망설였다. “아저씨, 여기 <한겨레21>에 가끔 전화하시는 아주머니 안 계세요?” “<한겨레21>에 전화하는지는 모르겠고, 아주머니는 5시는 돼야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가 맞을까,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연락처는 모르세요?” “몰라요.” 어떡할까,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아저씨, 아주머니 오시면 <한겨레21>에서 다녀갔다고 전해주세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휴대폰이 울렸다. “여기 혜화역인데요. 찾아왔었다면서요. 무슨 일이에요?” 내가 찾는 아주머니인지, 확인부터 하고 싶었다. “가끔 <한겨레21>에 전화하신 아주머니세요?” “그런데요….” 맞구나. 서둘러 찾아간 취지를 설명했다. 잠시 듣던 아주머니가 말허리를 가로챘다.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주며 “지금은 바쁜 시간이거든요. 이따 8시 넘으면 전화줄래요?” 했다.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럼 그 시간에 찾아가 뵐게요.”

9시쯤 혜화역에 다시 찾아가 만난 아주머니는 한참 설명을 듣고서야 “그러니까 여기 와서 체험하겠다는 거죠” 했다.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조건을 달았다. “돈 얘기는 쓰면 안 돼요.”

혼자 신문을 판다고? 어림없는 소리!

혜화역 가판대 앞에 진열된 신문들. 지하철 승객이 기사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애초 나는 혼자 신문을 파는 것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림없는 소리예요”였다. “여기서 취급하는 게 몇 가지나 될 것 같아요?” 얼마나 될까, 일간지와 주간지로 가득 찬 부스 안을 둘러보는 내게 아주머니는 판매장부를 내밀었다. “이것 보세요.” 이곳에서 파는 주간지와 월간지, 일간지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모두 70종이 넘었다. 이렇게 많나? “이것들 값이 다 달라요. 어떤 것은 3천원, 어떤 것은 2천원, 1천원, 900원, 800원까지. 신문도 어떤 것은 400원, 어떤 것은 500원, 천차만별이에요.” 그리곤 매장 안을 죽 손으로 가리켰다. “손님이 오면 얼른 내줘야 해요. 어물쩍거리다 지하철이 오면 그냥 가버려요. 화내는 손님도 있고요. 나도 지난해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뭐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서 손님 많이 놓쳤어요.” 남의 장사를 망칠 수는 없었다. “그럼 보조판매원 해야겠네요.”

다음날 21일 오후 4시40분께, 혜화역으로 출근했다. 가판대 옆에는 막 배급된 스포츠지 여러 뭉치가 쌓여 있었고 어제 점심 때 봤던 아저씨가 삽지(揷紙)작업에 열심이었다. 신문마다 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부 섹션의 속지를 별지로 인쇄해 보내기 때문에, 가판대에서는 이 속지를 본지(本紙) 사이에 끼워넣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만 한다. 아주머니는 부스 안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맞았다. 아저씨도 아주머니한테서 내 이야기를 들은 듯 아는 체를 했다.

가판대는 통상 새벽 6시 문을 열어 혜화역 막차가 떠나는 밤 11시 반쯤 문을 닫는다. 영업시간 하루 17시간. 그래서 아저씨가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보고, 아주머니와 교대를 한다. 이곳 가판대는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 생활을 하는 아주머니 동생이 3년 동안 운영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지하철 가판대 분양권 자격이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으로 제한돼서 분양을 받게 됐는데, 아주머니는 기동이 불편한 동생 대신 이곳 가판대를 운영한다고 한다. 아저씨는 아주머니 표현을 빌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분이었다. 급료는 시간당 2천원으로 계산해 한달 62만원.

쪽문으로 몸을 우겨 가판대 부스에 들어가서 아주머니 옆에 쌓여 있는 신문뭉치 위에 앉았다. 1평 남짓한 공간, 두 사람이 앉으니 꽉 차는 느낌이다.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우물쭈물 앉아 있는데, 아주머니는 말동무라도 만난 듯 쉴새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물론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에도 눈과 손은 신문을 사가는 손님들을 놓치지 않고 상대했다. 도무지 내게는 신문팔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 30∼40분 지났을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아주머니가 아까부터 울려대던 음악 테이프를 갈아 넣기 위해 카세트에 신경쓰는 사이 내 시야에 불쑥 솥뚜껑 같은 손이 들어왔다. 5천원짜리 지폐를 툭 던지곤 스포츠지를 집어들었다. 얼른 좌판 밑 거스름돈통을 찾았다. 이곳 가판대를 찾는 손님들은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래서 좌판 밑에는 늘 거스름돈통을 준비해두고 1천원, 5천원, 1만원짜리 지폐를 바꿔줄 돈을 손에 잘 잡히도록 따로 정리해둔다. 돈 거슬러주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거스름돈통에서 4천원 단위로 접혀 있는 지폐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초보자라고 티를 내는 것일까. 1천원짜리 한장이 손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집으려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마침 아주머니가 보곤 “여기 있어요” 하고 돈을 거슬러줬다. “잘 안 되네요.” 겸연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총알형, 일편단심형, 소신형,우유부단형…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17시간을 버티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담배 한대 피웠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불현듯 손님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8시 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퇴근 손님이 줄었어요. 6∼8시 사이가 제일 바쁠 때죠.” 그때였다. 학생같이 보이는 20대 남자가 500원 동전을 휙 던져놓고 스포츠지 한부를 낚아챈 뒤 막 문이 닫히는 지하철로 튀어들어갔다. “총알형이에요.” “예?” “총알형, 내가 1년 넘게 이 일을 해보니까 손님 유형을 나름대로 구분하게 됐어요. 한번 들어볼래요.” 아주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일편단심형이 있어요. 매일 보는 신문 아니면 안 산다는 파예요. 없다고 하면 다른 데 가서 사요. 다음은 소신형, 이 사람들은 오자마자 전혀 망설이지 않고 신문을 골라요. 미리 사볼 신문을 정하고 오는 거죠. 다음은 우유부단형. 친구들하고 같이 와서는 이것 보자, 저것 보자 말들이 많죠. 순환매수형도 있어요. 어제는 이 신문, 오늘은 저 신문 이렇게 특정신문을 편애(?)하지 않고 돌아가며 하나씩 사죠. 다음은 순환교환형, 신문을 사가지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이거 본 거라면서 바꿔가죠. 투시형은 뚫어지게 진열된 신문을 쳐다보다 사가죠. 총알형은 아까처럼 총알처럼 와서 사가지고 지하철로 뛰어드는 거고. 그 다음은 아이쇼핑형, 말 그대로 신문은 안 사고 눈으로만 진열된 신문을 한참 보죠.”

나는 어떤 형에 속할까. 지금은 지하철을 거의 타지 않지만, 결혼 전 상계동 누님 집에 살 때는 출퇴근 때마다 지하철을 이용했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는 사이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란 듯 소리쳤다. 11시15분. “빨리 정리하고 막차 타야 해요. 재고조사해서 내일 반품할 것 정리하려면 서둘러야겠어요. 박 기자님, 나가계세요.” 밖에서 보니 아주머니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수북이 쌓인 신문들을 한부 한부 세고는 장부에 적고 있었다. 출구쪽에서는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술에 취한 채 휴대폰에 대고 “야, 뭐가 어째” 하고 막무가내로 소리치는 모습, 비틀비틀 벽에 기대 조는 아저씨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막차 풍경이었다. 부스 쪽문을 잠그고 나오니 11시45분을 조금 지났을까, 서울역까지 가는 막차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따르르르….”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요란했다. 잠결에 어둠을 더듬어 알람을 끄고는 다시 자리에 누었다가 아차, 하고 일어났다. 아침 5시.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언제 이 이른 시간에 일어난 적이 있었을까, 생각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새벽일을 나가느라 부산했다. 한결같이 그을린 얼굴에 점퍼나 티셔츠 차림, 조그만 가방을 어깨에 멘 점이 특징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막노동판에 나가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견디기 힘든 단조로운 시간들

혜화역에 도착하니 시계바늘이 6시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아저씨는 벌써 와서 부스 진열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 “어서 와요” 하며 맞았다. 역 한구석에는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소란스러웠다. 모자쓰고 배낭을 메고 있는 게 어디 산행이라도 가려는 일행 같았다.

곧 아저씨 뒤를 따라 부스 안에 들어갔다. 이 아저씨는 어떻게 이곳에서 일하게 됐을까. “지하철 가판대에서 일한 지는 한 6년 됐지요. 원래 고양에서 음식점 일을 했는데 교통사고를 당한 뒤 힘쓰는 일은 못하게 됐어요. 나이도 이제 예순다섯이고.” 혜화역 가판대는 이곳 맞은편 상계동쪽 플랫폼에도 하나 더 있다. 그러나 텅 비어 있다. 어제 아주머니 말로는 운영하던 사람이 장사가 안 된다며 철수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은 거의 신문을 안 사요. 신문사는 사람은 거의 지하철타는 사람이에요. 신문보며 지하철에서 시간때우려는 거죠. 그런데 상계동쪽으로는 노선이 짧잖아요. 금방 내릴 텐데 누가 신문을 사겠어요. 이쪽은 안산, 산본, 오의도까지 1시간 이상 가는 노선이니까 손님이 있는 거고.” 그동안 이대역, 시청역, 종로3가역에서 신문가판대 일을 해오다 3개월가량 쉬던 아저씨는 저쪽 가판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여기 아주머니에게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려고 왔다가 여기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집 수유역과 혜화역을 출퇴근하는 생활이 8개월째. 그러나 아저씨는 아직 대학로 한번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역 밖에 나갈 일이 있어야지. 지하에서만 왔다갔다 하니까. 젊은 사람들만 복작거린다고 하대.”

지하철 승객은 7시 가까이 되면서 늘어났다. 그러나 가판대 손님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이날 오후 역무실에 가서 들은 얘기로는 오전에는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적고, 내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 신문을 산다는 게 아주머니 얘기고 보면, 신문사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한 듯했다.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받고 신문을 내주거나, 거스름돈을 내주는 게 전부인 단조로운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게다가 어제처럼 신문뭉치 위에 앉아 있으니 엉덩이와 허리도 아파왔고, 졸음도 밀려왔다. 오전이 이렇게 길었었나. 한참 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고 또 봐도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여러 차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저씨, 잠깐 나갔다 올게요” 하고는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 대학로 주변을 한참 서성였다. 이제 들어가야지, 하며 역 지하로 발길을 옮기는데, 아직 14시간은 더 쭈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갑해졌다.

들어가서 신문도 뒤적거리고 일부러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빨리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신문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몇줄 읽고는 밀어뒀다가 또 몇줄 읽고, 하게 될 뿐이었다. “아저씨, 심심하지 않으세요?” “나야 뭐 익숙해졌으니까. 정 심심하면 신문도 보고 그렇게 지내면 그냥 그럭저럭 또 5시가 되지 뭐. 젊은 사람들은 혈기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나는 견딜만 허우. 밖은 더운데 그래도 여기는 시원하니까 좋지 뭘.“ 아저씨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불편한 게 있다면 뭐 겨울에는 조금 춥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스안 한쪽 구석에 있는 전기히터를 내보이며 “그래도 이게 있으니까 견딜만 허우” 하고 덧붙였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보자.

오후 5시. 부스 창 너머로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이 비쳤다. 교대시간이었다. 나도 편집회의가 잡혀 있어 회사를 다녀오니 저녁 8시 반. 혜화역은 낮보다 훨씬 활기가 있었다. 시끌벅적,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이었다.

다시 가판대 부스 안. 역 분위기 때문일까, 낮처럼 그렇게 갑갑하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곡조에 맞춰 손가락을 끄덕거리기까지 했다. “음악을 이렇게 듣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오. 좋죠? 이 곡은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이에요.” 400원 하는 종합일간지는 120원, 500원 하는 스포츠지는 140원 남는다고 했는데, 오늘 판 신문이 얼마나 될까. 넌즈시 아주머니에게 “얼마나 팔았어요” 물었다. “그건…, 나도 계산을 해봐야 알겠는데…” 아주머니가 웃으며 넘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님들이 꽤 줄었다고 느꼈을 때 “이제 재고를 헤아려야 겠는데…” 하고 아주머니가 장부를 뒤적였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 이제 끝났구나. “많이 배웠습니다.”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지하철에 오르니 내내 결리던 허리, 어깨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긴 하루였다.

글=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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